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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별거더이까

by 무량화


대전 역사에서 냄비우동 시켜놓고 체면이 있지 그냥 먹을 수 있나? 떠먹을 대접 주이소, 하는 사람 없다 카이.

그땐 양쪽 손잡이가 달린 누런 양은 냄비 약간 찌그러져 있어야 제격 아니등교,

사실 막걸리 주전자나 술그릇도 양은이 더 그럴싸하게 어울리듯이 말이제.

이렇듯 탁주는 탁주에 맞는 그릇이 있는 법, 놋 주전자나 도기 주전자라면 맑은 청주 쪼르르르 따러야 되겠지만서두.

그처럼 더러는 냄비째 먹어야 맛이 더 나는 음식이 있다 카이.

뚝배기가 있으면 게다 끓였겠지만 대신 중간치 냄비에다 시래기찌개를 끓였는데예.

지난가을 삶아서 얼린 배추 시래기를 대충 잘라 된장에 치대다가 마늘과 멸치 한 움큼에 뜨물 넣고 팍팍 끓여줬심더.

보글보글 멸치 진국 우러나게 끓을 때 사진 찍었어도 요 모양으로 무덤덤, 다 식어빠진 시래기 찌개 같지만 갓 끓인 겁니더.

시래기 찌게 또한 그릇에 떠먹는 건 맛을 반감시키는 짓, 일부러 냄비째 상에 올려놓았지러.

김장김치 숭숭 썰어 수육 곁들여서 한 접시에 담아 놓고 점심을 먹었심더.

밥숟가락 위에 시래기 둘둘 얹어 한술 뜬 다음 배추김치에 싼 수육 한 점 우적우적 씹다가 된장국물 떠서 후루룩.

머 어떠 까이~한국인데 눈치 볼 일 없이 집안에 확 퍼진 구수한 된장찌개 내음 음미하며 식사를 즐겼답니더.

행복이 별거락카더냐! 바로 이런 게 행복이지러, 싶더구마.

더구나 단순한 상차림이라 설거지 거리도 별로 나오지 않아 누이 좋고 매부도 서로 다 좋은 거 아니겠능교.

자유자재 쏘다니다가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 갇힌 언니는 꽃집 가서 색색 고운 화분을 네댓 개나 사다 놓고 행복해 카더라카이.

사실 트로트 열풍이 전국을 휩쓴다 해도 거기 혹할 언니가 아닌데 트롯 경연이 있는 금욜밤을 기다리는 등 평소 안 하던 짓을 한 것도 코로나 시국과 무관치 않았지러.

언니뿐 아니라 뒤늦게 그 대열에 합류한 내 역시 처음엔 영 시큰둥했다가 중반전도 더 지나 빨려 들어가지 않았겠심껴.

찬원이 신나는 노래에 어깨 흔들면서 어구구~ 귀여버라! 하는 짓도 이쁘데이! 하면시롱 거기 빠져 잠시 두렵고 우울한 누항사 잊고 자못 흥겨워했다카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무섭게 늘어나자 저마다 주체할 수 없는 불안과 대상 없는 분노심이 차올라 감정 격앙된 채였다 아잉교.

그렇게 코로나 블루에 빠진 우리 모두에겐 어딘가 기댈 현실도피성 공간이 필요했으며 따스한 위로와 위안이 절실했다카이.

흉흉해서 나돌아 댕기기도 저어 되니 집콕하며 각자 취미대로 즐기는 놀이나 하면서 이 깝깝한 시간 모쪼록 잘 견뎌내야 합니데이.

닳아빠졌어도 추억 아릿한 흘러간 영화 찾아본다거나, 날마다 포스팅이라도 새로 올린다거나, 산행을 간다거나, 무진무진
해안길 따라 걷는다거나, 바닷가에 나가 흉금 씨원해지는 파도 소리 듣는다거나, 독서등 켜고 늦도록 책 읽는 것도 좋겠지예.

이 난리가 하루 이틀 새로 단기간 내에 해결될 일도 아닌 바, 우야든동 심신 건강을 위한 환기창 하나는 열려있어야 되잖겠능교.

골프도 못 쳐, 외식도 못해, 피트니스클럽도 못 가, 꼼짝없이 죽치고 앉아만 있느니 마~이참에 블로그라도 열어 보시이소.

그간 댓글 공양 억수로 한 분들은 서너 줄 글, 사진 한 장 달랑 올라있어도 문전성시는 예약돼있다 아니겠는교.

훗날 그러시리다.

코로나 역병 땜시 블로그라는 노후보험 차진 걸로 제때 잘 들어놓았다카이, 으어험!

시락국인지 시래기 찌개인지 한 냄비 끓여놓고 "와 이리 좋노, 내사 마 머가 더 필요하겠노? 이 행복 허락해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데이."

해싸면서 머리 조아리는 이 심사 그때 십분 이해되실꺼구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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