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소르를 기억하며
열흘 전쯤 나는 필드워크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적었던 그곳의 시간과 지금 돌이켜보며 기억하는 그곳의 시간은 참 다르다. 떠나온 곳의 기억은 왜 또 이렇게 좋게 혹은 나쁘게 (하지만 보통은 더 아름답게) 왜곡되는지. 왜 이토록 더 애틋해지는지 모르겠다.
마이소르로의 짧은 여행도 그러하다. 여행을 마치자마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면, 더 생생한 경험담이 이곳에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보는 마이소르로의 여행은 애틋하게도 그 머물고 흘러가던 인도에서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마이소르로의 여행을 계획한 그 주에 나는 유달리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마이소르행 기차는 아침 여섯 시에 출발이었다. 토요일도 일을 하기 때문에 일요일에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밖에 있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으며 편도로 4시간인 기차가 편할리 없었다. 토요일 밤 나는 여행을 같이 가기로 한 친구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마이소르 팰리스에 안 가면 바보짓이야?"
이 친구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개인주의적인 사람으로 나는 사실 무엇을 묻든 그녀가 'It's up to you.'라고 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 질문을 재차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여러모로 꽤나 시큼했다.
"응"
그렇게 우리는 해가 뜨기도 전 이른 아침, 벵갈루루 역에서 마이소르행 기차에 올랐다. 사실 우리가 마이소르에 가는 목적은 마이소르 팰리스가 전부였기 때문에 마이소르에 우리가 머문 시간은 짧았고, 그날의 피로감 때문인지 마이소르의 기억은 나에게는 미미하다.
(마이소르 팰리스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나름 이곳은 타지마할 다음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 한다. 보통 일일 여행 패키지로 마이소르 관광을 할 경우 마이소르 팰리스와는 조금 떨어진 힌두사원과 유명한 동물원을 간다고 하는데, 나와 친구는 모두 윤리적 이유로 동물원은 갈 수 없다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에, 마이소르 팰리스만을 방문했다.)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에 궁전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신발을 벗어야 했고, 궁전 안팎의 수많은 힌두사원을 보았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낙타를 보았으며, 우리는 아침밥, 점심밥, 간식까지 식당과 카페 선택에 실패했다. (음식을 그냥 두고 나왔어야 할 정도로.)
지금에서야 다시 돌아보는 그날 마이소르 여행의 기억은 8시간 정도 앉아있었던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었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생각을 하던 나의 모습이다. (이 정도면 생각하기가 취미라고 해도 되겠다.) 수많은 생각을 했었을 텐데, 지금 기억하는 생각들 중에는 이러한 생각이 있다.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욕심 많은 나는 인생의 한 분기점이 지나갈 때마다 많은 경우 아쉬운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더 잘할걸, 더 적극적으로 해 볼 걸, 더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어볼걸, 더 많이 모험해볼 걸'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할 걸'하는 마음보다는 '그래 좋았다. 이번에도 잘 넘겼다. 네가 할 만큼은 했지.'하고 왠지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 물론 '더 잘할걸'이라는 마음이 '다음에 더 잘하자'로 실제로든 마음 깊은 곳에서든 긍정적인 영향력을 그 이후의 삶에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 이번에도 잘 넘겼어'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보니 이상하게도 나는 예전보다는 조금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번에도 어쨌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해서 마무리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참 융통성 있고 유용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그냥 또 이렇게 시작해보면 된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결론난 이 생각을 하면서 사실 나는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수많은 과거의 시간들을 되새겼던 것 같다. '내가 후회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채기 전에 진심이든 아니든 '그래 할 만큼 했어'하며 급한 마무리를 하는 것은 조금 비겁해 보일 수는 있지만, 이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적어도 나에게는) 용기를 준다.
영국의 한 작은 방 안에서 돌이켜보던 시간을 돌이키는 시간을 갖는 지금, 마이소르를 다녀온 그날 기차 안의 기억과 인도에서의 시간은 흐르는 내 삶의 시간과 함께 흘러간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잠시 멈추어 머물었다 사라진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왠지 애틋하다. 지금 이 시간 또한 언젠가 되돌아보았을 때 잠깐 머물다 사라져 아득하고 애틋하게 기억될 것 같다. 그 돌아볼 시간에도 나 자신이 '그래 그 정도면 잘했어. 좋았어.'하고 나아갈 만큼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