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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물 Aug 07. 2022

기차여행에는 낭만이 있지

스리랑카의 3등석 기차칸에서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기차를 타게 된다. 기차로 달리면 고원지대의 녹차밭을 지날 수 있어서, 힐컨트리 지역엔 예매를 하지 않으면 당일 기차표를 구하기 힘든 구간이 있다. 누와아엘리야-하푸탈레 구간 같은. 이동을 위한 이동이 아니라 관광을 위한 이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기차는 천천히 레일 위를 달려나가고, 주위는 온통 싱그러운 초록잎,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가끔씩 나타나는 마을의 풍경이 정말 그림 같다. 기차가 워낙 천천히 달려서 옛날 청춘영화 장면처럼 출입구에 매달려 가는 사람들도 있고, 기차가 커브를 돌 때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기차의 머리칸과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한다.


1등석은, 에어컨이 나오는 1등석은 창문을 열 수 없는 기차도 있다. 게다가 기차의 각 등급 칸 사이를 마음대로 오갈 수가 없어서, 무작정 편하게 가자고 1등석 기차표를 산 사람들은 이런 재미를 놓치고는 한다. 1등석 중에도 그렇지 않은 게 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내가 어떤 종류의 기차를 타는지, 그 기차의 시설이 어떤지 미리 알아보기가 힘들어서 정말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거나, 운에 맡기는 것 밖에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요즘은 좀 나아졌으려나.


여튼, 내가 기차를 탄 구간은 콜롬보-갈레의 바다 구간. 누와라엘리야-하푸탈레의 힐컨트리 구간. 하푸탈레-엘라 구간이다. 엘라는 치앙마이의 빠이 같은 곳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서양 관광객들이 와서 좀 더 자유롭게 즐기고, 하이킹도 하는 곳이다. 관광지라서 카페와 식당들도 모두 발리처럼 그럴싸하게 꾸며놓고, 물가도 비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인 아치 브릿지를 보기 위해 엘라를 찾는다.



기차역에서 내려 툭툭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조금만 걸으면 나인 아치 브릿지에 갈 수 있다. 다리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사람들은 다리 위에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시간대별로 지나는 기차의 색이 다르다는데 내가 본 건 파란색 기차. 빨간색을 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느즈막이 게으름 피우다 온 거라서 본 걸로 만족했다.


스리랑카의 기차는 관광객만 타지는 않는다. 많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여행을 위해, 출퇴근을 위해 기차를 타는데 나는 사실 캐리어 들고 서서 몇 시간을 갈 자신이 없어서, 습한 공기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버틸 체력이 안 될 것 같아서 다른 관광객들처럼 스리랑카 사람들 기준에서 매우 비싼 좌석을 예매해 타고 다녔다. 엘라-하푸탈레 구간만 빼고. 이 구간은 예매도 잘 안 되는 데다가 한 시간 정도 가면 되기 때문에 굳이 예매를 할 필요가 없었다. 아예 툭툭을 타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짐은 하푸탈레에 두고 갈 거니까, 나도 가볍게 3등석 기차를 탔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리랑카 사람들을 만났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자리 양보를 잘 해준다. 우리가 탄 객차에는 너무 많은 외국인이 있어서 나에게까지 차례가 오긴 힘들었지만, 뒤늦게 스리랑카에 도착한 친구는 콜롬보에서 하푸탈레까지 오는 다섯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스리랑카 소년들의 양보로 편하게 앉아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예매를 할 수가 없어서 아침에 표를 사고 바로 차에 탔는데 도저히 발 디딜 틈 없는 기차에서 앞자리 앉은 두 명의 소년이 좁혀 앉으며 자리 하나를 내어 주었다고. 가면서 과자도 주고 대화도 하고. 스리랑카에 처음 도착해서 픽미 기사에게 바가지를 썼던 안 좋은 기억이 다 씻겨나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많이 부러웠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좋은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자꾸 편리함만 찾고 있었다. 뭐, 고생을 덜 하는게 좋기는 하지만. 그러면 재미를 찾을 수 없다. 쿠스코에서 아구아 깔리엔떼까지 왕복 18만원 주고 기차를 탄 것도 너무 좋았지만, 트래킹을 해서 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도 후회하는 것처럼.


엘라에서 하푸탈레로 돌아오는 저녁 기차에서는 조금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퇴근기차였는지 외국인은 거의 없고 현지인들로 가득했던 기차 칸. 스리랑카 국민 간식인 사모사를 파는 사람이 다니고, 간단하게 그걸로 요기를 하는 사람, 피곤해서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사이로 저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청년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떼창을 불렀는데, 그 음악이 뭔지는 모르지만 신명이 났다. 호기심에 음악이 들리는 칸으로 가보니 연령대가 다양했다. 아저씨, 청년, 소년. 그들은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고 했는데 같이 노래부르고 춤을 췄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우리나라 6-70년대 기차 풍경처럼.




하푸탈레에 올 때까지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고, 용기내어 그들 틈으로 들어가 춤을 춰볼까 생각했지만 망설이는 사이 하푸탈레에 도착해버렸다. 내려야했다. 잠 잘 곳과 짐이 하푸탈레에 있었으니까. 더이상 여행에서 기차를 탈 기회가 없었다. 하푸탈레에서 다시 웰리가마까지는 차를 타고 갔고, 웰리가마에서 콜롬보까지는 입석표밖에 없었는데 마침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중국인 관광객이 웰리가마에서 확진이 되었다고 해서 공포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 결국 비싸게 차를 타고 이동했다.


다음에 스리랑카에 한 번 더 가게 된다면, 가벼운 몸으로 스리랑카 사람들 틈에 섞여서 마음껏 기차를 타보고 싶다. 스몰톡을 좋아하고 한국인에게 호감이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먼저 말 걸어주고, 잘 챙겨줘서 긴 거리도 재미있게 이동할 수 있을테니까.


담불라에서 콜롬보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만난 공항 직원이 그랬고, 마라타에서 하푸탈레로   만난 버스 차장이 그랬다. 잠시 휴게소에 들렀을   몫의 초콜렛까지 사서 나눠주고, 자기 직업을 소개하고, 가족을 소개하고, 편도 3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줬으니까.


엘라에서 돌아오는 기차에서나마 사람들과 잠시 섞여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진작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위해 여행하고 있는지, 그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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