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을 다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천천히 읽으세요." 이 말은 2년 전쯤이었나. 이기호 작가가 신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출간 기념 북토크 행사에서 들려준 말이다. 소설가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보는 것이기도 하고, 전작을 다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라 무척 설레던 날이었는데,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나 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창작의 비밀을 묻는 청중에게, 이기호 작가는 저렇게 답했다. 소설을 천천히, 다시 읽으세요.
그 날 여러 장면들과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지만 가장 깊은 인상으로 남은 건 저 말이었다. 저 단순한 말 어딘가에 소설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을 써야겠다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기에 그 말대로 따라 해 보았다. 그 후로 몇 권 정도는 끝까지 읽고,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한 번 더 읽으니 이야기가 더 다채롭고 풍부하게 다가와서 좋았지만 확실히 긴장감은 떨어졌다. 재미도 덩달아 떨어져서 두 어권 정도 그렇게 읽고 더 시도해보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빨리 읽고 다음 책을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은 쌓여있고 읽어야 할 목록은 한가득인데,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래서 빨리 읽고 해치워 버리는 식으로 읽어댔다. 견물생심이랄까. 넘쳐나는 신간도 신간이지만, 블로그 하며 독서모임 하며 자연스레 여러 책들 알게 되니 그 모든 책들을 다 읽고 싶었다. 블로그 아이디에 걸맞게 문학에 대해 풍부히 알아야 하고,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될 줄 알았던가.
책 읽기와 글쓰기는 어느 순간부터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느껴졌는데,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잘 안 풀리거나 혹은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싶은 회의감이 들 때면 종종 다른 블로그를 염탐한다. 기존에 알고 지내던 분들은 물론이고, 알지 못하던 분들, 블로그 이웃의 이웃의 블로그까지 가보기도 한다. 그렇게 인터넷 파도를 타고 다니다 보면 종종 괴물처럼 읽어대는 다독가를 만나기도 한다. 얼마 전엔 입이 떡하니 벌어질 정도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블로거를 알게 됐다. 자기계발서나 특정분야가 아닌, 밀도 높은 고전문학들을 읽고 한 주에 몇 편씩 글을 올리는 분이었다. 블로그를 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직장 생활하시는 분인데도 그러는 걸 보니 대단해 보였다. 그런 글들 읽으면 나도 눈에 불을 켜고 읽어야겠다는 생각부터 드는 것이다. 욕심은 조급증을 부르고, 질과 밀도는 양과 속도로 치환됐다.
어떻게 하면 저리 빠르게 많이도 읽는 걸까? 사실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건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른바 속독술이 상품이 된 건 꽤 오래된 일이다. 처음 속독술에 대해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학교 선생님은 "너희들이 속독술을 알아? 휘리리릭 순식간에 책장을 넘겨서 한 권 뚝딱 끝내고 눈을 감으면 말야, 머릿속에 책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쫘악 펼쳐지면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는 속독술 말이야"라며 속독술을 영웅담처럼 설명해주었다. 몇 분 만에 뚝딱 책 한 권 읽을 수 있다니, 무척 달콤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처럼 속독술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적여봐도 속독술에 대한 부작용은 넘쳐난다. 속독을 잘못 배워 더 이상 책 읽기가 불가능해진 사람도 있는가 하면, 속독을 배운 뒤 책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는 사람까지, 늘 그렇듯 이런 목소리들은 그늘에만 갇혀 있는 법이다.
지독한 독서가로 유명한 문유석 판사는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어린 시절 속독학원을 다닌 일화를 들며 속독술의 허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바라는 속독술이란 없으며 오직 다독이야말로 속독의 비결이라는 말이다.
나는 원장에게 물었다. 저, 솔직히 몇몇 단어와 조각조각 내용들만 들어오고 세세한 부분은 보지 못하는데 괜찮은 거예요? 원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원래 그렇게 하는 거다, 넌 참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속도 측정 후에는 각자 읽은 내용을 모두에게 설명해야 한다. 문제는 어릴 때부터 집에 틀어박혀 애들 책이고 어른 책이고 미친듯이 읽어대던 책벌레이자 활자중독 환자(읽을거리 없이 화장실에 앉으면 불안해져서 벽에 붙은 찢어진 신문지까지 읽었다)였던 나는 그 학원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이미 다 읽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구라와 뻥 실력은 타고난 것, 속독을 했든 안 했든 다 설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갈수록 이런 나에 대해 경악했고, 난 어차피 싫지만 다니래서 다니는 학원이었던데다 점점 이게 다 미친 짓이라는 확신이 강해지고 있었기에 그런 반응들이 통쾌하기까지 했다. 책 좀 빨리 읽어서 무슨 입신양명들을 하시려는지 중고생, 대학생, 직장인까지 열심히 눈알 데굴데굴, 책장 휘리리릭에 목을 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알 빨리 잘 굴리던 초반기 우등생 누나조차 나를 따라잡아보려고 바둥거리다가 결국엔 포기하고 경외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되었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이야기가 좀 샜는데, 책을 천천히 읽으라고 주장하는 이는 비단 이기호 작가만이 아니다.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한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독서 인생에 대해 쓴 《읽는 인간》이라는 책에서 '재독(再讀, rereading)'의 중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이 책 정말 좋다. 문학을 좋아한다면 읽어볼 만하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읽으면, 읽기가 반복될수록 정확한 의미와 훌륭한 표현들을 발견하고 기억하게 되고, 그러면서 내면의 깊이와 지식의 축적이 자연스럽게 쌓인다는 말이다. 재독은 오에 겐자부로에겐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고 한다. 매년 집중해서 읽을 고전을 정해두고, 번역본과 원서를 번갈아 읽으면서 반복해 읽었다고 한다.
