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역 해피하우스
엊그제 찬바람은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싶을 정도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너무 급변해서 현실감을 잃게 만드는 오늘의 날씨.
생각이 깊어져야 사람이 되는데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단계없이 뛰어넘는 사람처럼 이 날씨도 사실은 무섭다.
오늘날의 지구는 좀처럼 유예기간을 주지 않고 돌변하는 이상 기후를 줌으로써 인간에게 이제 좀 깨달으라고 알려준다.
그저 우리는 닥친 날씨에 "왜이래"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그 속내를 모르고 지나갈 뿐이다.
버스 창문을 연다.
이 곳에 이사와서 이용하는 버스, 특히나 외곽쪽으로 다니는 버스의 창 밖 풍경은 수도권에서 살던 나와 지금이 다르듯 그것 역시 달라졌다.
계절마다 초록과 누런색이 번갈아 시야에 가득차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과 상가들의 풍경은 지루할 정도로 여백이 많다.
이 작은 눈동자에 번잡하고 화려한 도시, 그 속의 사람들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니 얼마나 지치고 피로해져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이런 시골길의 전경은 눈을 쉬게 해준다.
너무 많은 걸 보지 않아도 되고 강요받지 않으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도시에서 시골로 장면이 전환되는 기점에서 부터는 여행이 시작된다. 낯설기 때문이다.
전의역에 내린다.
새로 입점할 편집샵에 놓일 굿즈들을 이사시키기 위해 오랜만에 전의역에 와야했기 때문이다.
굿즈들을 챙겨 서둘러 나온다.
배가 고팠다.
오랜 동네,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에서 먹는 밥맛을 좋아한다.
그러니 어찌 서두르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아 백반집을 가지 못하고 전에 눈독을 들여둔 해피하우스로 간다.
"안녕하세요. 떡볶이 순대 김밥 되나요? 그거 주세요."
주문을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너무 많나.'
가게 사장님인 할머니가 가지런하게 접시 세개에 음식을 담아 내주셨다.
내 바로 옆에는 술이 조금 취한 할아버지가 손바닥보다 작은 접시에 순대 몇점을 올려놓고 드시고 계셨다.
"참외 하나 좀 더 깎아줘."
할머니는 성가시다는 듯 술 좀 그만 드시라며 참외를 깎아내주셨다.
"저 옆에 아가씨도 좀 줘요."
할아버지가 갑자기 참외를 나눠주라고 하셨다.
그 가게에는 손님이라곤 그 할아버지와 나뿐이었다.
'아가씨? 아니. 요새 관리 좀 했더니 좀 젊어뵈나. 아디다스 트레이닝 입어서 그런가. 호호'
술 취한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 아가씨라는 생경하고 아득한 호칭에 순대 맛이 더 고소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아줌마 몇살이라 했지?"
"아 그거 왜자꾸 물어요."
할아버지가 가게 사장님인 할머니한테 부르는 호칭이 아줌마였다.
그럼 난 아가씨가 맞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