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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Sep 05. 2022

법률상담 오실 때 준비하면 좋은 것


사건·사고는 예고 없이 발생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길 원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 내버려 둘 수도 없습니다. 어떤 변호사에게 가서 물어볼까를 정하기까지 상당한 검색과 고민을 거치셨겠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상담에서 많이 알아가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준비사항을 결론부터 적으면 이렇습니다.


1. 그동안 있었던 사실관계를 요약한 메모(서면, 진술서)를 준비한다. [육하원칙]

2. 내가 생각하는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을 정리한다. [나는 어떤 점이 억울하다]

3. 내가 원하는 결론을 정리해 본다. [나는 이 사건이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면 좋다고 생각한다]

4.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입증자료나 증거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목록을 만들어 본다. [지금 내가 가진 증거는 이것이다]

5. 내가  갖고 있지는 않지만, 좋은 증거나 입증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어떻게 이를 확보할지 고민해본다. [변호사가 나를 도와 이런 것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6. 용기 한 스푼을 더한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용기가 있다]



1. 그동안 있었던 사실관계를 요약한 메모(서면, 진술서)를 준비한다. 


메모도 좋습니다. 일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스스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시간 순서대로 육하원칙에 따라 서술합니다. 일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요약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우선 사건에 적용될 법리를 검토하려면 사실관계 확정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분쟁해결의 핵심인 상대방의 성격과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민사·형사 사건을 불문하고 사건의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는 변호사의 답도 애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관계가 구체적으로 파악되어야 관련 법령이나 적용될 법리의 범위도 좁혀집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건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수 년 간 많은 사건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점은, 분쟁 해결의 실마리가 가끔은 법리가 아니라 상대방이라는 사람 자체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상대방 사이에 그간 엮인 사실관계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여 살펴보면, 간접적이나마 상대방의 성격과 대응방식을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측의 대응 중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합리적인 대화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내용증명이 아니라 가압류나 가처분으로 직행하자는 식이지요.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가장 권장드리는 방식은 진술서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하였으며, 그 대화의 목적은 무엇이었고, 상대방은 또 무엇이라고 말했으며, 어떤 결론이 나왔다. 내 생각에 그런 결론이 나왔던 것은 이런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그 만남의 증거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통화내역, 결제내역 등)]는 내용을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이 너무 힘들다면, 약식으로 사실관계의 핵심을 시간 순서대로 적은 메모 형식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억울하고 다급한 마음에 이런 메모조차 써지지 않는다면, 그냥 가상의 제3자가 앞에 있다는 상상을 한 후에, 어떤 순서로 말을 꺼내어 놓을지 미리 생각이라도 해 봅니다. 아무런 준비도 서류도 없이 빈손으로 무턱대고 찾아가는 일만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2. 내가 생각하는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을 정리한다. 


'쟁점'이라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 사건에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점, 마음과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지점을 짚어보면 됩니다. 


'내가 살아온 경험과 지식과 따르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다른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응하였을 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내가 그렇게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못한 이유는 이런 이런 것 때문이었다. 또는 상대방이 이렇게 행동할 줄 알았지만, 이와 달리 이렇게 행동해서 당황스러웠다. 만약 상대방이 나였더라면 이 상황에서는 이런 이런 이유로 이 정도 선에서 행동했을 것 같다.'


형사사건의 피의자 입장이라면, '그때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이런 이런 의도였다. 다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 행동을 이렇게 오해했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상대방이라면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였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흐름이 되겠지요.


단순하게 마음으로 억울함만 품고 있는 상태와 이렇게 풀어서 써 본 다음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만의 억울함을 한 발짝 물러나 변호사와 함께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내 억울함이 상대방이나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내가 원하는 결론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제가 상담 도중에 의뢰인께 불쑥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까?"하고 여쭤볼 때가 있습니다. 그럼 많은 분들께서 놀란 눈으로 변호사 얼굴만 빤히 바라보십니다. 마치 "그걸 왜 나에게 물어요? 변호사한테 물어보러 왔다니까?"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표정입니다.


책 속의 법리나 판례와 달리, 현실의 살아있는 사건에서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있던 길이 닫히고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변호사는 수학문제집의 해답지가 아닙니다. 여러 갈래길이 서로 어떻게 다르고 위험한지 조언해주는 노련한 동반자이지요. 법률상담으로 전문가의 조언을 진짜로 '활용'하고싶다면, 의뢰인 또한 이 사건에서 진심으로 원하는 바를 솔직히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종종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라는 정리되지 않은 마음가짐이 분쟁 해결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 부분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면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지, 그게 무리한 욕심이라 생각된다면 가장 먼저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지, 목표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면 됩니다. 


