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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이 된 엄마

1996

by 무량화

시민회관에서 야생화 전시회가 열렸다.

에델바이스로 더 잘 알려진 솜다리꽃도 구경하고 하얀 종이 조랑조랑 매달린 은방울꽃도 만나 보았다.

수석에 연출시킨 애기붓꽃과 해오라기난초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유년의 봄 동산이 아른거리는 할미꽃은 기어이 떨칠 수 없어 한 포기 사들고 왔다.

수더분한 토기에 심어져 하얀 솜털에 싸인 채 입술 오므린 할미꽃.



할미꽃을 바라보면 절로 마음 가득 다사로운 물살이 찰랑댄다.

외가에서 보낸 어린 시절.


긴긴 겨울이 끝났음을 제일 먼저 일러준 할미꽃.

양지바른 산언덕 마른 잔디 틈새로 돋아난 할미꽃을 따서 조바위 만들어 머리에 얹고 뛰놀던 추억뿐이랴.

꽃 진 자리에 가지런히 호호백발 수염 날리던 할미꽃.

고갯마루에 쓰러져 세상 떠난 할머니의 무덤가에 이듬해 봄, 허리 굽은 꽃이 피었더라는 슬픈 전설.

그 얘기 듣고는 눈자위 발개지던 아이도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우단 같은 꽃잎의 질감을 즐기며 볼에 간지르던 보드라운 촉감이 생각나 할미꽃 화분을 바라보는 눈길 그윽해진다.



낮게 고개 숙인 진자줏빛 할미꽃이 핀 아침.

직사각형의 자그마한 소포를 받았다.

낯익은 딸아이 필체라서 얼른 뜯어보니 칼슘 약이 들어 있다.

설명서에는 천연 칼슘에 비타민과 미네랄이 포함된 종합 영양제라고 적혀 있다.

단단한 골질 조직을 만드는 주성분이 칼슘이니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약인가 보다.



뼈는 몸을 지탱하게 해주는 기둥 역할을 한다.

만일 칼슘 공급이 부족해 뼈의 골 질량이 떨어지면 자연 허리가 굽는 것은 물론 척추에 만성 통증이 생긴다.

약한 충격에도 골절이 쉽게 온다.

특히 내 나이쯤에 이른 대부분의 여자들은 다들 골다공증을 겁낸다.

마치 바람 든 무처럼 뼈에 구멍이 숭숭 난다는 골다공증.



노화의 신호이기도 한 골다공증은 갱년기 증상의 하나로 여성호르몬 작용이 끊기면서 동시에 골 밀도를 급격히 떨어뜨려 생긴다고 한다.

요즘 들어 내가 억지로라도 우유나 치즈를 자주 먹는 까닭도 그런 연유에서다.

평소의 식생활에서 칼슘 섭취가 미흡한 편이니 약제로라도 보충해 두라는 딸아이의 마음씀이 읽힌다.

딸아이의 배려를 접하자 그만 또렷한 자태의 할미꽃마저 어룽져 보인다.



뒷동산에 할미꽃/꼬부라진 할미꽃…

노랫말대로 등이 많이도 굽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신 여든의 울엄마.

잠시만 걸어도 길가 아무 데나 앉아서 쉬어야 할 만치 어렵다 하시면서, 굽은 허리로 인해 등줄기가 아프다고 힘겨워 하실 적이 잦다.

그래도 일을 해야 사는 것 같다며 직장에 매인 언니 대신해 집안 살림 깔끔맞게 거두느라 종종걸음치는 엄마.

조그만 체구가 지금은 더 왜소해져 잠든 어머니는 마치 아이 같다.

하늘로 돌아갈 때를 예비해 미리 가벼워지고자 함인가.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알게 모르게 키가 줄어든다.


자꾸만 살도 빠진다.

지팡이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어머니의 등은 점차로 굽어가는데 멀리서 마음만 쓰일 뿐 아무런 힘도 되어 드리지 못하는 나.

안타까운 여식의 심정을 하늘이 헤아렸음인가.

우연히도 딸아이가 외할머니 곁으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이 엄마를 대신해 톡톡히 효녀 노릇을 한다.



어디서나 마다 않고 기꺼이 지팡이 역할을 도맡는 딸아이.

덤덤한 성격과는 달리 꽤나 속 깊고 인정스럽다.

외출하는 할머니를 부축해 거들며 살갑게 보조를 맞추는 딸아이를 지켜볼 적마다 고맙기 그지없다.

내게 잘하는 것보다 몇 곱절 대견하고 기특해서 흐뭇한 마음으로 고마이 여긴다.

평소 의젓하니 도량 넓은 딸아이라, 나 역시 나이나 위치를 떠나 때론 친구 같고 동지 같은 느낌이 들 적도 있다.



그 딸아이가, 할미꽃처럼 허리 굽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다 보니 은근히 이 엄마가 걱정됐던 모양이다.

반면 나는 내 엄마에게 얼마나 사려 깊지 못한 딸이었던가.

옳은 보약은커녕 영양제 한 번 사드린 적 없이, 되레 굽은 허리가 남세스럽다고 내심 투정이나 했으니 말이다.

받는 데만 익숙했을 뿐 되돌려드리는 일에는 웬 핑계며 변명이 그리도 무성히 앞섰던지.



지금의 내 나이쯤일 때 아주 단아한 자태이셨던 울엄마.

허리가 굽을 조짐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런 따위 우려는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골다공증이란 단어 자체를 알지 못했던 그 시절.

한창 유행하던 나이아가라 천으로 지은 오동꽃빛 물색 고운 한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흰 피부의 어머니를 더한층 돋보이게 하던 그 아련한 보랏빛 속에서야 오늘의 엄마를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사실 우리의 어머니들, 당대의 대부분이 그랬듯 층층시하에 부대끼며 칠거지악이란 족쇄로 옭아맨 삶이었다.

곤고한 삶의 마루턱 허위허위 넘기 바빠 언제 당신 건강 챙길 여유인들 있었던가.

모자라는 것을 쪼개고 늘려가며 아껴아껴 살아야 했으니, 노후 대비해 일신 돌볼 여지가 있을 턱이 없었다.

한 점 생선조차 자식 밥술 위로 건네며 오로지 헌신적인 희생으로 일관하신 한 생애.



반면 이제는 의식주 모든 면이 넘치도록 풍요로운 세상이다.

윗대의 전철을 답습하지 말되 그 지극한 사랑만은 간직한 채로 매사 지혜롭게 살라고 할미꽃 울엄마가 스승 되어 교훈을 준다.

간혹 아만에 찬 이기심에 빠져 나대는 나를 향해 눈빛으로 이르시곤 한 말씀도 떠오른다.

“너는 너이기 앞서 네 아이들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할미꽃 화분과 나란히 칼슘 제재 약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미소 속에 잠겨있는 나.

가슴에 따스함이 그득 고여 온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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