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 큰 슬럼프를 겪었다. 가장 존경하던 교수님도 계약이 끝나서 떠나고, 새로운 교수님이 들어왔지만 성향이 달라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강의 시간에는 딴짓을 하고, 도서관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허지웅 작가가 활동하던 블로그를 어쩌다 알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젊은 논객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그런 논객은 사회 문제에 대해 한 마디씩 얹었다. 그중에서 주목받는 사람 중 하나가 허지웅이었다.
그때 허지웅은 주로 영화 평론을 썼고, 이따금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나는 그의 솔직한 이야기가 좋아서 즐겨 읽었다. 본인은 흑역사라고 하지만 그가 쓴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 시절에 허지웅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하면 과장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는 의존했으면 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고, 인문학 카페나 젊은 논객이 쓰는 글이 위로가 됐다. 카페에서는 세상을 알아가고자 하는 탐구 정신이 빛났고, 젊은 논객에게는 시대에 관한 예리한 통찰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 보면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고, 삶의 의욕이 되살아났다.
대학 2년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졸업했다. 그 후에 입영통지서를 받고 난 뒤에는 집에서 좀비처럼 게임을 하며 지냈다. 자대에 배치받은 뒤 텔레비전을 보는데 허지웅이 출연한 것을 봤다. 그전에도 시사 프로그램을 출연한 것을 봤지만, 연애와 성에 관한 예능 프로그램인 <마녀사냥>에 출연했다. 만일 그가 출연했던 시사 프로그램이라면 같이 생활관을 쓰던 동기들도 그저 혈기왕성한 군인들이라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제가 주제인지라 동기들도 흥미롭게 봤다. 나는 허지웅에 대한 팬심으로 프로그램을 봤는데, 그때는 이 프로그램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후에 허지웅은 유명세를 타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글 쓰는 허지웅입니다.”라고 꼭 말하고는 했다. 그게 누군가는 허세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도 글을 쓰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그의 모습이 뭔가 어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를 어딘가에 소개할 때 그와 같이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는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 뒤 허지웅은 여러 권의 에세이를 냈고, 나오는 대로 족족 읽었다. 그렇지만 글에는 날카로운 느낌이 많이 빠졌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오히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고 비판을 받았다. 한편으로 대선 후보 검증 프로그램에서 시민 대표로 나와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처럼 젊은 시절에 공개적으로 사회 문제에 글을 쓴 사람도 꽤 드물었다. 그때쯤 나는 독서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껴 책에 파묻혀 있었기에 그의 날카로운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실망했었다.
그 후로 그가 암 투병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때 마음이 철렁거렸다.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지켜봤던 사람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후에 다행히도 완치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때의 경험담과 이전에 썼던 글을 모아 에세이집을 발간해서 그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그때쯤 허지웅은 암 투병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인식과 함께 다소 유연해진 태도로 인해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다.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거기에 관해 허지웅은 자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부터가 하나의 변화였다. 그의 마지막 신간을 읽었을 때도 다소간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허지웅을 보면 어떻게 작가로서 생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보인다. 그도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강했지만, 다양한 방송 활동을 통해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튜브를 통해 작가로 데뷔하는 사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나도 나름대로 활로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책에 한창 빠져 있을 때는 허지웅도 그저 그런 작가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배움을 주는 것은 철학자나 고전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허지웅을 좋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과 호흡하는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읽기 쉬우면서도 울림이 있다. 그래서 그런 글을 써야겠다고 노력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나도 대작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그저 글을 쓰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가 점차 날카로웠다가 부드러워지는 과정을 겪었다면 그동안의 나 역시도 그런 과정이 있었다. 그것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얻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물론 여전히 날이 서있기도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의 성향이다. 그가 신간을 발간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날, 강남의 교보문고에 갔다가 작가의 팬 사인회를 한다는 홍보 포스터를 봤다. 그때는 친구와 동행중이었고, 친구가 별 관심이 없어 보여서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때는 아직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억눌렀다. 그래도 지금은 작가로 데뷔했으니,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