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나의 마음을 주의깊게 바라보자
내 마음은 후회와 자책, 부끄러움, 미안함과 아쉬움, 아주 약간의 서운함으로 점철되어있다. 그 날 내가 그렇게 술에 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사이는 달라졌을까? 왜 그는 내 주위를 맴돌았을까? 왜 고맙다며 끌어안았고, 왜 예쁘다고 말해주었고, 왜 나와 시선을 길게 마주쳤을까? 그랬던 그에게, 나는 도대체 제정신이 아닌 채로 무슨 짓을 저지른걸까.
저 여러 감정들이 얽히고 설켜서 끊임없이 내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 이 감정이 왔다가 떠나면 곧바로 저 감정이 들어온다. 마음의 무게가 무겁고, 그 슬픔의 감각이 명치 안쪽에서부터 목구멍을 막고 지나 미간, 정수리까지 전달되는듯하다. 이토록 어느 한 날을 후회해본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고, 되돌릴 수 없음을 알지만 되돌리고 싶은 마음 때문에 괴로운 것도 거의 처음이다. 인생에서 떠오르는 몇가지 후회의 순간이 있다면 이건 아마도 Top3 안에 들지 않을까. 두고 두고 후회할 수도 있을거지만, 이 마음에서 조금 벗어나면 다시 하나의 경험으로서 자리잡을 수도 있겠지.
일요일에 그 순간을 겪고, 월요일 하루는 자책 안에 빠져서 내가 무얼 하며 보냈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화요일도 마찬가지다. 수요일도 선명하지는 않다. 매순간마다 그의 생각을 했고, 나를 자책했고, 마음의 무게 앞에 헐떡였다. 그래도 어제 저녁부터는 조금씩 마음이 놓이는 듯해서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먼 미래를 떠올리며 좀더 유연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인의 말마따마, 너무 한번에 나의 마음을 정리하려고 확정지으려고 하지말고, 그저 흘러가는대로 오픈해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의 마음을 나는 어찌 할 수 없고, 이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 상황은 벌어졌고, 아마도 그는 상처를 받았고, 나 역시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 받았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왜 이번 일에 이토록 자책하는가?
아마도 그를 좋아해서. 그의 마음이 내게 있다고 생각해서.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데, 나는 그 앞에서 술에 취해 다른 남자와 너무 가까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에게 조금 실례되는 행동을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에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니까. 그러면, 나는 왜 이 행동들에 대해서 이토록 마음 아파하는가? 관계에서의 신뢰감, 존중감, 책임감 이 세가지를 내가 저버린 것 같아서. 그 세가지를 저버린 게 왜 마음이 아파? 아, 어쩌면 그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인지할까봐, 두려워서. 저 세가지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봐. 나라는 사람을 그날 하루의 일 때문에 최악의 사람으로 판단하고 결정내릴까봐. 내가 그 옆에 설 자리를 전혀 내어주지 않을까봐. 그에게 버려질까봐. 그와의 관계 안에서 소외될까봐. 아, 소외감. 결국은 소외감인가? 아. 그 모든 마음들 안에 소외감이 들어있었구나.
가정을 해본다. 만약에 그가, 나는 이제 당신에게 마음이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 것도 잘 알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매우 가까운 사이에요, 라는 진실을 말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마음이 없음에 안타까워했겠지만, 마음은 이만큼 괴롭지는 않았을거다.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내가 좋아하는 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가? 를 생각하다가도 알아차린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여기서 멈추고, 그냥 바라보자.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듯, 바람이 나를 휘감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듯,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을 구경하듯이.
소외당할지도 모른다는 내 안의 두려움. 나는 왜 그게 두려운가? 버려짐. 나의 실수로 누군가의 마음이 돌아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의 실수니까, 내가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 때문에 지금 마음이 괴로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하나의 행위로 인한 판단평가는 가까운 이에게 끊임없이 겪어왔고, 그래서 더욱 두려운 것일 수도. 나의 행동에 대해 마음이 토라져서 나를 밀어내고 며칠 동안 말 안하는 상황도 역시 많은 시간 겪어왔고, 그랬을 때 내가 애교를 부리거나 옆에서 계속 손 내밀면 조금 풀어지는 것도 경험해왔고. 가족 안에서의 이 경험들로 인해서, 내가 그의 마음 역시 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아니다. 정말, 아니다. 그저 더이상 뭘 하려 하지 않고 바라보자. 나의 미안함이 그에게 전해지기를. 닿기를.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겠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술에 너무 취하지 말 것, 위스키를 조심할 것, 마음이 조금 확인되는 순간에 더 확실하게 물어보고 나의 마음을 표현할 것. 그날 내가 놓친 그 무수한 기회들이 또 나를 괴롭게 한다. 아, 이 괴로움을 관찰자가 되어서 바라봐야하는데. 계속 그 안에 잡혀있다. 그래, 나로 다시 살자. 다시 잘 살아보자. 그동안 빠져있었던 사랑에서 벗어났으니, 다시 나에게로 집중하자. 나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