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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Sep 10. 2024
칡은 없고 모기떼만 설치는 칡오름
향기랄 수 없는 이상한 내음의 누리장나무 꽃
무성한 한삼덩굴/박꽃처럼 하얀 하늘타리꽃
감물염색 체험행사가 있던 날 아침.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뭘 하지? 궁리하던 참이다.
바로 앞에 봉긋 솟아있는 갈악
(칡오름)
이 손짓을 했다.
전에 한번 올라본 터라 길머리도 알겠다, 서슴없이 발길 옮겼다.
차도 변을 따라 걷는데 누리장나무 꽃 한창 흐드러졌고 환삼덩굴 기세 등등하게 벋어있었다.
너도 칡덩굴? 한여름 길섶이나 공터 어디에서건 마냥 영역 넓혀가는 환삼덩굴은 줄기에 미늘형 잔가시가 들어차 자칫 건들면 클난다.
칡오름 초입은 찾기 쉬웠다.
육지에서 내려온 화가 부부가 산자락 귤밭을 구입해 갤러리를 짓는데 두어 번 방문한 적이 있어서다.
낯익은 길이라 대뜸 입구를 찾아내 갈악으로 들어섰다.
인가
도 가까이 보이지 않는데 어느 집에서 개가 컹컹 요란스레 짖었다.
어둑신한
숲길,
스치는 바람에
가슴섶 슬쩍 열적마다 서귀포 바다가 턱받이만큼
푸르게
드러났다.
초행이라면 잠시 주저주저 망설일 만큼 경사 급한 길섶에 잡풀 제멋대로 자랐는 데다 삼나무 울울창창 치솟았다.
관리의 손길 제대로 미치지 않은 상태였고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는듯했다.
화가 아내는 날마다 운동 삼아 이 길로 산에 오른다 했는데.
칡오름 오르는 길은 서쪽 능선에도 나있고 북쪽으로도 나있긴 하다만.
때로는 거미줄이 얼굴에 걸릴 정도로 호젓한 길가 수풀은 뒤엉킨 채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작년엔 태풍 지난 다음에 와서 부러져 내린 나뭇가지 뒤엉켜 층계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잔서 따가운 아침부터 그악스레 짝을 부르는 매미소리 그 시끄러움에 산새마저 노래를 멈췄다.
더구나 칡오름은 전망터도 없이 잡목 숲 빡빡하게 우거진 산이라 바람길도 막혀있다.
해서 매우 후덥지근한 데다 대기 산뜻하지 않고 틉틉하기만 했다.
이처럼 칡오름은 상쾌한 기분은커녕 너무 칙칙해 심란스럽게 만들었다.
허위허위 비탈길 오르
면 더러 하늘 푸르게 틔어올
즈음에야
쉼자리가 기다렸다.
하지만 전혀 쉴 기분이 아닌 게 그제야 괜히 왔군, 전에도 했던 푸념을 은연중에 다시 내뱉게 된다.
험한 길 정도나 무더위에서 그쳤다면 후회까지는 하지 않았으리라.
산모기 떼거리가 거의 필사적으로 새카맣게 덤벼들었다.
한여름 잔뜩 독
오른 모기는
살갗에 붙었다 하면 인정사정없기가 흡혈귀 저리 가라였다.
계속 움직이며
아무리 팔을 마구 후쳐대도 노출된 곳마다 성한 구석 없이 심지어 옷 위로까지 침을 찔러댔다.
오래 굶주린 아귀 떼 같았다.
웬만하면 헌혈한다 치고 아량을 베풀겠는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 심했다.
감물
염색하
러 왔으니 해충 가피제야 지참했을 리 만무, 무방비 상태다.
표독스러운 성깔대로 막무가내 총공격, 그저 고스란히 적진에 포위당한 채로 무차별 사격을 당했다.
아랫동네는 전수 감귤농장이라 농약을 치니 모기들도 살길 찾아 도리 없이 산으로 피신 왔나 보다.
그렇다면 빨치산이 된 모기병들의 집중 포격을 피할 방법은 오직 하나, 속히 숲을 벗어나 냅다 줄행랑치기.
어여 내려가자 싶어
속히 하산
서둘러 무작정
달음
박질을 쳤
다.
산에서 백 미터 경주 뛰기도 첨이다.
헉헉대며 산을 겨우 빠져나올 즈음에야 빠끔 한라산이 보였다.
발치에 박꽃처럼 군데군데 뽀얗게 핀 하눌타리 꽃이 어여뻤다.
한참 걸어서
마을 약국을 찾아가 모기 물린 데 바르는 약부터 샀다.
벌겋게 부풀어 오른 데다 가려움증 심한 부위마다 약을 문질러댔다.
무려 열여덟 군데나 됐다.
나쁜 넘들, 하필이면 참을 수 없이 가려운 손가락까지 물어?
승질 있는 대로 부리며 구시렁거리다가 아서라, 돌려 생각하니 모기떼이기 망정이지 벌떼에게 쫓기지 않아 천만다행
.
구사일생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의 소굴에서 무사 귀환한 노병이로세.
허허~장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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