과연 내가 이혼을 원하는 것인지, 이 사건 계약을 유지하길 원하는지 아니면 파기하기를 원하는 것인지, 과연 내가 무죄나 무혐의를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과의 합의도 원하는 것인지 의뢰인 스스로가 자신의 목표를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어려운 것은 법리가 아니라 내 마음을 직시하는 것이지요. 


이 작업이 선행되면 변호사와의 상담이 보다 밀도있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4.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입증자료나 증거를 살펴보고 목록을 만들어 본다.

5. 내가 지금 갖고 있지는 않지만 좋은 증거나 입증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어떻게 이를 확보할지 고민해본다.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 경찰서, 검찰청, 법원에서 받은 공문서는 반드시 지참하고 변호사 사무실에 방문합니다.(사건번호 및 진행상황 파악)

나. 만약 상대방이 보낸 내용증명이나 이메일,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이 존재한다면 복사본 또는 핸드폰을 지참합니다.

다. 통화녹취가 존재한다면, 언제 누구와 어떤 내용의 대화가 녹음된 것인지 정리하여 알려주시면 좋습니다. (중요한 증거자료 입니다)

라. 상대방과 작성한 문서나 서류(초안이라도 상관없습니다)가 존재한다면 반드시 이를 지참합니다(원본일 필요는 없습니다).

마. CCTV 영상이나 관련 동영상, 녹취파일, 관련자의 진술이 존재한다면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변호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바. 만약 이런 것이 존재한다면 도움이 될 텐데 싶을 만한 것이 있다면, 합법적으로 이를 얻을 방법이 없는지 문의합니다.(생각보다 증거보전청구, 사실조회, 감정 또는 손쉽게 정보공개청구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증거의 범위가 다양합니다)

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사건을 함께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증인으로 나올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아. 마지막으로 이 사건과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겠다 싶은 것이라면 모두 가져옵니다. 증거가치를 미리 의뢰인께서 판단하지 마십시오.



6. 용기 한 스푼을 더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은 시간이 들고, 돈이 들고, 귀찮고, 무섭고, 여튼 여러가지로 번거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상담은 얼굴 보고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은 전화상담 카톡상담 등등 참 편리한 방법이 많지요. 그런데 그렇게 10번 해봤자 제대로 된 대면상담 1번에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아주 삐딱하게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에 널린 '편리하고 즉각 답을 주는 빠른 상담'들은 결국 소비자를 어떻게든 현실의 사무실 공간으로 발들이게 하기 위한 마케팅 수법입니다. 


인터넷으로 최대한 검색해 본 후에, 전화로 먼저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고 살펴본 후에, 카카오톡으로 먼저 주요 쟁점에 대하여 질문을 해 본 후에, 이메일로 내가 원하는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살펴본 후에... 단언컨대, 모두 헛수고입니다. 


그런 고민을 할 시간에 차라리 내 사건을 메모지에 공들여 정리하다 보면 변호사인 저보다 먼저 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방법을 찾으려 하는 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이고, 그것을 하지 못하는 이유(핑계)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자는, 그 문제를 회피하고자 하는 자입니다"


저희 사무실에서 상담해 보신 의뢰인들이라면 아마 무슨 뜻인지 잘 아실 겁니다. 성실한 변호사는 의뢰인의 질문에 기계처럼 답변만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의뢰인에게 많은 질문을 합니다. 의뢰인의 주장을 공격하거나 의심하기도 합니다. 의뢰인이 틀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둡니다. 일방적인 문답이 아니라 의뢰인과 변호사 간에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 거친 과정을 통해 법률상담의 결실이 나오는 것입니다. 카톡이나 전화로 될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용기 한 스푼이 필요합니다. 내편이지만 나를 의심하고 쓴소리를 해 줄 수 있는 까탈스러운 조언자, 그게 바로 변호사의 역할입니다. 과감하게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넘어오시고, 변호사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합시다. 




변호사를 찾는 일이라는 게, 대부분 껄끄럽습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본문에 적은 것처럼 사실관계와 자료를 정리해 준비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역시나 듣기 좋은 말을 못 하는 사람입니다. 변호사 찾는 일은 인생에 큰 위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혼란스럽고 아프고 하겠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내가 삽니다. 우리는 인생의 많은 경험을 통해 당장 쉽고 빠른 길보다는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길이 결국 나를 살려준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변호사 상담은 준비한 만큼 얻어갑니다. 



◎ 법률상담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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