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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판 Oct 21. 2024

생애 첫 프로젝트

언젠가부터 글을 쓰지 못했다. 뭘 써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기획을 해야 했는데, 기획은 영 어려웠다. 처음 청년도시학교에서 활동가 교육을 받으면서 프로젝트를 할 때도 스스로 기획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공언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예술가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막연히 지원사업이나 기획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애인과 함께 여러 지원사업이나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했다. 지원사업과 공모전의 차이는 사업계획서를 쓰냐 안 쓰냐의 차이다. 둘 다 기획은 해야 하지만 지원사업이 기획의 비중이 훨씬 높다. 그렇지만 기획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정보를 찾는 능력도 부족했다. 그래도 종종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지원했다. 지역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예술인 지원사업에도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경력도 없었고, 있는 거라고는 매력적이지 않은 원고뿐이었다. 만일 선정되었어도 일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이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지원사업은 줄어든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사업의 경우 대부분 사업 기간이 정해져 있다. 연말에는 결산을 하는 기간이다. 사업을 받아 진행하는 민간기관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정보도 여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여러모로 겨울은 춥다. 그래도 그때 진행하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 있어 그곳을 다녀온 뒤 다음 상반기를 기다렸다.


해가 넘어가면서 지원사업을 받는 곳이 나왔다.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막상 자신은 없었다. 스스로 봐도 주제가 선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주제를 정하더라도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글을 안 쓸 수는 없으니 이따금 글을 써서 원고를 모으고, 어떻게든 주제를 잡아 글을 써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역 문화재단에서 청년예술인을 위한 지원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봤다. 이전보다 규모가 커져서 모집자가 많아졌다. 이거라면 도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어떤 주제로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업은 창작 활동을 지원하면서, 자립을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자립은 결국 경제적 독립을 의미한다고 봤다. 예술인도 자립해야 한다는 취지는 동의했지만, 실질적인 활동비 없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있다.


그렇기에 이 사업을 고사하고 차라리 책 출간을 지원하는 사업에 집중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지원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순전히 충동적인 것이었다. 지원사업 정보를 찾다가 고립청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고립청년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시킨 뒤 그 소감을 남겨 아카이빙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활동을 통해 고립청년을 회복시키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의 개요를 듣고 거부감이 들었다. 고립청년에게 여러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정말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면 우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고립감을 느끼는 대부분의 참여자가 자기 이야기를 말하기 원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이라는 틀에 갇히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니 상대에게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이 끝나고 교류할 일이 줄어들면서 뿔뿔이 흩어진다. 고립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느슨하게 연대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애인과 나누다가 그러면 아예 직접 고립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까 생각하다가 인터뷰집을 생각했다. 그동안 취재를 하기 위해 인터뷰를 해야 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사례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였다. 당장 책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인터뷰를 하고 돈을 쓰는 것이 내게는 큰 부담이었다. 그렇지만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이번 지원사업의 취지와도 잘 맞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디어가 나오니 기획서를 쓰는 것은 수월했다. 예산 책정이 문제였다. 처음 지원사업을 도전하는 사람은 대부분 예산에서 가로막힌다. 물론 사업 담당자들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예산에 대한 부분은 비중을 다소 낮게 둔다. 그렇지만 지원사업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잘 모른다. 이것이 장벽이 되어 아예 도전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어쩌다 보니 두 개의 지원사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 어찌어찌 예산 책정을 했지만 그럼에도 예산 책정은 어려웠다.


그나마 청년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활동을 오래 했던 대표님을 알게 되면서 지원사업의 프로세스에 관해 알음알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내용을 듣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대표님에게 도와달라면 기꺼이 도와주었을 테지만 그때는 대뜸 부탁을 하기가 어려웠고, 내 기획서를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 기획했다.


어쩌다 나온 아이디어로 기획서를 썼지만, 뽑는 인원이 많아 자신이 있었다. 발표날에도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지원사업이라는 게 지원을 주는 기관의 통제를 받는 일이기에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노력한 과정을 인정받는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 후 지원금을 받아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예산 편성이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조언을 받지도 못했고, 그럴 만한 경로도 없었다.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나서 인터뷰나 책 제작에 관련된 예산은 책정했지만, 작업을 해보니 집 외에 다른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과 인터뷰를 할 때도 편하게 부를 수 있고,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다. 그런 것은 결국 자비로 해결했다. 사업 내용을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로웠다. 예산도 그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은 새로웠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했던 순간은 특별했다. 이전에도 인터뷰를 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순전히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주도적으로 한다는 기분은 느끼지 못했다. 내가 직접 주도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체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내게 영감을 주었다.


취재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즐거웠다. 이후에도 무언가를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미래를 계획했다. 무엇보다 고립청년을 인터뷰하고 난 뒤, 관련 주제를 확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고립청년 당사자였지만 이걸 갖고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과 관련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어떤 식으로 확장할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큰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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