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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개복치
by 주간 개복치 Aug 02. 2018

서대문경찰서의 카이저 소제

경찰서에서 잡범들과 지내며 얻은 포용의 시선

작은 신문사에서 수습기자 할 때의 일이다. 예전 신문사는 신입 기자에게 몇 달간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취재하는 ‘사츠마와리’란 것을 시켰다. 통과의례의 일종으로 ‘거친 현장’에서 ‘어려운 일’을 견뎌내야 기자 자질이 생긴다는 게 신문사의 취지였다.


내 담당은 종로경찰서, 서대문경찰서, 중부경찰서, 남부경찰서 4개 경찰서. 새벽에 일어나 경찰서들을 차례로 돌며 지난밤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체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낮에는 선배가 시키는 갖가지 취재를 하고, 밤엔 경찰서 안에 버티고 앉는다. 버티고 앉아서 무얼 하느냐. 눈 귀를 열고 경찰서를 감시한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바로 선배들에게 보고하고, 국회의원이나 재벌 2세가 잡혀 오면 취재하는 등 미디어의 촉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원칙적으론 말이다.


사실 그런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높은 분들은 현행범으로 잡혀도 경찰서가 아닌 시내 모처(시내 어딘가)에서 취조한다. 나 따위 피래미 기자가 알아챌 일은 거의 없다. 대형 범죄는 경찰이 팀을 꾸려 수사해 잡히는 것이고, 밤에 경찰서 잡혀 오는 이들은 90%가 주정뱅이다. 술 마시고 싸웠다. 술 마시고 간판을 발로 찼다. 술 마시고 택시기사분께 시비를 걸었다 등등.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경찰서에 비치해둔 녹차도 홀짝이고, 드나드는 사람도 구경하면서 시간을 죽였다.


새벽 1시 경, 경찰서로 여성분이 잡혀 오셨다.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얼굴이다. 30대 혹은 40대? 일일드라마에서 이모 역할 자주 맡는 배우 정경순씨를 닮았다. 죄목은 술값을 안 낸 것. 안 낸 이유는 안주도 맛없고 술맛도 없어서란다. 듣자마자 “이야~ 정말 아무 기삿거리도 아닌걸.” 관심을 껐다. 그나저나 술맛 있고 없고는 개인 입맛 차이 아닌가? 아니야 저번에 그 술집은 객관적으로 안주가...(지겨워서 잡생각)


“이름이 뭐예요?” “김소연(가명)이요.” “나이는요?” “32살인데요.” “직업은?” “컴퓨터 회사에서 사무 보고 있어요.” 조서 작성을 위한 평범한 인적사항 체크가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큼 시간이 흘렀다. 꿈뻑꿈뻑 졸던 중 형사가 고함을 치는 바람에 깨버렸다. 형사 왈 “에이, 아줌마. 다 거짓말이네!” 술값 안내고 끌려온 32살 김소연씨는 조사 결과 32살도, 김소연씨도 아니었다. 다방에서 일하는 소위 ‘레지’분이었고 나이는 “이 아줌마 마흔둘이네. 나보다 한 살 누님이고. 참나” 한참이나 말한 개인 정보는 몽땅 거짓말.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아시는지. 허약해 보이는 범죄단체 졸병이 경찰서에 끌려와 ‘카이저 소제’라는 전설적 범죄자가 벌인 사건을 증언하는 영화다. 졸병의 회고로 영화는 진행되지만 반전이 대단하다. 영화 스토리 전체가 그 졸병(실제론 이 사람이 카이저 소제)이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영화가 얼마나 흥했던지 ‘카이저 소제’는 모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천부적 거짓말쟁이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이는데.


