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에서 살아보기
서울로 상경하였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서울이기에 긴장도 되고, 초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원래 살던곳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곳을 선택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동생의 취업과 함께 급작스럽게 올라오게 된것이다. 에어비앤비를 세차례나 구하고 동생의 면접을 함께 동행하며 짧은 자취를 경험한 뒤 집을 구했다. 이 글은, 그 집을 구하기 전 에어비앤비에 관련한 글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 하고 불면 허-이옇게 떠다니는 입김이 낯설었다. 오랫동안 살았던 보금자리와 몇키로나 떨어진건지는 가늠하기도 어려웠지만, 기뻣다. 눈이 내렸고, 살면서 두번째로 보게 된 함박눈들은 신발 뒷창 사이사이에 끼어져 새카만 얼룩을 남겼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처음에는 이 구정물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거지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기까지 했었다. 들어간 에어비앤비는 골목골목 비집고 들어간 마을과 엇비슷한 동네였다. 덕지덕지 발려져있던 하얀 페인트질은 군데군데 떨어져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수북하게 쌓인 신발들이 반겨주었다. 주인은 전화나 문자로만 연락이 가능해서인지 카운터가 덩그러니 들어차있었다. 무거운 케리어를 들고 잔뜩 지쳤던 우리는 카드키를 가져다가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죄 하얀곳이였다. 인테리어 효과를 보려고 한건지 몰라도 깔끔하다기보단 얼룩이 쉽게 묻어있어 평소라면 인상을 찡글였겠지만 그 때는 아무생각이 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후끈하게 달여져있는 온돌방의 뜨끈함에 몸이 녹아내렸다.
방은 좁디 좁았다. 3평? 4평?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맞은편에 화장실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왼쪽편에 더블침대가 세로로 쭉 들어서있었다. 화장대가 구석에 찡겨있고 그 옆에 간이 냉장고가 끼워져있었다. 뭐랄까, 테트리스를 보는 기분. 가격이 많이 저렴했기에 가능했었고 방 자체가 따끈했었기에 만족스러웠으나 동생은 입이 대빨 나왔다. 너무 작다는게 요지인것이다. 하기사 좁긴 했다. 눈을 한참 맞고 길도 해매어서 그런지 짜증이 서려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정도 컨디션이라는게 말이 안된다는게 마음에 안든거겠지. 연락을 취해 투베드로 바꿔달라 하였고 이틀 정도 머무르고 나서야 다른 방으로 옮길수가 있었다. 몇번이고 언니, 연락했어? 라고 닥달하듯 물어봤기에 그럴거면 네가 전화하던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건, 아마 나도 스트레스가 쌓였던걸지도 모른다. 그게 표정에 드러난건지 다시 꼭 찝어서 기분나쁘다 표하자 진이 쪽빠졌다. 하지만 아마, 상황이 별로 안좋았던것같다. 우리는 피곤했고 나는 싸울 생각이 없었고-솔직히, 나는 말빨이 좋지 않다.- 동생은 우리가 머무를거니까 좀 더 넓은 방으로 옮기자는거였으니. 나쁜 마음을 가진것도 아니였다. 문제는 옮긴 방은 너무 추웠다는 점? 중앙난방 시스템이기에 우리가 묶었던 첫번째 방을 뜨겁게 달궈야 우리방까지 겨우 들어간다는게 이유였다. 세상에나, 이 겨울에 냉기가 드는 방이라니. 더군다나 간이 테이블은 우리가 쓰기엔 너무 작았었다. 동생은 노트북을 쓰고 나는 아이패드를 쓰니 이리저리 차지하는 자리때문에 아마 말은 서로 안했지만 기분이 상했을것이다. 동생은 면접을 보러다니고 나는 몇번 따라가 면접보는동안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나 따뜻한 라떼를 마시며 들어온 외주를 처리하였다.
일을 끝내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가 경악을 금치못했다. 첫번째 방에선 거미줄이, 두번째 방에서는 천장이 온통 곰팡이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샤워하는 내내 찝찝함에 몸서리를 쳤다. 커튼은 왜 달아놓은건지 물어보고싶을 정도였다. 씻어도 씻은것같지 않은 일주일 후, 면접이 끝난 동생은 합격 발표를 듣고 짐을 쌓기위해 우리는 다시 비행기에 올라탔다.
