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받으면 어느 정도 마음이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고립 시기의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때는 심리 상담이 정상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상담을 받으면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도 심리 상담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그만큼 내가 회복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의 지지가 필요하다. 물론 심리로 인한 문제가 고립의 원인인 경우도 있으므로 그런 경우는 구분해야 한다.
블로그에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면에서 문학은 사람의 약한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기에 거기에 공감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약할 가능성이 높았다. 문학가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우울감이 창작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블로그의 세계는 모두가 각자의 생각을 나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문학과 흡사하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고통을 느끼고 있으나 고통을 느끼는 것은 비슷했다. 그것으로 인해 맺어진 인연이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은 서로에게 공감하는 것이 전부였다. 만일 고통의 결이 비슷하다고 느낀다면 교류를 해서 서로를 위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문제도 알아야 했다.
그렇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게 고백할 만한 고통은 없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사람들과의 접점이 적다는 것 외에는 크게 불행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가난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당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시대가 가난을 문제로 다루기에는 이미 만성화되어서 사람들에게 잘 와닿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집중했다.
어떤 문제에 천착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글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 사변적이거나 난해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그런 글쓰기가 아주 능했다면 그런 방면에서 유명해질 수도 있었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편으로 현실의 언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도 선호했다. 그렇지만 경험이 많지 않으니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도 매번 막혔다.
실마리가 풀린 것은 고립청년이란 단어를 알고 나서였다. 그때 비로소 내가 고립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과정에도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고립 시절의 이야기는 파편화되어 있어서 하나로 모을 만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그때 썼던 글의 주제는 대부분 책이나 사회 문제, 게임 및 신변잡기가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블로그를 통해서 속 얘기를 털어놓았구나 싶었다. 실제로 상담가 중의 일부는 내담자에게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는 것을 솔루션으로 제시한다고 한다. 블로그를 읽어주는 독자가 있으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도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블로그를 봐주는 사람들이 실제로 나에게 해준 거라고는 기껏해야 응원의 댓글을 남기거나 좋아요를 누른 것밖에 없다. 그렇지만 돌이키면 그것이 힘이 되었다.
고민을 이야기할 때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과거의 나는 무언가 고민이 있어도 그것을 우회적으로 언급하거나, 아니면 그저 힘든 일이 있었다고 표현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으레 그렇겠거니 하고 위로의 글을 남겼고, 나는 이미 감정표현을 다 했으니 그런 위로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지만 그런 관심조차 없었다면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이십 대를 보내는 동안 위기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긴급하게 블로그를 켜서 글을 썼다. 너무 깊은 고민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은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삶의 이유를 내가 원하는 꿈이나 목표를 통해 찾지 말라고 한다.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것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부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블로그 사람들은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칭찬했다. 글을 쓰는 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일반적인 삶의 경로를 이탈했기 때문에 얻는 불이익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블로그에서 위로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온라인이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여전히 현실에서는 나와 비슷한 동료를 만나기가 어렵다. 블로그에 그런 동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거리가 멀다. 현실이 그러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는 것이 마음에 편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하고, 오프라인에서는 보다 폭 넓은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결국 먹고살려면 오프라인에서의 연결은 필요하긴 하다.
그 후 니트생활자를 만나게 된 후에는 블로그에도 소홀해지게 되었다. 마음 같으면 이제는 완전히 회복됐으니 이곳을 떠나겠다는 오글거리는 인사를 남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미 달라진 모습을 보고 기존에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은 많이 떠났다. 이제는 그런 인사를 남기는 게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미 떠난 사람들도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