난 방금 눈앞에서 한국판 '카이저 소제'를 목격한 것이다. 그 많은 가짜 정보를 어떻게 순식간에 짜낸 거지? 카이저 소제 누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경찰 “대체, 왜 거짓말한 거예요!” 그러게 대단한 범죄도 아니고, 주민등록 시스템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안 밝혀질 것도 아닌데. 누님이 다리를 꼬며 얼굴을 옆으로 획 돌렸고 나와 얼굴이 마주쳤다. 그리고 난 그때 누님이 짓던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천진난만한 미소, 순수한 유쾌함. 내가 살면서 본 중 가장 해맑은 미소를 카이저 소제 누님은 짓고 있었다. “아니, 그냥 심심해서. 호호호” 그러더니 술값을 내겠단다. 이쯤 되자 애초에 술값 안 낸 이유마저 의심스럽다. 아마, 아마도 누님은 다방에 오는 주정뱅이 아저씨들 사이에서 인간사의 권태로움을 느꼈는지 모른다. 나 같은 ‘모범생’과 달리, 풍파를 겪고 살아온 누님에게 경찰서는 낯선 곳이 아니었을 테고. 주정뱅이들과의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생활에서 경찰서에서의 순수(?)하고도 작은 소통이 오히려 누님에겐 삶의 환기였을지도 모르지. 누님은 화난 형사분에게 잡담을 걸고 계셨다...


“서대문서의 카이저 소제” 기삿거리 되려나 수첩에 끼적이는 와중, 이번엔 정장을 입은 술 취한 40대 남자가 끌려들어왔다. 뭔가에 화가 나 종업원을 밀쳤다고 한다. 분위기상 큰 피해를 입힌 건 아닌 듯 했다. “XX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흔하디흔한 멘트. 행패를 많이 부리는 그를 경찰들은 철창에 넣어둘까 말까 의논 중이다. “내가, 내가 OO대 교수야!” 뭐라고? 머릿속에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OO대 교수 만취해 종업원 폭행. 우리나라 음주문화 이대로 괜찮은가> 드디어 기사다운 기사를 쓰게 되는 것인가. 흥미진진한 걸.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아저씨, 아저씨 OO대 교수세요?” 교수는 벌건 눈으로 날 쳐다보며 “엉? 넌, 누군데?” “전, 그냥 앉아있던 기잔데요.” “누구?” "기사 쓰는 기자요." "..."


순간 난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목도했다. 전두엽이 알코홀에 마비되도, 분노의 감정이 온 마음을 지배해도 사람은 위기의 순간 이성을 찾고 본래의 겸손한 자신으로 돌아온다. 방금 전까지 감정의 짐승이었던 그 교수님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겸손한 목소리로 답을 하신다. “아뇨. 전 교수가 아닙니다.” “좀 전에 OO대 교수라고 하셨잖아요.” “교수가 아니라 강사입니다. 추태를 부려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우리나라 교원 시스템의 부당함에 대해 읍소한다. “전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로 시작한 비정규직 교원의 이야기는 실제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사화되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도 마음이 찡했다. 온 경찰서에 사과를 하며 돌아다니는 강사분. 속으로 생각했다. ‘아저씨, 그만하세요. 어차피 기삿거리 아니에요. 힘내시고요.’


모세 앞에서 갈라지는 홍해처럼, 사스마와리 3달간 무시무시한 범죄자들은 귀신같이 나를 비켜 사라져갔고, 난 잡범들과 콩짝콩짝 시간을 보냈다. 사스마와리가 끝날 때 쯤엔 사표를 냈다. 정규직 자리가 아까웠지만 예민한 내 성격에 기자는 못 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신문사 기자로선 실패에 가까운 사스마와리 시절, 그러나 평범하고도 신기한 잡범들과의 시간은 내 속의 무언가를 바꾸어놓았다. 격언 따위 정리할 수 없는 일종의 태도 혹은 관점 같은 것이었다. 굳이 문장으로 표현하면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내가 상상치도 못할 고민을 갖고, 나름의 방식으로 뒤뚱뒤뚱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미약한 우리 중생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애처로움, 애정어린 눈빛 같은 것들. 내가 그 어떤 사람에 대한 판단도 마지막까지 미루려 하거나, 섣부른 확신을 갖지 않거나 혹은 세상을 전보다는 더 따뜻하게 보기 시작했다면 그 잡범들과의 시간 덕일 테다.


P.S. 1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삶은 세상의 한 귀퉁이일 뿐입니다. 세상 대부분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사는 것도 좋겠습니다.


P.S. 2

도스도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읽으며 위와 비슷한 감정이 들더군요. 포용력이 10 늘어나고, 자기 확신이 10 감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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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에디터
소심한 20%의 멘탈 회복을 위한 에세이를 쓰고자합니다. 물고기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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