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 일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일
디자이너로 사업을 시작한다는 건 분명 축복받은 일이다. 디자이너들은 대개 손기술이 좋다. 그것이 나무를 다듬고 깎는 제조 기술이든,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디지털 툴이든, 창업 초기에는 웬만한 직무를 혼자서도 다 해낼 수 있는 ‘전능함’을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무니토를 시작하고 처음 2~3년은 말 그대로 1인 다역의 무대였다. 제품 디자인과 설계는 기본이었고 발주, 고객 상담, 직접 배송, 쇼룸 계약과 인테리어, 매장 관리, 홈페이지 제작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쳤다. 몸은 고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디자이너로서 가장 순수하게 즐거웠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경영'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내 삶에 침범하기 전이었으니까.
나는 디자이너 출신치고는 꽤 보수적이고 숫자에 밝은 편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말하는 ‘회계 경영’의 기본, 즉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흐름을 철저히 계산하는 것이 내 스타일과 맞았다. 작은 회사의 경영이란 결국 가계부를 성실히 쓰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가 디자이너인지 대표인지 정체성이 흐릿해지는 시점이 찾아왔다. 내 근본은 분명 디자이너인데, '대표'라는 이름표가 직업처럼 나를 덮어버린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대표는 선망의 자리일지 모르나, 나에게 대표는 그렇게 가볍게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 무게의 저변에는 함께 하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막연했다. "회사 다니면서는 못 하는,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만 해서 내가 팔고 싶은 대로 팔 거야."라는 결심이 전부였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자꾸만 '하고 싶은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경영을 위해 해야 하는 디자인을 하고, 조직을 위해 해야 하는 의사결정을 내린다. 내가 나를 의식적으로 깨어있게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나는 오로지 '해야 하는 일'들로만 하루를 채우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하고 싶었던 게 뭐였는지 가끔은 기억나지 않을 때, 나는 다시 10년 전 창전동 지하 사무실에서 혼자 외로웠지만 치열했던 그 시절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대표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 안의 디자이너는 묻는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대표라는 직업을 수행하고 있나요?"
오늘도 나는 디자이너와 대표,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접점을 찾는 중이다. 이 고민은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오늘도 오늘의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며,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의 균형을 필사적으로 맞추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