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축구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by mupdayz


어린 시절, 아버지는 지독한 야구광이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왜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아버지의 빛바랜 고교시절 사진에는 야구복을 입은 아버지가 있었고, 매년 연초가 되면 새로운 프로야구 선수연감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아버지의 야구사랑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야구를 강요당했다. 아이들이 딱지와 구슬에 미쳐 있을 때, 아버지는 내 손을 붙들고 동대문 운동장에 가서 황토색 가죽으로 빛나는 야구 글러브와 연식 야구공을 선물해줬다. 아마도 아버지는 내가 커서 박찬호라도 될 줄 아셨나보다. 그러나 나는, 운동에는 전혀 소질을 보이지 않는 소년이었다.


지독한 야구광인 아버지는 지독히도 축구를 싫어했다.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야구는 축구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축구를 ‘머리를 전혀 쓰지 않고, 그냥 공 몰고 골대에 넣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스포츠’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므로 집안에서 군주처럼 군림하던 아버지였기에 축구를 좋아한다 해도 좋아하는 척할 수 없이, 그렇게 나를 비롯한 형제들은 조용히 주말 TV 야구 시합을 관전하며 자라났다. 그러나, 나도 축구를 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다. 그것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였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시절. 당시 우리 중학교에는 대단한 축구 열풍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 나라 대표팀이 세계무대에서 승승장구를 하는 대외적인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우리 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었고, 농구코트는 3학년의 전유물, 테니스 코트는 선생님들의 취미공간이었으며, 스포츠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곤 축구 골대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 자갈과 모래가 반쯤 섞여 있는 커다란 운동장 뿐이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공 하나 들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축구 뿐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체육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수월찮게 아이들에게 축구를 시켰다. 그것도 몇 명을 주전으로 뽑고, 후보로 빼낼 수 없었기에 각 팀 15명의 괴이한 축구시합을 벌렸다. 남녀합반 60명 중 남자 30명 모두 총출동했고, 당연히 여학생들은 나름대로 편을 갈라 응원을 했다. 안그래도 여학생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끓어오르던 사춘기의 청춘들, 이런 때가 아니면 자신을 어필할 기회가 없었다. 아이들은 골키퍼가 공을 높이 차면 공을 잠시라도 만져보기 위해 미친듯이 뛰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응원하던 여학생 중에는, 나만의 여신 H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축구에 관해서라면, ‘깍두기’에 다름없는 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만을 종용해왔던 아버지 때문이라면 변명이고, 나는 그저 타고나기를 운동에 재능이 없는 놈이었던 것이다. 45분의 체육시간 동안 내 발에 공이 닿는 순간은 항상 15초 남짓에 불과했다. 포지션이 전혀 정해지지 않아서 공이 오른쪽으로 날아가면 오른쪽으로 몰려들고, 왼쪽으로 날아가면 왼쪽으로 몰려드는 지칠줄 모르는 아이들의 혈기왕성한 흙먼지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제3의 관객이었다. 나는 정말, 축구를 잘하고 싶었다. 그 어떤 여학생도 날 쳐다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H에게 박수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나에게는, 우리반의 ‘축구 영웅’ K라는 단짝친구가 있었다.


