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lcefarniente Jun 28. 2018

몬순의 계절, 벵갈루루

남인도에서 한 달을 살아보자




'그래, 가자!'라고 결정을 내린 그 날로부터 1년 전쯤 나는 막연히 '인도에 갈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어떤 단어를 썼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나는 인도에 가고 싶다기보다는

인도에 반드시 곧 갈 거라고 말했던 듯하다.

그때까지는 인도에 대한 대단한 관심도, 인도와의 어떠한 접점도 내 인생에 없었는데 말이다.


그로부터 1년 후 나에게 인도에 갈 마법 같은 인연과 기회가 생겼고 나는 이를 덥석 잡아버렸다.


또 6개월 남짓이 지나 작년부터 계획되었던 이 여정은 어느새 시작되었고

나는 지금 남인도 카나타카 주 벵갈루루에 있다.




6월 9일

영국에 머물고 있었던 나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아부다비로, 그리고 다시 벵갈루루로 날아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랜 가뭄으로 메말랐다던 벵갈루루는 예상보다 이른 몬순으로 싱그러웠으나 

'벵갈루루는 북인도와는 달리 평화롭고 정돈된 인도의 실리콘 밸리야'

라는 주변의 이야기에 나의 기대가 너무 높아졌던 것일까?


공항에서부터 시내까지 엄청난 교통 체증을 견뎌내고

-그 와중에 난 택시 안에서 머리를 휘저으며 참 잘 잤다. 참 겁도 없다. 일행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숙소에 가기 위해 사방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오토(릭샤), 바이크, 자전거들을 피해 길을 건너며

또 포장되지 않은 (비포장이라기보다는 포장되었다가 뒤엎어진) 도로의 뿌연 흙먼지와

그 뒤에 즐비한 오물을 보며 나는 곧

'그래, 난 인도에 있구나'하게 되었다.


길 고양이, 떠돌이 개도 아닌 길 '소'를 보게 될 줄은 또 몰랐다.  




내가 5주 동안 머물게 될 방은 깨끗하지는 않지만

나름 작은 침대와 책상, 선반, 옷장, TV, 스토브와 개인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다.


전면이 분홍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는 것이 묘하게 웃음을 일으키는 이 방의 벽면을 손으로 슬쩍 쓸자

노란 흙먼지가 묻어져 나왔고, 구석구석 거미줄이 이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나름 이러한 환경에 신체적, 정신적 면역이 되어있는 나는

'인간의 면역력이 얼마나 강인한지, 어느 정도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까지 건강히 잘 살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증명할 시간이네'하며 불평을 틀어막았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옆으로 누우면 어깨가 저릿저릿 배길 정도로 딱딱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에서 돌아가고 있는 붉은 갈색의 팬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5년 전 멕시코 시티에서 2주 정도 지냈던 어두운 호스텔 방을 떠올리게 되었고

선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몽롱한 상태에서 한동안

'내가 또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다고 한 걸까'

'나는 왜 대체 편하게 살지를 못하는 걸까?'

'나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이건 꿈인가?'

'그냥 일주일 후에 돌아갈까? 리턴 티켓 날짜를 바꾸면 많이 비쌀까?'

'이렇게 징징대다가도 난 이번에도 무사히 재미있게 잘 지내다가 갈 거야'를 순서 없이 되뇌다

불을 켜둔 채로 이내 잠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