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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박문수를 아시나요? 3화

by 밥반찬 다이어리

실제로 일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열어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매우 긴장이 되면서도 짜릿함에 머리카락이 쭈삣 솟는 것 같았다.

"아 이렇게 일을 하는거구나."


몇개월간 상상 속에서만 펼쳤던, 과거의 내게는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던 이쪽 분야의 일을 이렇게 시작하다니 신선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디자인 시안에 대한 고객과의 계속된 수정과 소통의 방식은 특별히 새로울 게 없었다.

기존에 내가 회사에서 일할 때 소통하던 방식 그대로였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인간과의 대화에서 기본 원리라는게 변할 리 없었다.

상대방 말을 경청하고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정말 아닌 경우에는 예를 갖춰 내 의사를 표현할 것.


큰 틀에서 이 두가지만 원활하게 작동시켜 소통을 한다면 어떤 분야던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다시 한번 자신감이 생겼다.


몇일 째 약간 지칠 정도로 여러번의 수정 요청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그 요청에 집중하며 그림을 고치고 또 고쳤다.

이 그림을 완성시켜 고객에게 납품을 한다해도 큰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아마 고객이 나를 선택한 이유에 낮은 단가도 포함이 되어 있었겠지만 역시 싼거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듣기 싫었고, 무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학술 세미나의 표지인데 질 낮은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디자인 작업을 막 하기 시작할 때쯤 내가 작업을 다 마친 이후의 과정이 연쇄적으로 떠올라 고객에게 물었다.

"인쇄업체는 따로 계약이 되어 있으신가 보네요. 최소 인쇄하기까지 여유있게 일주일 잡고 그 전에 끝내서 전달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내 스스로에게 감탄을 했다.

약 두달 전에 남편의 북토크때 굿즈로 줄 엽서를 인쇄하게 되었는데, 그 때 인쇄소에서의 프로세스를 처음 접했고 그 경험이 이 일을 할 때 유연하게 대화를 이끌수 있게 만들어 줬다.

정말 뭐든지 해보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가를 절감한 순간이었다.


디자인 작업 이후에 어떤 프로세스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일이 처리되는지 몰랐다면 마감 시한에 대해 둔감했을테고, 고객도 이 사람은 초짜다 싶어 다시는 일을 맡기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거래를 하면서 영수증을 발행해야 되는데 내게는 사업자 등록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분에게 미리 이 사실을 고했고, 원하신다면 다른 디자이너분을 선택하게끔 알려주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담당자분은 개인적으로라도 처리할 의향이 있으시다 했고, 사업자 등록증을 내실거면 그때 처리해도 되는데 너무 늦어지면 꼭 말씀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 전 까지 디자인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사업자 등록증까지 연결짓지는 못했다.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 일로 인해 사업이란 뚜렷한 길로 이끈 것이다.


수차례의 수정 끝에 드디어 고객의 상사와 그 팀에서의 회의를 통해 합격 도장을 받았고, 나는 말로 표현 못할 성취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잠시 후 고객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선생님. 정말 너무 열심히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했던 시안 수정 시한보다 초과했는데도 다 해주셨고,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에 저희가 조금 더 금액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별거 아니지만 표지 디자인에 선생님 성함을 실어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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