집에선 아마 별로 탐탁치 않은것같았다. 여짓껏 29년동안 매일매일 얼굴을 보고 저녁땐 같이 치킨을 시켜먹거나 영화를 보던 하루하루가 찐득하게 이어져있었는데 갑자기 뚝 떨어지다니. 아빠는 왜 서울까지 가냐, 엄마는 홀가분 하다면서 서울에 올라온 시점부턴 지금이라도 정리하고 와도 괜찮아. 라고 하신다. 방안을 하나둘씩 정리하고, 옷을 챙겨놓았다. 아빠 차에 전부 싣고 갈 예정이라 짐을 옮겨갖다 놓는다고 5층 계단을 6번이나 내려갔다 올라왔다. 식기구부터 시작해서 자질구레한것 전부 다 옮겼다. 동생은 당장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하루전날 저녁이 되어서야 짐을 싸기 시작해서 답답하기까지 했다. 미리미리 하라니까, 라고 핀잔 두번정도 주자 짜증을 내었다. 제 옷 말고 옮긴 짐들이 있는데 또 짐을 옮기자고 하자 기분이 안좋아졌다. 네가 알아서해라, 하자 기분 나빠하며 막내랑 같이 오가며 짐을 옮기더라.
다시 비행기에 올라탔다. 하루종일 피터팬과 직방, 다방을 수시로 오가며 집을 알아보았고 그동안 머무를 에어비앤비를 구했다. 이틀을 머무를수 있는곳으로 알아보다가 빌라처럼 보이는 에어비앤비로 골랐다. 다시 캐리어를 질질 끌고 가던 날, 우리는 그자리에서 멈춰선채 그 외관에 입을 벌렸다. 고동색갈의 철문 앞에는 전단지가 수십장 엉켜져 바닥에 굴러다녔고 잔뜩 노후된 빌라가 우릴 반겨주었다. 꼭대기층까지 가는데 불 하나 켜지지 않아 으스스하기까지했다. 빨간색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 내리자 문이 열렸다. 불을 키고 캐리어가 아래에 하나 더 있어 가져가려고 문을 나서자 옥상층 가까운곳에 정리되어있지 않은 산더미같은 짐더미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무슨, 꼭 살인사건의 첫장을 장식하는게 우리인걸까 싶을정도록. 입을 뻥긋이다가 얼른 짐을 들고 안으로 다시 돌아와 뭐 이런데가 다 있냐며 들어섰다. 하지만 방안도 안전한지 모르겠더라. 맞은편에 굳게 잠기어져있는 관리인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에 식은땀이 흘렀다. 보일러를 키고 잠잘 때 이외에는 부엌가는 곳 쪽 문을 잠궈두었다. 방음은 전혀되지 않았다. 동생이 자는동안 갑자기 코 고는 소리에 훌떡 동생을 보았지만 조용하기 짝이 없었고 방밖에서 들려와 나는 무기될만한게 없나 싶어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잠겨진 문을 보며 쪽잠을 잤다. 이틀을 어떻게 보낸건진 모르지만- 우리는 도망치듯 세번째 에어비앤비로 걸음을 옮겼다.
주황색 대문앞에 놓아주세요. 이건 마지막 에어비앤비에서 쿠팡으로 주문할때마다 주소에 적어둔 메모이다. 이 일로 인해 후에 자취방에서 주문했던 물건이 거기로 갈줄은 상상도 못한 채. 일단 방은 여짓껏 묵었던 곳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주황색 철제로 되어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8-90년도에 많이 쓰이던 갈빛갈의 벽돌로 된 주택이 눈에 띈다. 거기서 눈을 돌려 여섯발자국 정도 앞으로 가면 작은 계단 두칸을 내려가면 된다. 두개의 문 중 왼쪽의 철문이 우리가 머무를 곳이다. 도어락을 치고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와 향긋한 냄새에 눈물마저났다. 드디어 제대로 된 방이구나. 물론 부엌과 샤워공간이 같이 있다는 점, 화장실은 바깥에 있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괜찮았다. 프라이팬도 있고 간단한 조리기구와 그릇, 수저 등 죄다 갖추어져있었다. 오른편엔 킹 사이즈의 침대가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한 채 기다리고 있었고 간이 테이블과 책상, 쇼파까지 구비되어있었다. 심지어 텔레비전까지 있다는 놀라운 사실. 우리는 감격하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발에 닿는 매트까지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였다. 머무르면서 동생은 취직한 회사로 출근을 하고 나는 일을 하며 집안일을 도맡아하였다. 볶음밥과 햇반, 물을 주문해서 먹기도 하고 라면으로 떼우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10일동안 머무르면서 얼른 이삿날이 오길 기대하며 집꾸미기 어플에 수시로 접속하기도 했다. 동생과 같이 장을 보러다니고 다이소도 들러가면서 즐겁게 지냈었던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