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개인이 소액을 투자받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으로 니트생활자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른 프로그램이다. 그때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공공 일자리가 끝나고 애인이 무엇을 할지 막막한 상태에서 다시 프리랜서로 전향하기 위한 길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내 경우에는 책을 만들고자 했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나서도 확신이 없었다. 이미 일기를 쓰던 친구의 의뢰를 받아 책을 제작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독립출판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니 책을 만들어도 어디까지나 경험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오리엔테이션과 중간공유회를 하면서 생각보다 독립출판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본격적인 작가 데뷔를 위해 책을 만들기보다는 자기의 콘텐츠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 책을 선택한 쪽에 가까웠다. 그들도 책을 만드는 두려움은 같았지만 일단 시도해 본다는 태도가 좋았다. 내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책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책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한편으로 혼자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보를 얻고, 독립출판에 대한 두려움을 깼다.
원래는 전자책으로라도 만들려고 했던 책을 종이책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예전에 직업학교에서 편집디자인을 배웠기 때문에 인디자인에 대한 두려움은 적었다. 막상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니 예전에 배운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책이 『우울하진 않지만 딱히 할 일도 없다』이다. 22년도에 겪었던 일을 담음과 동시에 지난 20대를 돌아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고립에서 벗어난 뒤 막상 무엇을 할지 방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도 스스로 어떤 내용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이 책의 제목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패러디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이 우울증을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이 책의 경우 권태를 중심으로 한 신변잡기였다.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글을 쓰려고 했다. 그렇지만 급하게 쓴 터라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는 어려웠다.
전시 때도 사람들의 호응은 별로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인쇄한 책을 애인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줬는데 가까운 사이였지만 나의 몰랐던 부분을 알았다며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출간의 가장 큰 목적은 예술활동증명이었다. 문학의 경우 공인된 문예지에서 연재를 하거나 유명 문학상을 수상해야 예술인 등록이 가능했다. 그게 아니라면 ISBN을 발급받은 책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ISBN을 발급받았고,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을 한 뒤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다. 그 후 5개월 만에 예술활동증명을 받았다. 예술활동증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예술활동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어렵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미 쓴 작품이 있거나 작품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정말로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왔던 과정을 정리한 기분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인정받은 상태에서 예술활동증명을 받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등단을 해야 했는데, 막상 등단을 위해 준비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여러 공모전에 지원했지만 대부분 독후감 공모전에 지원했을 뿐이었다.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에세이는 대중적인 장르로 구분되기 때문에 예술성을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여러 활동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 자체가 삶이고, 예술이 아닌가 싶다. 어쩐지 능력과는 관계없이 구색만 갖추고서 예술가라고 우기는 것 같지만, 오랜 기간 무명작가로 생활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위원회에서 심사를 해서 통과한 것이니 그런 노력을 나름대로 봐준 것이지 않은가 싶어서 승인 소식을 듣고 감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