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6
도덕적 행위의 전제는 교육이 아니라 ‘관계’다 사람이 타인을 돌보고, 환경을 보존하며,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의지는 반드시 고등교육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활동의 동기는 삶에서의 직접적 경험, 관계의 지속성, 그리고 삶의 존중을 통한 공감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오래도록 가족을 부양해온 사람이 타인의 돌봄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 혹은 자신의 동네가 깨끗해질 때 자부심을 느끼는 것, 혹은 동네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매우 자연스러운 도덕적 감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각이 깨어 있을 때 가능하다. 문제는 기술과 자본이 만들어내는 분절된 삶이,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도덕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고립되고 단절된 구조 속에 있다는 점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도덕’은 여유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의 다른 방식일 수 있다 ‘의미 있는 행동은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라는 통념은 사실 중산층 이상 계층의 도덕 관념에 기댄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연대와 협력은 생존의 방식으로 더욱 절실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연탄 배달 봉사에 참여한 지역 노인들, 아이를 함께 돌보는 저소득층 엄마들, 주민 스스로 마을 도서관을 운영하는 공동체 등의 사례는, ‘의미’가 여유의 산물이 아니라 필요와 생존의 다른 형식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무엇이 ‘의미 있는 활동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다시 말해,
‘왜 돌봄이 중요한가’
‘왜 환경이 나와 무관하지 않은가’
‘왜 지역 공동체가 무너졌을 때 나의 삶도 고립되는가’
이러한 맥락을 전하는 것이 바로 ‘교육’의 역할이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결코 대학이나 교과서 중심의 지식이 아니다. 경험 중심의 감각 교육, 삶의 언어로 번역된 공공 교육, 동료 시민과의 연대 경험을 포함한 재구성된 교육의 틀이다.
가치는 ‘만나야’ 생긴다 가치는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생성’되는 성질을 갖는다. 처음엔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일이, 반복을 통해 자부심으로 변모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과정에서 의미로 전환되는 것이다.
즉, “이 활동이 왜 가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참여할 수 없다”가 아니라, **“참여하면서 그 가치를 나중에야 비로소 체화하게 된다”**는 역방향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 철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사회적 참여가 가능하려면 단순히 그들을 ‘도덕적으로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의 맥락 안에서, 자신이 가진 감각과 경험을 통해 다시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도덕적 활동은 선택이 아니라, 고립된 삶을 견디는 다른 방식의 기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