어느날 나는 진지하게 K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축구를 잘 할 수 있느냐고. 그러자 K가 대답했다. “공이 머리위로 날아오면 무조건 높이 뛰어.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팔과 다리를 마구 휘저어. 그러면 아이들이 무서워서 피해. 그 때 공을 잡고 달리는 거야. 축구는 그런 면에서 동물의 왕국과 같지. 강해보이기만 하면 일단 접고 들어가는 거라구.” 녀석은 그렇게 나름대로 축구에 대한 철학까지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때부터 K와 방과후 축구를 했다. 함께 축구를 했다기보다는, 녀석이 나를 훈련시켰다는 편이 옳다. 오후 5시가 되고, 애국가와 함께 학교의 태극기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지고 땀에 쩔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신기할 만큼 축구가 늘지 않았다. 축구공을 몰고 앞으로 나가다가도, 사자처럼 덤벼드는 상대편 선수를 보면 어쩐지 오금이 저려 움찔 하며 공을 놓쳐버리기가 다반사였다. 어쩐지 이런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용기, 순발력이 필요한 축구라는 운동은 내겐 너무 버거운 스포츠라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옆반 아이들과 자존심을 건 축구시합을 하게 되었다. 돈인지 짜장면인지 뭔가를 걸었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주장인 K는 다른 아이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나를 주전으로 뽑았고, 나는 덜덜 떨리는 부실한 다리로 운동장 위에 섰다. 이윽고 휘슬도 없이 시합은 시작되었고, 나와는 관계없이 시합은 그럭저럭 흘러갔다. 달리기도 워낙 못하는 터라 우리 골대 앞에서 수비수로 어물쩡거리던 나는, 이윽고 전후반이 끝나고 연장전에 들어갔을 때 문득 한 쪽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여학생들을 보았다. 그 중, H도 있었다. 왜였을까, 그 순간 나는 저 멀리에서 올라갔다 떨어지곤 하는 공을 향해 내달렸다. 그녀 앞에서, 나의 멋진 중거리 슛을 보여주고 싶었다. 미친듯을 공을 향해 달렸다. 수비수인 내가 달려오자 K는 위험하다고 소리를 쳤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프라인을 넘어 상대편 진영에서 튀어오르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헤딩을 할 참이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는 무참히 상공을 갈랐고, 나는 곧바로 운동장으로 고꾸라졌다. 모래반 자갈반의 바닥에 얼굴을 비벼대곤 쓰라린 얼굴을 부여잡기도 전에 나는 뒤에서 들리는 환호성을 들었다. 내가 놓친 공은 곧바로 옆반 녀석들에 의해 우리편 골대로 날아갔고, 수비수가 없던 무방비 상태에서 골기퍼는 일당 백으로 여럿의 공격수를 맞이하다가 결국 골을 먹은 것이었다. 그렇게, 시합은 무참히 끝이 나버렸다.


11명:11명의 시합을 11명:10명의 시합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고, 우리는 졌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운동장에 멍히 서 있는데, 저 멀리 까만 양복을 입고 나를 쳐다보는 아버지가 보였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집에 가려고 일찍 퇴근해서 나를 데리러 학교에 왔다가, 당신이 싫어하는 축구를, 그것도 제대로 공을 차지도 못하는 얼간이 같은 아들을 목격한 것이다. 나는 가방을 들고 털래털래 아버지에게 갔다. 예상외로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내가 흙먼지가 잔뜩 묻은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자, 아버지가 말했다. “거봐라, 축구 재미없재?”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응”이라고 대답했지만, 정말 싫었던 게 축구였는지, 축구를 못하는 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내 손을 붙들고 체육사로 들어갔다. 나는 아버지가 이 김에 새로운 글러브와 배트를 사주며 야구를 종용하려는 건가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는 건 까맣고 하얀 오각형들이 박혀있는 축구공이었다. 중앙에는 ‘FIFA’라는 글자가 명확하게 찍혀있었다. 축구를 싫어하는 아버지가 내게 축구공을 사준 것이다. 하지만 축구연습을 하라든지, 축구공을 사주었으니 야구도 열심히 하라든지, 혹은 공부라도 열심히 하라든지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 말은 단 한 마디였다. “이게 세계에서 공인하는 피파라는 공인구란다. 제일 비싼 기다.” 그리곤 아버지는 자꾸 뒤돌아 손짓을 하며, 축구공을 들고 당신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패잔병 차림의 아들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골목에,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퍼지던 어느 가을의 저녁 무렵이었다. 비록 아버지에게 받은 축구공으로도 나는 단 한 번도 ‘축구를 잘 하는 아이’가 된 적이 없지만, ‘축구’를 생각하면 어쩐지 나는, 항상 그때 그 순간이 생각난다. 축구를 싫어하는 아버지가 사준, FIFA 공인 축구공의 모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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