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 개복치 Mar 25. 2020

내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이유

평범한 딩크의 개인적인 사연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아니, ‘낳지 않기로 했다’는 적극적인 표현은 부적절하다. 정확히 말하면 ‘비출산’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굳이 ‘출산’을 고르지 않은 셈이니까. 결혼한지 8년이 된 지금도 결혼생활은 너무 행복하며, 아내와 난 즐겁게 지내고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에 아이를 더 할까의 문제에서 “셋은 됐어요. 둘로 충분해요”라고 우리는 삶에 답했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엔 딩크를 고민하는 여성 독자가 적잖을 텐데, 이 말만큼은 하고 시작해야 한다. 난 남자다. 출산이 인생에 미치는 여파가 여성만큼 크지 않다. 양육비도 들고, 육아도 힘들겠지만 그 뿐이다. 여성처럼 커리어가 끊기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긴 임신 기간을 살아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남자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든 여성 독자에겐 마음 편한 소리로 들릴 수 있고 그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딩크의 기로에서 ”아이가 없어도 즐거운 결혼생활을 할 수 있나요?”로 좁힌 질문에 대한 의견 정도라고 봐주면 좋겠다.


본론으로 돌아가, 나와 와이프는 20대 후반에 만나 7년 정도 연애한 후 결혼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아내(당시엔 낯선 여성)와 함께 있으면 편안했다. 어릴 적부터 낯가림이 심한데다 당시엔 백수였던 때라 자괴감까지 더해져 대인기피…까진 아니고 대인불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내를 만난 모임 역시 취업을 위해 억지로 나간 취업 스터디. 스스로 반쯤은 히키코모리라고 여기고 있던 터였는데, 이상하게 그녀 앞에선 편안했다. 나 자신 그대로를 드러내도 불편함이 없었다. “오빠. 나 만났을 때 떨리고 이런 거 없었지!”라고 가끔 아내는 억울해하지만, 그 편안함이 내게 얼마나 귀한 것인 줄도 모르고.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에게 딱 맞는 가족 규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4명? 3명? 2명? 비연애도 있으니까 1명도 가능하다. 난 자신 개인의 라이프에 집중하는 성격이라 적정 가족을 1명, 즉 혼자 살아야 한다고 여겨왔다. 세상의 관습에 굴해 결혼하더라도 인생의 한 부분을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를 만나고 사귀면서 적정 가족 사이즈가 2명으로 늘어났다.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편안함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결혼을 이야기했다. 나름 인생 최대의 고개를 헤쳐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더니 글쎄.


“아이 소식 없어?” “아직 2세 소식은 없고?” 주변인들의 자식 채근이 이어졌다. 이제 결혼했는데 벌써 자식 낳아야 해? 아직 생각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주변 분들은 반쯤 강권하였다. 부부 둘이 맨날 서로의 얼굴만 보고 있으면 지겨워지고, 다툼이 생기며 결국은 자식만이 결혼생활의 윤활제라고들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혼의 다음 스탭은 출산이라 주장하는 이들과의 소통 과정은 꽤 길었고 다 쓰기 지루하다. 주변인들의 질문을 한 덩이로 모아 가상 인터뷰로 풀면 다음과 같다.


Q. 노력했는데 안 생긴 게 아니라 일부러 안 낳으시고 있는 거죠?

A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아이 가질 계획은 없습니다.


Q. 어떤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신 건가요?

A ‘그냥’도 답이 될 수 있나요?


Q 2세 계획 같은 큰일에 그냥은 답이 안 되죠.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세요.

A. 대단한 사건이 있던 건 아니에요. 전 아이들을 싫어하진 않거든요. 조카애가 있는데 이름이 소빈이에요.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여운지 저번에 만났을 땐…


Q 옆길로 새지 마시고요. 특별한 일 때문에 딩크가 된 건 아니라고요?

A 결혼 초엔 육아가 부담스러웠요. 둘이 사는 것도 아직 낯선데 셋이라뇨. 안 낳겠다고 결정한 건 아니었어요. 고민스러웠죠. 뭐라 설명해야 할까. 이렇게 가정해보죠. 마음 속에 저울이 하나 있어요. 한쪽엔 아이를 낳아야 할 2~3가지 이유가 있고, 다른 한쪽엔 낳지 않을 십수 가지 이유가 있고요. 낳지 않을 이유가 많지만 개수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겠죠. 사랑하는 와이프를 닮은 조그만 생명체가 하나 더 있다면 참 보기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으니까요.


Q 그런데요.

A 그런데, 낳아야 할 묵직한 이유 하나가 사라졌어요. 제가 출산을 조금이나마 진지하게 생각한 이유는 나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기 않길 바랬기 때문이었어요. 인간을 서사적 존재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누군인지 어떻게 살아갈 지는 우리 스스로 어떤 이야기 속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죠. 나의 전엔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고, 우리 부부 다음엔 우리의 작은 분신이 생겨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죠. 자식이 없으면 우리 부부가 쌓아온 기억들이 언젠가 새카만 무로 사라지게 되는 셈이고요. 그 사실은 제가 오늘의 삶을 끌고 가는데 중요한 목적 하나가 사라진다는 의미이고 했어요. 그러던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죠.


Q 할아버지요? 그게 영향을 미쳤나요?

A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뜨신 후라 할아버지 댁은 빈집이 되었어요.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를 하러 갔죠. 우리 아파트는 좁아서 물건 둘 데도 없고, 잠시 따로 창고 서비스라도 받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 물건을 살면서 몇 번이나 보게 될까?’ 막상 안 찾아볼 것 같더라고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평생 모아둔 것들, 그 분들의 인생이 담긴 대부분의 것들이 대부분 의미가 없다는 느낌마저 받았어요. 대부분 버리기로 했죠. 


Q 할아버지하고 가까웠는데도 그러신 건가요?

A 매우 가까웠어요. 이 글을 부모님이 보시면 질투하시겠지만, 어떤 면에서 할아버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영혼을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도 앞서와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난 이제 나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할아버지의 존재는 점점 페이드아웃 될 거예요. 때때로 떠오를 추억 뿐이 안 되는 거죠. 


Q 뭔가 허무한 결론이네요.

A 허무하다면 허무하겠지만, 또 한편에선 묵은 불안감이 사라지는 이야기에요. 사람이 갈 때가 되면 가는 것이고. 결국 남는 건 없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을 때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살아내냐 뿐이죠. 우리 부부는 도원결의를 했어요. 한날 한 시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한 날 한 시에 죽기를 바라옵니다!라고요. 가능하다면 안락사…사람에 따라 어두운 이야길 수도 있으니 넘어갈게요.


Q 아내분 의견은요?

A 아내야 원래 딩크를 생각했어서 뭐. 


Q 육아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이 자식 키우는 재미가 반이라고. 둘만 살면 점점 지루하다고 하는데 결혼 10년차로서 어떠신가요?


A 지루해지다뇨! 오히려 점점 재밌어졌습니다. 뭐가 재밌냐 하면,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됐네. 약속이 있어서 나머진 다음 글에서 읽어주세요. 안녕.


P.S. 길어졌네요. 나머지는 다음 글에서. : )

매거진의 이전글 사자자리 아내와 물고기자리 남편의 흥겨운 결혼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