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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_루(月 Lou) 10.

2025년 10월의 성찰 보고서

by Lou

10월은 추석의 긴 연휴 잠식해 버렸다. 연휴라는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니 시간이 가는지도 날짜가 가는 지로 몰랐다. 그냥 아침이면 눈을 뜨고 밤이 되면 눈을 감았다. 종일 아이들과 고성과 설득으로 매일매일 꾸역꾸역 넘겨야 했다. 긴 여유에 가까운 여행조차 허락하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발이 묶인 채 버둥대다 끝났고 10일이라지만 2주 가까이 내 삶은 정지되어 있었다.



매일 습관적이며 반복적인 일상이었는데 연휴로 인해 중단되었다. 대신 반복적으로 삼시 세끼를 고민하고 아이들과 다닐만한 동선을 고려하며 큰 아이 스카시간도 지켜야 했다. 길고 지루했던 연휴의 터널을 지나면서도 가족 넷이 함께하는 시간이 언제까지 유한할까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제 큰 아이가 점점 가족을 떠나 친구들 곁으로 가고 있고 둘째 아이도 조금씩 형처럼 변해가고 있다. 정상적인 발달이지만 내게 큰 존재이기에 혼자 아쉬운 마음이 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10월의 목표 & 성취한 일

- 목표
1. 긴 추석 연휴 아이들과 독서량 늘리기
2. 쓰던 창작물들 정리 및 수정
3. 고민하던 북클럽 오픈

- 성취한 일
1. 긴 추석 독서량은 못 늘이고 서점만 자주 방문
2. 쓰던 창작물을 살짝만 만지고 제자리걸음
3. 북클럽은 계속 고민 중


10일이나 긴 시간 동안 여행대신 핸드폰 사용은 줄이고 매일 한 권이 책을 정독시키리라 마음먹었는데 역시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일단 눈을 뜨면 폰을 보려는 청소년은 제재가 들어가면 화부터내고 그러다 보면 싸움이 되기 일쑤다. 냉각된 분위기로 한 공간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피로감이 짙어진다. 하지만 갱년기가 덜 온 탓인지 아이가 이기는 모양새다.


돈에 발목 잡힌 여행대신 매일의 외출을 약속해 놓고 어딜 가냐며 목적지를 자꾸 묻는 남의 편. 결국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틀에 한 번씩 서점을 찾았다. 대형 서점, 중고 서점을 돌면서 큰 아이는 사고 싶은 소설책들을 구입해서 오후에 가는 스카에서 공부 사이 틈틈이 독서를 했다고 한다. 막내는 그저 즐겁게 읽고 돌아오는 게 더 좋다며 서점에서 혼자 즐겨보는 책들을 읽고 오곤 했다.


어딘가 응모하고 싶던 창작물도 완전하게 완성시키고 싶었던 창작물도 있었지만 연휴의 후유증으로 심하게 도진 역마살이 모든 것일 흩트렸다. 결국 카드값은 춤을 추고 창작하려던 열정은 그 아래 가라앉아 버렸다. 스스로가 죄스러운 마음을 그렇게 긴 연휴 탓으로 자꾸 돌리고 있다.


북클럽, 독서모임을 하고 싶은데 실제 참여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의욕만 앞서고 걱정만 하다 보니 결국 몇 달째 시작은 못하고 고민한다. 헤매던 책 들 속에서 책도 결론을 내렸건만 일정과 목표 진행방향을 아직도 헤매기만 한다. 끝이 보일지 결론이 언제 날 것인지 계속 미궁에 빠지고 있다.






10월의 아쉬웠던 부분
1. 연휴가 너무 길어 10월이 순삭
2. 남은 2주 너무 열심히 놀았다
3. 의욕마저 사라지고 있다


잔인한 10월이라도 말하고 싶다. 여름에서 겨울로 직행한 듯한 추위에 몸도 마음도 얼어붙었다. 연휴가 너무 길어서 시간과 날짜의 경계도 무너지는데 비바람까지 끊이질 않아 우울함에 정점을 제대로 찍어주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커져가는 건 아이들이 자라서일까 나의 불만족이 곪아 터져 나온 것일까 그마저도 이제는 구분이 안된다. 그렇게 지나간 연휴의 끝에는 10월이 반토막 나있었다.


