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 때 주변에서는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지만 아니라고 답한다. 그것은 단지 겸손의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동안 못한 게 많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감각이 많이 약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뭐라도 하게 된다.
요새는 활동을 하면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많이 만난다. 그래도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게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바깥 활동도 안 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그 덕분에 사람들과 어울릴 때 크게 위화감이 없다. 한편으로 지금 나이에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일단 한다.
세상은 빠름과 효율을 중시하지만, 스스로 느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가끔은 효율적인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을 할 때의 이야기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경험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어떤 경험은 하다 보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려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개인의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이 나눠 갖기란 어렵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만 해줘도 위안이 되는데, 그런 지지를 받는 경험이 드물다.
모임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배제되는 경험을 자주 겪었다. 그럴 때면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마라톤 연습을 할 때가 생각난다. 체력이 약한 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져서 뛰었다. 격려하는 사람도 없고, 목적지도 보이지 않아 절망스러웠다. 물론 이제는 많은 사람이 종종 그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안다. 각자가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때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그런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빠진다. 어차피 한계에서 무언가를 더해봤자 크게 나아질 수도 없는데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무언가를 더 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에 빠진다. 물론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소홀히 했다가 아쉬웠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도 결국 한 번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인데 게으름에 대한 자책이 심하다. 무언가를 하더라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하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순간에는 완벽보다는 적당을 찾았다. 어차피 사람이 모이면 각자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보다 기준치가 높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반드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줄어들었다.
활발한 사람들은 일을 많이 저지른다. 하나에 집중해서 큰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많은 일을 해서 성과를 만든다. 그렇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좋은 기회를 발견할 때까지 여러 일을 저지르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의 일에 집중하고 싶은 것이 내 성향이다. 다양한 일을 하며 그것들을 연결하는 것이 활동가라면 나는 하고 싶은 영역을 바탕으로 그것을 진득하게 파려고 한다. 그 방식이 체계적이라면 전문가, 창의적이라면 예술가이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면서 돈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했다. 그렇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대신 그런 실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점점 좁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결론은 아직 어둡기는 하다. 내가 잘하는 영역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돈벌이가 되지 않느다. 그렇기에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그게 여느 프리랜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분야에서 정점이 아니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먹고 살기는 어려우니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찾는다. 문제는 낯선 환경에 금방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애인과 연애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익혔다. 그렇지만 여전히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게 된다. 대신 거기에 따른 걱정은 미뤄두기로 한다. 어차피 걱정해봤자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밀려오는 일 중에 우선순위를 생각하고, 큰 파도가 밀려오지는 않게끔 어느 정도의 여유를 두고 일상생활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일이 바쁠 때는 일과 쉼의 경계가 사라진다. 한계 이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쉽게 멈추기가 어렵다.
이렇다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여유 시간을 가지려는 편이다. 아침에도 느지막이 일어나고, 저녁이 되면 게임을 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휴식에 대한 감각은 본질적인 잃어버린 기분이다. 예전에 방에 누워서 막연히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때 했던 고민이나 상상은 많이 증발되었다.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돌이키면 많이 달라졌다.
애인도 나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며 마음의 여유를 두고 싶어 한다. 어쩌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여유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지금의 삶을 택한 것인데, 이도 저도 아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멀리 여행을 가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한다. 그렇지만 여행도 하나의 일이 되어 무언가에 쫓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진정한 휴식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휴식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짰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여름방학이었다. 여름방학에는 한가롭게 놀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모티프로 나는 글을 쓰고, 애인은 그림을 그렸다. 이 프로젝트를 발표하기까지 여유 시간이 많지는 않아 힘을 많이 들이지는 않았다. 크게 바란 것은 없다. 사회는 바쁨을 강요하고, 휴식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우리의 프로젝트를 보고 휴식에 대해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학창 시절에 방학을 보내면 나는 거의 집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방학이 끝날 무렵 초조해져서 급하게 숙제를 하고는 했다. 그러고 나서 학교에 오면 그저 열심히 수업을 듣는 성실한 학생으로 지냈다. 내가 고립해 있던 시간도 긴 휴식이었다. 지금은 사회로 돌아왔지만, 언젠가 또 방학을 보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런 마음을 굳이 막지 않을 것이다. 고립도 하나의 휴식 시간이고, 그 시간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