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동료가 돼라

[스타트업 도전기] 사내벤처 선발에 도전하다.

by 성실한 베짱이

붙을까? 떨어질까?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늘만이 아니다. 심장은 확실히 평소보다 더 뛰고 있고, 머릿속엔 반사판이 있는 듯 모든 생각들을 막아내고 있다. 반사판 안에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붙을까? 떨어질까? 떨어지면 어쩌지?


마음을 다 잡고 업무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될 리 없다. 두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을 해본다. 호흡에 집중하고 지금 내 안의 두려움, 조급함을 알아차려본다. 효과가 없다. 그냥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럴 때는 유튜브나 보는 게 최고다, 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들자 카톡이 하나 날아왔다.


창업진흥원 결과 나왔단다


사내벤처를 주관하고 있는 부서의 알고 지내는 차장님이다.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스마트폰 상단을 보니 이메일이 하나 들어왔다. 발신인은 창업진흥원.


(창업진흥원) 2021년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추천형 2차 선정 결과 공지


메일을 열고 결과를 확인한다.



사내벤처 선발에 도전하다.


그렇다. 난 사내벤처에 도전했다. 시키는 일만 했고, 어떻게 해서든 상사의 마음을 읽으려 애썼으며, 상사의 인정과 칭찬을 얻어내려는 욕망으로 가득했던 내가 사내벤처에 도전했다.


상사의 인정을 자양분으로 내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려던 시도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허나 쉽지 않더라. 수 십 년간 형성된 인정 욕구에 대한 지향을 단번에 그만두는 건 무리였다. 그 노력과 연습마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슬슬 깨달을 무렵, 그러니까 2021년 6월 4일 금요일, 사내벤처를 시작한다는 문서가 떴다.


사내벤처로 선정되면, 1년 간, 1억 5천만 원의 자금을 가지고, 사내에게 사업을 진행한다. 사업이 잘 될 것 같으면 분사 창업(Spin-off)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고 현업으로 복귀한다. 분사를 하고도 3년 이내에는 언제든지 사업을 접고 회사로 복귀할 수 있다. 경력도 모두 인정된다. 네이버, 인터파크도 사내벤처로 시작해서 어마어마한 기업이 되었으니 너도 한번 도전해보란다.


아... 이런 좋은 조건이 어디 있단 말인가. 1년 동안 회사의 급여를 받으며, 1억 5천만 원의 자금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쉽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이거 망하면 인생이 망할 수 있다, 는 조급함 때문이라는 말이 들었는데,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


이미 내 마음속엔 제2의 네이버가 자라나고 있었고, 난 대표이사가 되어 있었다.

어머! 저건! 해야 해~



사내벤처 선발 도전


문서를 보자마자 친한 동기 형에게 카톡을 보냈다.

"형, 나랑 사내벤처 하나 합시다."
"그려. 좋지."


항상 마음속으로 사업을 한다면, 그리고 동기 중 누군가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리라,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좋다. 모든 일을 자신의 일처럼 대한다는 뜻이다. 꼼꼼하다. 눈앞의 일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깊게 보고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일을 한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무턱대고 쏟지도 않는다. 꼼꼼하지 못하고, 일정 수준의 위험을 안고 일을 추진하는 나를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동료를 한 명 더 모아야 한다.

루피가 된 기분이다. 항해사나 요리사가 아닌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A 좀 해놔, 라는 요청에 A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B나 C까지 고려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 A를 B로 바꿔 주세요, 라는 요청에 그냥 바꿔서 보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B로 바꾸면 이런 영향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혹은 오타가 있어서 함께 수정했습니다, 라는 피드백과 함께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 일을 하는 이유나 목적을 생각하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디자이너가 옆 팀에 있었다. 그에게 수줍게 말했다. 우리 팀에 들어와 주실래요?



3명이 모여 영혼을 갈아넣기 시작했다.


1차 서류 제출은 6월 23일 수요일이었다. 서비스의 주요 내용, Pain Point, 해결방안, 차별화 포인트, 팀원 역량을 정리하여 제출해야 했다. 야심 차게 글을 쓰고 ppt를 만들었고 하루정도 더 다듬어 여유 있게 제출하려 했다. 그때, 내 앞에 앉아있던 동기가 이렇게 말했다.


사내벤처 제출했어?
응? 그거 금요일이잖아!
뭐? 아니야. 수요일이야!


뭐! 수요일이라고? 말도 안 돼. 오늘이 수요일이고, 5시 50분인데, 10분 후 마감이라고? 그랬다. 10분 후 마감이었다. 부랴부랴 써 놓은 글과 ppt를 클라우드에서 불러와 마구 붙여 넣고 제출 버튼을 눌렀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자료를 제출한 건 아쉽지만, 그 동기가 아니었다면 제출하지 못했을 거다. 우리 3명은 모두 금요일 마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어쨌든, 문서가 뜬 2021년 6월 4일부터 결과 발표가 난 8월 18일까지, 2번의 서류 제출과 3번의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약 3개월 동안 빡빡하게 들어찬 일정이었다. 일은 일대로 하며 남는 시간에 눈치를 보며 작업을 했기에 더욱 그랬다. 몇 번의 밤을 새우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서류를 제출했다. 우리 3명의 영혼을 갈아 넣었다.



결과는?


결과는 합격. 재택근무를 하던 중에 빤뽀(초5, 딸)와 부둥켜안고 방방 뛰었다. 층간소음이 조금 걱정됐지만 그냥 뛰었다. 아빠가 밤새워 자료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만든 자료를 제일 먼저 보여주고 의견을 듣기도 했다. 자신의 일인 것 마냥 좋아했다.


이젠 시키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상사의 마음을 읽기보다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가슴이 더욱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