마치 감옥에서 나온 듯 세상의 빛을 향해 달리는 기분으로 월요일 아침부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속을 일부러 만들어서도 나가고 약속이 없어도 나갔다. 가을이고 팝업이나 행사가 많은 계절이라 혼자서도 발길을 돌릴 수 있는 장소가 있어 감사했다. 잦은 외출은 카드값의 두려움과 숨통이 트이는 짜릿함 그리고 빨리 나만의 금전적 자유에 대한 갈망이 한데 부딪히며 갈등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전력질주를 하고 나면 어느 정도의 결과나 보상이 뒤따라야 다시 힘과 용기를 내서 달려갈 수 있는 힘과 의욕이 생기기 마련이다. 몇 년간 보이지 않는 결과만을 좇아 혼자 전력질주만 하다 보니 슬슬 나만의 페이스조차 잃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싶어지는 글을 쓰고 싶었고, 내 이름이 박혀있는 단독 저서도 출간하고 싶었다. 이를 발판으로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었던 꿈이 이제는 자꾸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10월에 배우고 성장한 것
1. 사춘기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
2. 소설책에 집중


사춘기가 강하게 왔다고 생각했고 매일매일 전장에 있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었다. 한 번 고비를 넘기면 두 번은 안 온다는 사춘기가 우리 집만 스무고개를 넘는 것인지. 아니면 사춘기의 고비가 태평양 정도는 되는 너비인지 알고 싶다. 길고 긴 터널을 아무리 지나도 계속 깊은 수렁과 암흑 속을 오가고 있다. 좀처럼 밝은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은 절망만 가득하다. 하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와의 관계는 악화될 뿐이다.


중학교는 2학기에 공개 수업이 있고 그전에 담임교사와 상담이 이루어진다. 1학기 담임이 그만두면서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을 만나 이 사람 같지 않은 외계인이 집 밖에서는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었다. 젊은 훈남 담임은 착하고 친절하게 아이 칭찬을 계속하며 내 걱정을 에둘러 포장도 해주셨다. 긴 상담 끝에 담임은 "어머니 아직은 지후를 기다려 주세요. 스스로 아이가 마음을 먹어야 움직이는 아이예요.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 폭풍 같은 작년과 다르게 아이가 잔잔한 파도 위 돛단배처럼 2학년을 보내는구나 싶었다.


필요에 의해 소설을 들었는데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소설수업을 들을 때 무심코 뱉은 대화에서 선생님이 "님은 장르 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라고 했다.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글에서도 특징이나 색을 찾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이번에도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이야기보다 작품의 색이 짙은 책을 계속해서 찾고 읽으며 특히 작가만의 표현법을 세밀히 관찰하는 독서를 했다.





10월의 결산 (책, 문장, 음악/공연/전시/행사, 여행지, 음식)

공진책 고전 &안전가옥 소설



내가 읽고 싶고 같이 읽어보고 싶었던 '자기만의 방'은 누구나 편하게 읽어낼 만한 책은 아니다. 다른 분들이 힘들게 읽으시는 걸 보고 조금 죄스러웠지만 뒷부분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에 반해 '인생의 베일'은 너무 빠르고 재미있게 읽혔다. 내가 고르는 책에 대한 고민을 잠시 했던 순간이다.


추천받아 읽었던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중 ' 칵테일, 러브, 좀비' 작품에 푹 빠지는 바람에 10월은 안전가옥 쇼트시리즈로 채워졌다. 다른 작가의 각각의 색에 취해 읽은 스릴러 소설들에 빠졌다. 무서운 책은 근처도 못 갔는데 나이 탓인가? 안 하고 못하던 걸 자꾸 하고 있다. 책이 작고 가볍고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내용이나 소재가 특이했다. 진짜 소설 속 이야기겠지?





