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은 대부분의 아이에겐 축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만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게 만들어져서, 이토록 적절한 분량으로, 온 세상을 끌어안아 버리니 아이들의 세상에 즐거운 균열을 안겨다 주는 셈이다.
어른인 나에게도 이날이 축제라고 묻는다면 전혀 라고 말하고 싶다. 나름 낭만 치사량의 삶이지만, 내 눈의 축제는 군대에서 종식되었다. 전경으로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나날 중 눈이 오는 날이란 그야말로 하얀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었다.
경찰서가 언덕에 있어서 눈이 쌓이면 차들이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그 기나긴 언덕의 눈을 쓸어내야 했다. 지휘하는 당직 사관 같은 직원의 말 뒤에,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아, 라는 가사의 오르막길 BGM이 깔리는 듯했다. 눈이 그친 상태에서 치우는 것은 가볍게 2시간 정도면 끝났지만,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치우는 것은 실시간으로 현타가 업데이트되었다.
무려 4시간이나 그 짓을 해본 적도 있다. 해가 떠오르려고 얼굴을 드는 순간에, 제설차가 그 눈길을 가르고 올라오던 그날의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다. 수고했다고 하며 들어가서 컵라면을 먹고 오침 시간을 가졌는데, 제대 후에 아무리 애를 써봐도 그때의 그 컵라면의 맛을, 그때 잠의 맛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 시절에서 눈과 화해하지 못한 채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생기고, 눈을 기다리는 아이의 눈을 보니 여전히 축제가 살아있는 그 순수가 눈보다 더 하얗게 느껴져서 아름다웠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점점 축제를 잃어가는 서글픔과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눈을 집어서 오리를 만드는 스노우볼 메이커를 사두었는데, 그 이후로 아이는 계속에서 나에게 “아빠 눈 언제 와”라고 물어보았다. 축제를 기다리는 아이와, 그 축제가 싫은 나,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이 있었다. 문득, 더이상 내게 눈이 오는 날은 축제가 아니지만 다른 축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아이의 축제를 지켜주는 일이었다. 그게 곧 나의 축제였다. 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일, 그 일을 위해서 내 축제가 아님에도 기꺼이 뛰어드는 일, 어른들이 해내야만 하는 책임감 서린 축제였다. 이러한 아이들의 축제를 지켜주는 어른들의 축제가 제대로 열리기만 했어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 내린 풍경처럼, 부족하고, 아쉽고, 어둠이 있어도, 여전히 나름의 빛을 잃지 않고 조금은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훅 치고 들어왔다.
아이의 축제와, 나의 축제가 만났다. 눈오리 집게를 가지고 신이 나게 옥상으로 올라갔다. 마구마구 오리를 만들며 눈 속에서 뛰놀았다. 행복에 감전된 듯한 아이의 눈(eyes)안에서, 나의 눈(Snow)과의 화해가, 눈 녹듯 이루어졌다.
눈을 들어보니, 이제야 눈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이의 축제와 나의 축제가 만나는 날, 그렇게 눈과 화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