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벤처는 도대체 무엇인가?
사내벤처 제도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예산을 사용한다. 창업진흥원이 전담하여 제도 전체를 관장한다. 사내벤처를 내부에서 운영하고 싶은 기업(삼성전자, 롯데제과, 엘지디스플레이, 교보생명 등 대기업 및 중견기업)이 운영기업으로 신청한 후 선발되며 사내벤처 팀을 추천한다. 각 운영기관이 추천한 사내벤처 팀들 중 연간 150개 정도를 선발하여 1억 원 상당의 자금 및 교육, 멘토링을 지원한다. 이러한 운영을 주관하는 기관도 따로 있다.
사내벤처에 선발되기만 하면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자신이 구상한 아이템을 사업화할 수 있으며 사업화 과정에 사용할 수 있는 1억 원 상당의 자금까지 사용할 수 있다(물론 마음대로 사용하기는 힘들지만). 게다가 (운영기업마다 다르겠지만) 분사 창업 후 3년 이내에 회사로 다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이다.
내 인건비와 개발 및 마케팅 자금 걱정 없이 10개월간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고, 분사하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피고용인으로 복귀할 수 있는 보험의 보험까지 들어 놓은 제도다. 당연히 일반적인 스타트업이 가진 간절함은 부족하다. 일부러 간절함을 가지려 노력해봤지만 없는 간절함이 생길 리 없다. 사업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적다. 조금 더 과감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에이 어차피 내 돈도 아닌데 일단 개발하고 보자.'라는 안일함이 생길 수도 있다.
사내벤처는 스타트업이라기엔 부족하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엔 스타트업에서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대부분의 프로세스를 경험해 볼 수 있기에 좀 애매하다. 그래서 난 사내벤처를 <스타트업 흉내내기>라고 부르고 싶다.
회사 내에서 사내벤처 공고가 떴을 때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했다. 위험 부담 없이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덕분에 청년에서 장년으로 가는 마지막 해(정부에서 운영하는 사업화 지원 제도에서는 만 39세까지를 청년으로 정의하고 있다)를 다이내믹하게 보내고 있다. 네이버가 될 수 있다는 꿈도 스리슬쩍 꾸면서 말이다.
정부에서는 사내벤처를 운영하는 이유를 '대기업 등 민간 역량을 활용하여 사내벤처팀 및 분사 창업기업의 사업화를 지원하고 개방형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이라 밝히고 있다. 창업 장려 정도로 볼 수 있을까?
운영기업은 왜 사내벤처를 운영하는 걸까? 먼저 대기업은 자금, 인력, 네트워크 등 모든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기회 창출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스타트업은 성장 가능성, 즉 기회 창출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 약하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에 안정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고, 사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외부 스타트업을 발굴하면서 새로운 성장 및 인재 영입의 기회를 얻게 된다.
"우와... 정말 좋네요. 저희는 정말 피말려요. 지금 20대니까 할 수 있는 거지 아마 결혼하고 아이도 있고 그랬으면 이렇게 못했을 것 같아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주는 회사 대표가 사내벤처의 지원사항을 듣고 나에게 했던 말이다.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가봤더니 앳되 보이는 2명이 앉아있었다. 프로토타입 제작사의 대표와 임원이다. 미팅 내내 내가 가져간 서비스 컨셉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늘어 놓는데 짜증이 났고,곰곰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라 더 짜증이 났다. 두 사람은 20대였고 벌써 사업 몇 개를 말아먹었다고 경쾌하게 이야기했다.
그들이 부러웠다. 실패하고 학습하고 다시 시도하고 또 실패하면 또 배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과 열정이 부러웠다. 나에겐 그런게 남아있을리 없었다. 무엇을 하려고 하더라고 2중 3중의 안전망을 고민한다. 이런 나에게 그들의 이 한 마디는 위로가 되었다. 이것이 내가 사내벤처를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한 이유였다. 실패하면 나 혼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내벤처는 정부, 운영기업, 사내벤처 모두 다른 것을 꿈꾸지만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좋은 제도다. 제대로 운영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경험이 기업 내부에 쌓이고 문화가 형성된다면 말이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에게는 인생의 변곡점을 선사해준 소중한 제도임엔 확실하다. 몇 년 후 이 변곡점을 지나 어디에 도착해 있을지 심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