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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박문수를 아시나요? 2화

by 밥반찬 다이어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숨고에서 확인하고 표지디자인 건 메일 드립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었다.

그런데 메일을 전체적으로 읽어 내려가기 전에 선생님이란 단어에 시선이 걸렸다.

과장님, 차장님으로 불리며 일을 하던게 익숙해서인지 그 선생님이 나인걸 알면서도 어색했고, 내 나이를 알고 부른 것도 아닌데 왠지 들킨듯 한 기분에 잠시 낯이 뜨거워졌다.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둘러 메일을 읽어보니 조선시대 어사였던 박문수에 대한 일대기와 업적에 관한 학술세미나에 필요한 표지 디자인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어머 그 어사 박문수?"

메일 발신자를 보니 공공기관에서 일하시는 분이었고, 나는 더욱 더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정말이지 "이건 해야해"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면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다급하게 첨부파일을 열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에서 가능한 수준인지 파악하느라 눈알을 빠르게 굴려댔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한 긴장감에 클릭하는 손가락까지 그 긴장감이 전달되었다.

"휴. 이 정도면 그래도 할 수 있겠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바로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열었다.

요청받은 디자인 시안을 참고로 하여 조선시대 관복 흉부에 그려진 학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게 관건이었다.

관복에 장식된 그림을 흉배라고 부르는데, 그 흉배도 계급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역사 공부 좀 제대로 할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공부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디자인을 제대로 잘 표현하려면 일차적으로 박문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그 사람에 대해 안다는 건 역사적, 시대적 상황도 같이 알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곧 어사 박문수에 대해 포털로 검색을 해서 자료와 기사를 찾고, 조선시대 의복 양식과 관복에 대해 정보가 나와있는 창을 여러 개 띄우며 정독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유튜브 영상도 몇 개 시청하고 나니, 대략 어떤 컨셉으로 디자인을 할지 감이 왔다.

물론 요청받은 내용으로 디자인을 해야 하지만, 내 나름대로 떠오른 영감대로 이미지를 추가로 구현해 보기로 했다.


보통 우리가 사람이나 사물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고유의 색감이랑 이미지가 있다.

어사 박문수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을 해보니 상당히 대담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을 위해 진심으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실질적면서 유용한 정책이 어떤건지 앞서 판단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다.

또한 임금에게 무조건적으로 아첨하지 않고 필요한 말은 해내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로 접해 어사 박문수란 인물을 탐색하기 시작했다가 그 캐릭터에 매료되어 깊은 감동까지 받았다.

"요즘 세상에 박문수와 같은 분들이 많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나의 사회를 지나갔던 수많은 상사들과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잇따라 연상됐고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울컥해왔다.


다행인건 그런 박문수를 조선의 임금 영조는 무척이나 아꼈다고 한다.

윗사람에게 쓴 소리를 하면 보통 눈 밖에 나는 경우가 많은데, 임금 영조는 그가 아플 때 어의를 보내 치료까지 받게 할 정도로 그를 진정 응원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

박문수가 끝내 세상을 떠나자 영조 임금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 그가 나를 섬긴 것이 이제 이미 33년이다. 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영성(박문수)뿐이었고, 영성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그가 언제나 나라를 위하는 충성이 깊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영조 임금은 박문수에게 충헌이라는 시호와 영의정 벼슬을 내려주었다.


"요즘에도 이런 직위나 타이틀을 뛰어넘는 우정과 서로를 향한 진심어린 응원이 존재할까."

무척이나 인상적인 그들의 관계에 감명을 받았고, 나랑 비슷한 성격이 있는 것 같아 더 호감을 느꼈다.

또한 조선에도 그런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가 있었다니 놀라우면서도 재미있었다.

어느새 글 속에 존재하던 박문수는 현실로 튀어나와 내 옆에 살아있듯 생동감이 느껴졌고, 심지어 친근하기까지 했다.


순간 머리속에서 밝은 노란색이 떠올랐다.

여태 역사적 인물 초상 배경으로는 한번도 보지 못한 색이었지만, 박문수란 캐릭터를 가진 인물에게는 왠지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 안될 것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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