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그러나 생생한

by 무량화

지금은 ... 꿈만 같다.

아니 꿈인지 생시인지 아스름해진다.

그랜드캐년이 마무리되는 혹은 시작되는 동쪽 관문인 데저트 뷰 포인트.

우리 일행은 서쪽 윌리엄스에서 들어와 동의 페이지로 이동하는 중이다.

데져트 뷰에서 마주한 그랜드캐니언.

어딘지 몽롱하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전경,

아주 먼 지상 밖의 초월 공간인 샹그릴라를 바라보듯 몽환적이다.

그러나 거친 바람의 감각만큼이나 생생하게 숨 쉬는 그랜드캐니언이 품안 가득 안겨든다.

정녕 그랜드캐니언은 신의 작품, 대지의 화폭이며 하늘의 대서사시다.

수억 년 전 물과 바람이 빚어낸 풍경들이 교향악 되어 장대하고 웅장하게 연주된다.

경외(敬畏) 조차 빛바랜 진부한 수사가 되고 마는 곳.

헌데 절대미의 극치인 이 대자연 앞에서 왜일까?

오래전인 90년 초 미서부 관광 팀으로 처음 여기를 왔을 때도 그랬듯 문득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Go~!" 외치고는 그랜드캐니언의 벼랑 끝으로 차를 몰아 돌진해버리는 그 짧은 찰나가 영원이리니.




수많은 단구(段丘)로 이루어진 대협곡.

어마어마하게 큰, 그래서 '그랜드'라는 이름이 붙을만한 이 암석층의 웅장함은 차라리 말문을 닫게 한다.

잔등으로 좌르륵 전율이 흐르며 오직 두 손 모아지는 이 숙연함이라니

연령은 23억 세(歲)로 지구 나이의 절반에 해당하고 전체 길이가 446km에 달하며

폭은 13~26km에 이르는가 하면 깊이는 1500m로 걸어서 내려가면 이틀 걸린다.

하찮은 수치 감각으로는 도무지 가늠조차 힘들다.

이해를 쉽게 하자면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고속도로 길이보다 좀 더 길고
깊이는 태백산 높이에 해당된다.

그래도 내 슷자개념으로야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접근이 허용된 양대 림(Rim) 지역은 캐니언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니

잠깐 스쳐 지난 길손이 본 것은 캐년의 한 점에 불과할 뿐으로 뭘 보았다 말함은 부질없는 객기.

그러니 캐년의 위엄 어린 아름다움을 한 뼘 사진에 담기엔 역부족.

웅대한 스케일을 근사치로나마 표현해 낸 작가도 아직은 없다.




그날의 사진은 선명한 화질 하나 없이 장장마다 희뿌옇기만 하다.

아주 청명한 일기임에도 줄창 시야가 흐릿하더라니..

사정없이 후려치는 모래바람이 몰고 온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가벼운 코스를 택해 트레킹을 하는 아침녘부터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게 사방에서 거친 강풍이 휘몰아쳤다.

안전 난간이 있어도 전망대에 바짝 접근하기가 겁날 정도였다.

풍속이 엄청나 비틀거리고 휘청대는 하중을 지탱하느라 도중에 잠깐씩 걸음을 멈췄다.


구름이 질주하듯 재빠르게 이동하고 모자는 휙휙 절벽 아래로 날아갔다.

그래선지 캐니언 투어를 하는 경 비행기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이리 정신 못 차리게 부는 광풍이라면 아무래도 비행기가 뜨기엔 무리, 대신 바람 덕에 더운 줄은 몰랐다.

그 경황 중에도 기록사진 찍듯 끊임없이 폰을 눌러댔다.

나중에 돌려보면 건질 게 별로 없음에도.

하긴 감히 어쭙잖은 솜씨로 특별한 사진을 바란다는 게 좀 그렇긴 하다.

황금빛으로 음영 달리하며 신비감을 더하는 캐니언의 일출과 황혼 녘엔 번번이 시간을 놓치고 어중간한 한낮 밋밋한 광선 아래에서만 찍어댄 사진이다 보니 내가 봐도 별 재미는 없다.