팝업과 전시



출판사의 새로운 브랜드 팝업, 북페어 그리고 브런치의 팝업. 모두 집과는 너무 먼 곳에 열렸음에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나갈 길에 대한 내 생각의 정립과 그것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은 여전히 공사 중이라 도서관 생활자가 아니라 도서관 방랑자 생활을 하는 요즘. 같은 영통구인데 갑자기 신도시로 세워진 광교에 모든 것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에는 경기도 최대의 도서관이란다. 봄부터 광고가 계속 나와서 개관날 오픈런을 했다. 자세한 스토리는 블로그에 적었다.


작가님들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서점에 다녀왔다. 어디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집에서 친정 가는 길목에 툭하면 지나가던 그곳에 있었다. 정답고 따뜻한 분위기의 서점을 또 알게 돼서 기뻤다.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시간과 거리의 한계가 항상 발목을 잡는다. 다들 바쁜 일정이 있어 매번 불어보기도 민망해서 혼자 쓱 다녀온 팝업은 단출하고 신기했다. 차를 갈아타가며 장거리를 이동하지만 막상 짧은 팝업을 보고 돌아서면 뭔가 되돌아오기 아쉽다.


오픈소식에 궁금했던 전시를 같이 가고 싶은 동네친구와 나들이처럼 다녀왔다. 새롭게 접한 전시에 감동하며 새로운 분야에 눈을 떴다. 뜨개도 그렇고 일본이 이런 쪽으로 많은 발전을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경이로웠다. 이런 재능은 나에겐 왜 없는 건가...



한의원


허리과 후각 문제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동네 친구가 예약을 하고 압송을 거행했다. 함께 간 한의원에서는 혈액 부종이 주요 원인이란다. 못 먹는 음식이 너무 많아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음식을 최대한 피해서 한의원에 데려가준 보답을 했다.


신기한 건, 한약을 먹으면서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과연 깨끗이 나을 수는 있는 걸까?



특별한 브런치



쉼 없는 여정은 지치게도 하지만 활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우연히 알게 된 식당에서 만난 기가 막힌 음식의 비주얼과 맛에 반하고 우연히 들어간 식당 바로 앞 상점에서 주인의 이유 없는 친절과 선물을 받는다면 그날은 행운이 깃든 날일까 그 행운이 그곳에서 그치는 날일까? 선물 받은 향낭을 넣기 위해 예쁜 물고기를 구입했다.






11월에 새롭게 시도(도전)하고 싶은 목표
1.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한 도서관에 정착하기
2. 가을 시 브런치북 마무리 & 겨울 시 브런치북 시작
3. 습작 노트 만들기


11월은 감사하게 휴일이 없다. 정해진 약속과 구입한 전시를 제외하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도서관에 정착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방랑자 모드에서 이틀만 조용한 모드로 switch-over를 해야겠다. 버스에 몸을 싣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이제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계절이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가을시 10편이 완성된다. 그렇게 브런치 북을 정리하면서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만큼 겨울 시 브런치북으로 다시 시작해 보는 11월이 될 것 같다. 혼자만의 외침이 아닌 많은 이들이 편하게 공감하며 읽어보고 싶은 겨울 시를 쓰고 싶다.


메모는 하지만 정리가 안된다. 욕심이 많은데 정리가 안된다. 모든 것이 정리의 문제다. 집안의 물건들도 머릿속 생각들도 내가 적은 이야기도 모두 정리되지 않고 뒤엉켜있다. 쌓인 곳에 계속 얹어지면서 먼지가 쌓이고 존재감마저 흐릿해지는 메모와 기억들이 안타깝다고 생각만 했다. 조금은 차분해지는 11월을 만들고 덜어내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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