책 한 권을 처음 읽을 때, 우리는 언어의 라비린스labyrinth, 즉 미로를 헤매듯 독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한 번 더 읽을 때는 방향성을 지닌 탐구가 됩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서 그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행위로 전환되지요. 그것이 한 번 더 읽는 까닭입니다.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쓰다 보니 오에 겐자부로의 책까지 와버렸는데,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은 오에의 책이 아니라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2008, 문학동네, 김효순 역)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교토대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24살에 아쿠타가와 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다(아쿠타가와상은 일본 순수문학계열의 상으로는 가장 권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 문학에 별 관심이 없고, 더더군다나 현대의 일본 작가는 문외한이라 이름조차 처음 들어봤지만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독서법은 '슬로 리딩'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천천히 읽기'다. 실은 저자는 오랫동안 속독을 동경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속독술 책들이 일본에서 건너온 게 많은 걸 보면 일본에는 훨씬 오래전부터 그런 풍토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몇 번이나 시도를 해봤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나만 이렇게 느리게 읽는 걸까?' 고민하다가 동료 작가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 느리게 읽는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속독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시종일관 속독술을 비판한다. 속독이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단순한 감상만 남을 뿐 깊이 있는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행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낯선 지방에 간다고 했을 때, 같은 장소라도 출장 때문에 갔다 한두 시간 정도 휙 둘러보는 것과 일주일 정도 머물며 지도까지 들고 꼼꼼히 둘러보는 것이 같을 수 있냐는 말이다. 물론 그 장소가 충분히 여유를 갖고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또 따져봐야겠지만 말이다.
'슬로 리딩'이란 차이를 낳는 독서기술이다. 여기서 '차이'란 속도나 양의 차이가 아니라 질의 차이를 말한다. 특별한 훈련은 전혀 필요 없다. 그저 느긋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그것만으로도 내용 이해가 배가될 몇가지 비결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책을 읽는 방법》
넘쳐나는 것이 정보요 지식인 빅데이터 시대에 저자는 슬로 리딩이야말로 남들과 다른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독서법이라고 한다. 과연 모든 것이 컴퓨터로 돌아가는 시대에, 양 앞에 장사가 있겠는가. 사실 책에 담긴 정보들, 예컨대 줄거리나 숨겨진 의미, 시대적 배경 등등에 관한 정보들은 인터넷에 쳐보기만 하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책을 읽지 않고도 리뷰를 쓸 수도 있을만큼 말이다. 그러나 독특한 시선이나 남다른 깊이는 마음만 먹는다고 따라오는 것들은 아니다.
그렇다면 슬로 리딩은 어떻게 실천하면 되는 걸까?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건, '작자의 의도'다. 저자에게 죽음을 고하는 시대이지만 히라노 게이치로는 작자의 의도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다만 작자의 의도를 시험 문제 풀듯 찾아내는 게 아니라, 그 의도를 찾아가려는 여정 가운데 책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이 열린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표현한걸까? 이 부분은 왜 이렇게 묘사한 걸까? 논지는 왜 이렇게 전개한 걸까?' 등등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읽으면, 오독 또한 창조적인 오독이 된다고 한다. 이 외에도 남에게 설명할 것을 전제로 읽어라, 모르는 낱말은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들여라, 헷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가서 다시 확인해보라 등등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준다.
책은 3부-슬로 리딩 기초편, 테크닉편, 실천편으로 이뤄져 있다. 기초편에서는 슬로 리딩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며 테크닉편에서는 슬로 리딩의 기술에 대해 알려주고, 실천편에서는 몇 가지 텍스트로 저자의 방법대로 슬로 리딩을 적용해본다. 아무래도 저자가 소설가이다 보니 책에서 말하는 방법론은 거의 소설에 해당되는 방법들이다. 물론 인문서에 대한 내용도 조금 있고, 실천편에서는 푸코의 <성의 역사>를 텍스트로 다루기도 하지만 구색 맞추는 느낌이랄까. 저자가 이 책을 내고 3년 후에《소설 읽는 방법》이란 책을 내고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는데, 목차만 봐서는 이 책의 심화편이 아닐까 싶다. 역시 문학동네에서 펴냈고, 한 번 읽어볼 참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가장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독서법에 만능열쇠란 없다. 나 아닌 누군가로 하여금 책을 읽히게 할 수 없듯이, 책 읽는 방법 또한 오롯이 배울 수 없는 영역이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주고 경험담을 들려줘도 직접 해보면 빈 틈은 생기기 마련이다. 이 과정이 때론 답답하게 느껴질 지라도, 그 틈은 균열이 아니라 조금은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는 가능성으로 봐야 할 게다. 독서법에 관한 책은 이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나의 세계가 조금은 확장될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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