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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개복치
by 주간 개복치 Sep 03. 2018

할머니와 교촌치킨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자잘한 기억들

정말 세상 나 혼자다 싶은 저녁이면 교촌치킨을 주문한다. “O산아파트 OOO동 OOO호인데요. 교촌 반반 콤보 갖다주세요. 네. 배달비도 괜찮습니다.” 딸깍. 치킨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훈훈해진다. 치킨은 진리죠! 기승전치킨 이야기는 아니고. 조금 느닷없겠지만 난 교촌치킨하면 내 할머니와의 소소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번 글은 하고 많은 요리 중 하필 프렌차이즈 치킨이 내 소울푸드가 된 사연.     


나의 할머니는 ‘개성파 할머니’였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개성이 강한 할머니였다는 말이다. 안동 양반집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살아냈고, 해방 후엔 안경점 하는 남편을 두고 자기도 가만 있을 순 없다며 행상일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머리가 똑똑하고, 감각도 좋아 재산을 크게 모았고, 나 역시 부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기까지야 전형적인 억척 할머니 스토리, 문제는 할머니가 삼국지 영웅 장비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반씩 섞어놓은 것 같은 분이었다는 점이다. 격렬한 성정과 까다로운 취향. 그 탓에 주변 사람들을 질겁하게 만드는 일도 잦았다.     


할아버지가 질겁한 경험을 목소리 그대로 전하면, “(일제시대 때)너희 할머니 때문에 다 죽을 뻔했다. 일본인 경찰서 서장이 동네에 부임해 우리 장사하는 사람들이 서장네 집으로 인사를 갔지. 너희 할머니도 따라 왔다. 서장집 마당에 모였는데 경찰서장이 유카다(일본 잠옷) 차림으로 나오더라. 일본에선 남 앞에 유카타 입고 나가면 무례한 거거든. 


우리야 그러려니 고개 숙여 인사하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고래고래 고함을 치더라.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잠옷차림을 사람을 맞는 게 어디 예입니까! 다시 들어가서 똑바로 옷 입고 나오세요!’ 아, 이 할마시 때문에 다 죽었구나 원망했다. 그런데 놀란 경찰서장이 미안하다며 옷을 제대로 입고 나오지 말이다. 그 후에도 경찰서장은 너희 할머니만 보면 행동을 바르게 했단다.”     


난 그 경찰서장이 경우가 바른 사람이어서 조선인 아주머니의 충고를 들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할머니의 매서운 기세에 밀려서였을 게 분명하다. 할머니의 불벼락은 굉장히 무서워 언젠가 성격 고약한 버스기사가 할머니께 빨리빨리 타라고 핀잔 한 번 줬다가 “너 이놈 호X XX XXXX XXXXX!” 탈탈 털린 버스 기사는 무조건 사과한 후에야 버스를 출발할 수 있었고, 운전하는 내내 뒤통수에 욕을 퍼먹기도 했다.     


성격만 거친 건 아니다. 양반집 딸답게 손이 컸고, 남들이 없이 사는 것도 마음에 담아두었다. 물건이든 돈이든 할아버지 몰래 부족한 이들에게 통 크게 집어주었다. 내가 잡지 기자가 된 직후 모 유명 포토그래퍼를 섭외하려 할 때 일이다. 우연히 이름을 듣던 할머니가 그 포토그래퍼를 아신다는 거였다. “아니! 할머니 OOO씨 어떻게 아세요?” “그 양반 예술해서 돈이 없었어. 사진도 사주고 했지.” 지금은 유명해서 돈도 잘 버는 그 포토그래퍼에게 물어보니 모두 사실. 포토그래퍼는 할머니께 고마웠다고 전해주길 청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선명한 건 할머니 요리다. 할머니가 만든 요리는 수준이 굉장했다. 웬만한 쉐프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손자 놀러 온다며 제대로 한 상차리면 상차림이 ‘바베트의 만찬’급이다. 도미요리, 문어숙회, 고기산적, 거기에 안동 출신답게 ‘안동찜닭’. 시중 파는 안동찜닭이 찐 닭을 소스에 적신다면, 할머니의 안동찜닭은 차원이 다르다. 닭을 찐 후 달달한 양념이 든 항아리에 하루 이틀 파묻어둔다. 소스가 닭살 전체에 완전히 베어들면 그제야 식탁에 올렸다. 살 속까지 양념이 골고루 배어든 그 닭은 천상의 맛이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만큼 입맛도 까다로웠다. 그래서 할머니하고는 고급 중식당이나 일식당 아니면 갈 일이 없었는데. 문제의 그 날이 오고 말았다.     


