최애는 샤브샤브

by 쑥라떼
IMG_6229.jpg


‘샤브샤브’ 좋아하시나요?

누군가 제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저는 십 년째 똑같은 답변을 합니다. 샤브샤브 좋아합니다. 일상처럼 자주 찾는 음식이자, 어느 곳을 가든 신선한 채소만 있다면, 웬만해선 맛의 편차가 크지 않은 음식이죠. 그래서 저는 '왜 이 음식을 유독 좋아하는지' 그리고 '취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다소 모호한 마음이 들기도 했죠. 어딘가 슴슴해 보이는 이 음식은, 여러 재료를 따라 변하는 맛이 있죠. 샤브샤브의 특징이 제가 사는 방식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회에 저의 음식 취향도 정리해 봅니다.


따라서 '많이 경험해 봤고 잘 아는 것'을 떠올리면 샤브샤브만한 게 없습니다. 주에 3-4회를 먹어도, 하루에 두 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을 보면 저는 샤브샤브 덕후가 맞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 각자의 소울푸드로 만든 티셔츠를 입고 팀 워크숍을 갔습니다. 십 년 전 선배가 그려준 샤브샤브 티셔츠는 제가 오랫동안 한 음식에 열성적이었다는 증거로 남았네요.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도 바뀌지 않은 제 최애. 저는 ‘뭐 하나에 꽂히면 쉽게 질리기 어려운’ 덕후 DNA가 있습니다. 물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익혀 먹는 음식들 - 전골, 스키야끼, 수끼 등 조금씩 다른 모양새와 이름을 지닌 이런 음식도 '모두' 좋아합니다.


문득 좀 더 알고 싶어 졌어요. ‘샤브샤브라는 이름은 어떻게 쓰게 됐지?’, ‘각 나라 별로 육수의 베이스는 무엇이 다를까?’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순수한 궁금증으로 디깅을 하던 시기를 지나 요즘은 매번 다른 맛의 베이스 육수를 어디까지 디벨롭할 수 있을지 실험 중입니다. (최근에 코코넛워터에 닭가슴살을 넣어 끓여 먹었는데 색다른 시도였어요!)


그런데 샤브샤브 덕후로서 아쉬운 점이 있어요. 분명 '나도 샤브샤브 좋아해'라고 하는 이들은 많은데, 마치 떡볶이 덕후처럼 '~소개 계정'을 볼 수 있다거나, 활발한 팬덤 활동을 목격하지 못했거든요. 음식계 주류팬에 속하지 않는 이유는 샤브샤브가 1순위가 아니거나, 혹은 '내향형' 덕후가 많은 팬덤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이왕 오랜 팬심을 고백했으니 제가 구석구석 글을 써볼까요. 알고 보면 재밌는 부분도, 쓸만한 이야기가 많을지 몰라요. (대충 이름 붙이자면 역사와 트렌드를 오가는 샤브문화연구회 (1/n))


PM으로서 저는 넓고 유연하게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많습니다. 다만, 인간 쑥라떼는 ‘깊고 길게’ 무언가를 파고드는 데서 희열을 느낍니다. 내내 샤브샤브를 고집하는 제 모습에서 문득 성향이 보이더라고요. 어설프게 아는 유명 해외 아티스트보다 수록곡까지 꿰고 있으며 데뷔 때부터 지켜본 밴드의 공연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거예요. ‘왜 세트리스트를 저렇게 짰는지’ 유추할 수 있고, 전주만 듣고도 가사가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로 정보가 있으니까요. 저는 ‘즐길 채비’가 되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힘 빼고!”를 외치며 몸도 머리도 무겁게 움직이는 스스로가 버거울 때가 있었습니다. 최근에서야 ‘나는 원래 파고 파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임을 인정했어요. 나에게 디깅 과정은 피곤한 일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거다- 생각을 전환했습니다. 다만, 의식적으로라도 가끔은 모르는 영역에 발을 담그고 (음악으로 치면 친구 따라 모르는 공연 가기, 음식으로 치면 먹어본 적 없는 요리 도전하기), 알고 싶은 것은 지금처럼 끝까지 파보는 - 균형 잡힌 삶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