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무렵

1996

by 무량화

빈 방이 늘어간다. 결혼하며 분가한 아들에 이어 딸아이가 학교를 외지로 가면서 또 하나의 방이 비게 된 것이다. 두 식구만 남게 되자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의 집이건만 휑뎅그렁하다. 그동안은 떠난 자리의 실감이 구체적이질 않았다. 가슴이 헛헛해지며 전신으로 스산한 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근자의 일이다.



텅 빈 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오는 냉기에는 공허감이 섞여있다. 단출한 살림살이로 한가해진 시간은 다 무엇으로 메꿀 것인가. 갑자기 맥이 풀렸다. 아득히 가라앉는 이 무기력증. 허허벌판에 홀로 선 듯, 무방비 상태로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듯 한기마저 스며들었다. 여태껏 나는 자신했었다. 내가 기대고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에 시간이나 여백 관리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나름대로 무리 없이 감정조율을 할 거라고 믿었다.



자신을 과신했던가. 이토록 속절없이 침몰해 가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삶의 활력이 자꾸만 증발해 버리는 것을 그저 지켜볼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데. 사는 게 아무런 재미도 없을뿐더러 매사에 의욕이 사라지면서 괜스레 심란스럽다. 중증의 의기소침이다. 아무 생각 없이 우두망찰 앉아있기 일쑤인 요즘. 우울증은 이렇게 오는 걸까. 극복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 거 같다.



무력감을 희석시켜 보려고 일거리를 찾지만 딱히 해야 할 일이 기다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일손마저 잡히지 않는다. 먹을 걸 챙겨다가 우적우적 입에 밀어 넣어 보았으나 도무지 맛이 없다. 자꾸만 부정적으로 치닫는 사고에 소극적으로 흐르는 몸 사림.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시키고 안으로 안으로만 기어드는 이 잿빛 우울은 어이할 것인가. 차라리 슬픈 노래 한 곡조라도 취한 척 불러보고 싶어진다. 아니 독작으로라도 술잔 기울이고 싶다. 이런 기분은 뜻밖이라 당황스럽다.



딸아이는 지난봄 외지 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땐 봄이어서 몰랐던가. 화창한 봄날 딸아이를 배웅하고 방 정리를 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느닷없는 감정이다. 헌데 이번엔 계절 탓인가. 심사가 울적하다. 적막강산에 든 것만 같다. 세상이 텅 빈 듯 사무쳐오는 쓸쓸함.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하였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딸아이는 학교가 있는 대전으로 갔다. 그 무렵이 바로 처서였다. 처서라는 절기를 무심결에 맞고 보낸 다른 해와는 달리 올해는 피부로 가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만큼 올 처서는 유별났다. 맹위를 떨치던 늦더위가 처서를 고비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하룻밤 무서리에 호박 넌출이며 고춧대가 폭삭 주저앉으면서 겨울이 오듯 너무도 명징하게 하루 사이에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어졌다. 베 홑이불의 감촉이 선뜩해지는가 싶더니 새벽녘의 찬 공기는 슬그머니 창문을 닫게 만들었다. 귀뚜리는 밤새 청승스레 울었다.



햇살이 창백해지고 바람결 삽상해지는 가을은 사람의 마음을 미묘하게 만든다. 왠지 모를 고적감에 어깨 오소소 움츠리게 한다. 어딘가로 지향없이 떠나고 싶게도 만든다. 걷잡을 수 없이 심곡에 찬바람이 몰아친다. 선인들의 혜안은 그래서 처서를 일컬어 천지가 쓸쓸해지는 때라 했던가. 과연 그랬다. 처서 때문이었다. 순전히 계절 탓이었다.



딸아이가 외할머니 곁으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된 지난봄. 친정어머니는 내 걱정이 앞섰다. "나는 좋다만 애들 다 내놓고 허전해서 어찌 살 거냐" 면서. 딸자식 신경 쓰여 눈치 보듯 하시던 말씀이다. 그럼에도 나는 "원 별소리를" 하면서 무심히 말했고 표정은 무덤덤했다. 허심을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괜찮은 척 흰소리 쳤던 게 아니었다. 아주 씩씩하게 '애들 다 크면 부모 울 떠나는 게 당연지사인데 뭘' 하는 식으로 외면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처음 맞는 딸아이의 객지생활이지만 내가 데리고 있는 거와 진배없는 터라 별다른 염려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나와는 달리 주변에서 들 더 내 걱정을 해줬다. 무료하면 나와라, 점심 살게. 시간 나면 구경 가자, 괜찮은 외화가 있던데. 그러나 정작 나는 별로 심심치도 않았고 기분 낮게 처지지도 아니했다. 빈둥지 증후군이니 우울증 따위에 발목 잡히기엔 나는 아직 팔팔한 나이다 싶었다.



불과 몇 달 상관인 지금은 가을. 빈 방을 뒤로하고 손 한번 흔들고는 딸아이는 기차를 타러 갔다. 몇 시간 후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온종일 말문 닫고 있다가 통화를 하려니 목소리가 얼른 트이질 않았다. 잠긴 듯한 음성에 "섭섭해서 손수건 적시고 있나 보네." 눙을 치는 딸아이. " 그래, 손수건으로 감당 안돼 수건 몇 개 적셨다." 나는 한 술 더 뜬다. 오후 내내 별 의미 없는 그 말들이 사방에서 되살아났다. 집이 텅 비어서 자꾸만 되울리는 걸까. 그때마다 나는 딸아이가 없는 빈 방 문을 열곤 했다.



빈 책상, 빈 옷걸이. 문득, 언젠가 본 매미 껍질이 떠오른다. 매미가 날아간 뒤에 남겨진 허물. 그처럼 텅 빈, 휑뎅그렁하게 텅 빈 공간이 주는 허허로움. 요즘 들어 내쪽에서 여기저기 대고 채근이 심하다. 날씨 좋은데 산에 가자. 우리집 부추김치가 알맞게 익었으니 점심 먹으러 오너라. 봄과는 반대 현상이다.



하늘빛 너무 푸르러 오히려 적연한 가을. 어쩐지 슬픈 노래 한 곡조라도 취한 척 부르고 싶어진다. 아니 독작으로라도 술잔 기울이고 싶어진다. 이런 기분은 정말 뜻밖이다.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