할머니 집에 3~4일 머물던 어느 날, 할머니 요리가 약간 지겨워졌다. 아무리 맛있는 집밥도 계속 먹으면 질릴 때 있지 않나. 뭔가 자극적인, 인스턴트 소스가 찹찹 뿌려진 음식이 당겼다. 할머니가 집을 비운 틈을 타 나왔다. 주변 가게를 뒤지다가 교촌치킨을 발견했다. ‘건강을 망치는 바삭바삭한 튀김에 인공미 좔좔 흐르는 자극적 소스. 그래 이거야. 너무 건강식만 먹었더니 내 몸이 불량스러움을 원해. 으흐흐.’ 치킨집이 엄청 작아 자리가 없더라. 사들고 할머니집으로 들어왔더니.     


“뭐 사왔노?” 귀가하신 할머니께 딱 걸렸다. “이거 요 앞에 파는 치킨이에요.” “치킨? 그게 뭔데?” 식탁으로 가서 한 번 열어보신다. 눈이 전투모드로 체인지. “삐쩍 곯은 닭을 먹으라고 팔았나? 도로보(일본말로 도둑놈)네.” 치킨을 앞에 두고 한바탕 욕이 시작됐다.     


내 탓이로소이다. 내 탓이로소이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할머니 집에 양념치킨 따윌 들고 온 내가 잘못이지. “삐쩍 곯은” 모양의 “양심도 없는 놈들”이 판 “니맛도 내맛도 없을” 치킨을 차마 입에 못 넣고 있을 때 할머니가 맛본다며 하나 줘보라고 하신다. 다리를 하나 드렸다. 드시더니 이번엔 할머니 손으로 직접 한 조각 가져가신다. 그리고 또 한 조각 또 한 조각. 응? 할머니?     


처음엔 “내가 먹어보고 이 싸구려 닭요리를 제대로 욕해주겠어” 얼굴이었는데, 드시면 드실수록 표정이 애매해진다. “꼽숩다(‘고소하다’의 경북 사투리)” 딱 한 마디 하시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박스를 봤으나 이게 웬일 달랑 다리 한조각, 가슴살 한조각 남아있다. 망연자실 앉아 있으니 할머니가 나와서 돈을 주신다. 한 마리 더 사 오라고. 양념치킨을 태어나 처음 드셔보신 할머니는 그 맛에 완전히 반해버리신 게 분명했다. 다음에 놀러갔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저번 그 닭 한 번 사와보라고 하셨고. 그 다음에 놀러왔더니 또 그러시고. 그러면서도 맛있다는 이야기는 또 못하신다.     


평생 까다롭게 사신 할머니가 왠지 죄짓는 얼굴로 몰래 교촌치킨을 드시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내가 먹고 싶었다며 몇 번이고 사드렸다. 나 없을 때도 먹고 싶으면 어쩌나 싶어. 주문하실 수 있도록 길 안내도 해드리고, 약도도 그려드렸다. 그후 할머니집 식탁엔 전통 요리 사이로 교촌치킨이 삐쭉 놓여져 있덨다나 뭐라나.     


알콩달콩 재밌는 시간을 몇 년 더 보낸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87세의 나이로 잠깐 앓다가 괴롭지 않게 돌아가셨고 그건 괜찮은 일이었다. 장례식장엔 손님이 정말 많았다. 미국에서까지 오는 분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3일장에서 하루 더 늘인 4일장으로 치렀다. 오는 사람마다 내게 하는 말이 “너희 할머닌 보통 사람 아니었다. 성격이 강해서 그렇지 좋은 할머니였어”라고들 해주셨다.     


길지 않은 삶을 살며 신기했던 점은 우리가 기억에서 펙트만 남긴 채 감정은 잊는다는 사실이었다. 불타오르던 연인에 대한 사랑도 헤어진지 몇 년 지나면 “내가 왜 그랬지?” 낯설게 느껴지고, 죽마고우처럼 붙어 있던 친구와의 우정도 시간의 흐름속에 페이드아웃되어간다. 망각의 채는 기억에서 감정을 걸러내고 기억은 무미건조한 펙트로만 남는다.


그러나 망각의 채에 걸리지 않고 통과한 기억+감정들도 있다. 대부분 자잘한 것이다. 한국드라마처럼 죽고 못살아~의 투머치 감정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기억, 소소한 감정들. 교촌치킨을 드시며 즐거워하는 할머니, 그것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짓던 기억 같은 것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연료가 되는 기억”은 그런 것일 테다. 교촌치킨 같은 것.      


*이 글의 BGM으론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Time after time>     


If you′re lost you can look and you will find me 

너가 길을 잃었을 때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Time after time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If you fall I will catch you, I will be waiting 

네가 나락을 덜어질 때 널 잡아줄게 난 기다리를 거니까     

Time after time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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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주간 개복치
소속 직업에디터
소심한 20%의 멘탈 회복을 위한 에세이를 쓰고자합니다. 물고기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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