눈에다 마음에다만 감동의 순간들을 각인시켜둬야지, 사진은 잊자 하면서도 버릇처럼 꺼내드는 폰.

그랜드 캐니언의 여러 포인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곳 데저트 뷰.

이름 그대로 동쪽은 아스라이 펼쳐진 사막, 서쪽으로 길게 이어진 대협곡의 대조적인 경관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데저트 뷰 포인트에 들어서면 일단 왼쪽으로 바벨탑도 같고 첨성대처럼도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을 만난다.

‘시간을 향해 열린 창(window of time)’이라고 노래한 헌시가 든 4층짜리 워치타워(Watch Tower)다.

지금은 보호구역으로 밀려난 이 지역 나바호 인디언들의 흔적이 공예품으로 벽화로 남아있기도 하다는 곳.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창문으로 내다보는 전망이 일품일 뿐 아니라 위에 올라가면 굽이치는 콜로라도 강줄기가 아주 잘 잡힌단다.

1층 기념품 가게에서 막 층계를 오르려는데 조카가 아들이 안 보인다며 되돌아 나간다.

급히 밖으로 나와보니 저만치에서 아이가 울먹거리며 엄마품으로 달려든다.

훌쩍대는 어깨너머로 특이한 지형의 뫼와 평원이 농경지처럼 푸르고도 드넓게 깔려져있다.

캐니언 주위에는 모두 세 곳의 레저베이션이 있다는데 그중 하나인 데저트 뷰 포인트 서쪽의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이 얼추 그쯤일게다.

생각사록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이 신성시 여기며 하나로 동화되어 살았던 자연을 그들로부터 빼앗은 것은
영혼 나아가 삶 자체를 고사시키는 잔인한 짓.

나바호 인디언들이 호쾌하게 말 달리던 협곡과 이어진 평원 저 어디쯤, 비포장길 덜컹덜컹 먼지 날리며 달리다 보면 그들의 비탄 어린 한과 조우하게 될 것 같아 잠시 먹먹해진다.



보호구에 갇혀버린 인디언들에게 유독 짠한 마음이 들던 이곳.

광활한 사막과 협곡 웅장한 캐년을 자재로이 넘나들던 기상은 꺾이고 초라히 움츠러든 그들에게 대지는 다시 한번 웅비의 기회를 선사할까.

무궁한 일월의 어느 한 지점,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날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랜드 캐니언 지층의 까마득한 역사를 읽으면서 그런 상념에 젖게 된다.

그렇다, 2억 5000만 년 전 바다 지층이 융기되면서 협곡이 형성됐고 600만 년 전부터 콜로라도 강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오늘의 비경이 마련됐다는 그랜드 캐년이다.

해발 2300m 안팎의 콜로라도 고원은 20억 년 전 지각변동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강의 침식으로 협곡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7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지 않는가.

날씨는 한겨울 영하 9도, 한여름 40도로 한 계곡 내에 아열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의 기후대가 공존하는 곳.

저마다의 생도 추웠다 더웠다 이처럼 다양한 희로애락의 파노라마다.

우주적 안목으로 관망하면 종잡을 수없이 엎치락뒤치락하기는 종족이며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그랜드캐니언이 인디언 이외의 외부인에 의해 발견된 것은 1540년 스페인의 가르시아 로페즈 장군에 의해서다.


하지만 1869년 존 웨슬리 파웰 소령 일행이 보트 4대로 콜로라도 강을 따라 여행한 후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파웰 소령은 그랜드캐니언을 “위대한 미지”라며 “한눈에 이곳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불가능하기로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 내일은 신 외의 아무도 예단할 수 없지 않은가.

지질학자 클래런스 더튼은 “하루나 일주일, 혹은 한 달 안에 이곳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그랜드캐니언.

모르기로야 그랜드캐니언뿐 아니라 우리네 생도 마찬가지.

1908년 천연기념물 보호 지역으로 설정됐다가 191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

지금은 세계인이 선호하는 관광지 1호이지만 먼 훗날 인디언 해방구가 되지 말란 법도 없겠다. 2016

위쪽 사진 외에는 구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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