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쓸모

가치와 의미

by Lou



약속이나 한 듯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통보해 오는 휴가의 물결. 남편 회사 휴가도, 아이들 학원 방학도 7월 마지막주로 고정한 건 국룰인 건가. 휴가라는 게 있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는 경력단절 아줌마에게 휴가는 그저 온 가족이 보내는 주말이 길어진 삼시 세끼를 더 열심히 챙기며 손 많이 가는 일이 많아지는 매우 귀찮은 시간이 되었다. 남편들은 모른다. 본인들이 집에 가만히 있는다지만 얼마나 신경 쓰이게 만드는 존재인지를.







작년 여름, 중학생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 있던 6학년 장남의 학원이 방학 없이 특강까지 가득 넘쳐흘러 가족들은 발목이 묶인 채 있느라 신경전이 말도 못 했다. 다행히 올해 여름은 학원 방학들과 아빠 휴가까지 잘 맞아떨어져 엄마에게도 숨구멍이 생겼다.


“이번 휴가는 오랜만의 여행이나 멀리 진해 쪽 가볼까?”

응? 진해? 군항제 하는 그 진해? 나야 장거리 여행 좋아하지만 그 긴 시간 운전하는 게 괜찮냐는 걱정에 “이게 내 운명이야”라고 말하는 남편. 집 앞 마트도 같이 안 가려던 신혼시절의 치사빤쓰인 시절은 없어지고 이 관대한 제안은 무엇이란 말인가. 감사하며 덥석 물어주는 게 인지상정!


당장 검색에 들어갔다. 우리 가족이 여름휴가 및 여행을 가야 하는 시기는 성수기 중에서고 극 성수기! 안 그래도 비싼 숙박비가 3배 4배 5배 미친 듯이 뛰어오른다. 진해하면 군항제가 열리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고 바로 옆이 부산이 아닌가? 이왕 남쪽 끝까지 가보기로 한 김에 오랜만에 부산을 가보고 싶어 검색을 했더니 하루 숙박이 50만 원이 넘는다? 다른 지역도 100만 원이 넘는 숙소를 보고 기겁을 했었는데 극성수기라고는 하나 이렇게 가격을 올리다니.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에 고민을 하며 이곳저곳을 검색을 하다 남편에게 제안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시설도 좋은데 조식도 너무 괜찮게 주는 숙소가 있어. 근데 위치가 진해야. 다행히 부산하고 가까운데 아이들이 원하는 바다를 가려면 편도로 한 시간은 이동해야는데 2박 3일 너무 운전만 하느라 힘들지 않겠어? “ ”괜찮아 “ 협상 타결. 진해를 찍고 부산을 여행하기로!


남편이 이번 휴가에서 원한 건 물을 좋아해서 풍덩풍덩 허우적대는 걸 즐기는 아이들이 여름 바다를 실컷 즐기게 해주는 것! 그동안 실컷 여름바다를 누리지 못한 게 아쉬워 아이들에게 여름 바다에서의 해수욕을 만끽하는 기쁨을 선사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면 되지! 그렇게 항상 그렇듯 여행 계획은 좋아하는 내가 직접 한다. 저렴한 숙소부터 이동방향 놀거리 먹거리 열심히 준비하며 트렁크 짐까지 싸면 임무완성! 남편은 운전과 금전을 담당한다. 분업화된 여름휴가를 출발해 보자.







새벽부터 설쳐대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이동하면서 식사를 해야 하기에 김밥을 쌌다. 역시 여행에는 김밥이 빠질 수 없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주 장거리 여행을 다녔는데 15~20 줄씩 몇 년을 싸다 보니 이제는 10줄 정도야 재료 준비까지 한 시간이면 O.K.!!! 아이들 마실 음료와 과일, 간식등을 챙기느라 새벽부터 분주했는데 8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길이 조금씩 막혔지만 오랜만의 장거리 여행에 가족모두 신이 났다. 노래를 틀어놓고 부르면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과 열창하며 운전하는 남편까지. 내 안타까운 귀를 지켜주지 미안했지만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으니 미리 사두었던 뜨개를 꺼내어 본다. 진짜 이동할 때 조용하고 고요하게 다니는 그런 여행 좀 하고 싶다.


출발과 동시에 남편의 사고! 차를 출발시키는데 무언가 밟는 느낌이 나면서 ‘빠찍’ 소리가 울려 퍼진다. “머야? 멀 밟았나 봐!!!” 출발도 하기 전에 집 앞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차를 세우고 나가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이동하면서 먹으려고 싸 둔 음식 가방 두 개를 차 앞에 두면 내가 챙길 줄 알았단다.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아니!!!” 그대로 차 앞에 세워두고 출발했으니 가방이 넘어지며 밟혔고 안에 들어있던 새벽시간에 힘들게 싼 김밥들이 터진 죽이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2박 3일 장거리 여행 시작 전부터 불길한 이 예감을 어찌할꼬. 화딱지 나지만 살릴 수 있는 건 살려가며 수습을 하는 와중에 신기한 장면을 보았다. 다이소에서 파는 6구짜리 계란 통이 너무 온전하고 흠집하나 없는데 안에 들어있던 구운 계란 6개는 초토화돼서 짓이겨져 있었다. 이게 가능해?


[ 온전했던 김밥과 여행중에 만든 뜨개 ]



다행히 하늘이 마음을 알았는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이 점점 사라지며 화차하고 밝은 얼굴을 보여줘서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을 뜨개를 하며 마음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수습해서 그나마 살린 김밥을 먹으며 그렇게 부산에 도착했다. 첫날인데 해수욕이 가능하겠어하면서 해수욕장 구경이라도 하자고 바다 근처 주차장으로 이동하는데 앞쪽에 주차되어 있던 차가 빠지는 게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남편은 주차하고 주차비를 미리 내러 간 사이 아이들은 무료 탈의실이 있다며 난리난리, 결국 수영복을 들고 신나게 환복을 하러 달려간 아이들. 그 사이 남편은 파라솔을 빌리고 아이들 튜브에 바람을 넣는데 가격이 너무 저렴해 깜짝 놀랐다. “오늘 애들이 바다에서 놀 운명인 거야!!”




추위를 잘 타는 막내는 발만 담그며 동동거렸지만 이내 튜브를 타고 바다로 들어갔고 두 녀석 다 신나게 노느라 바다 물결을 따라 이동해서 안보이기도 했지만 늙고 힘든 부모대신 동생 맡아서 놀아주는 장남덕에 뜨거운 태양찜질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서핑’


강원도 양양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서핑을 부산에서? 이게 웬 떡이냐! 좌르륵 붙어있는 서핑 가게를 둘러보며 검색을 시작했다. 내일은 서핑이다!

바다 수영과 모래찜질로 신이 난 아이들이 돌아온 뒤 갈 준비를 하며 가장 커 보이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물어보니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당장 예약이 된다고!! 큰 아이만 시키려 했으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다. 둘째가 더 잘할 거라는 걸 간과했던 거다.








[ 한식 + 양식, 꼭 먹고싶은 것들로만 이루어진 멋진 조식 ]




이튿날 훌륭한 호텔 조식을 든든히 먹고 서핑을 위해 이동! 슈트와 보드도 종일 대여에 수업도 2시간! 거기다 우리가 예약한 시간만 우리까지 딱 3명 수업! 아주 적은 인원으로 너무 즐겁게 배웠다. 시작 전 간단한 설명과 브리핑을 듣고 같이 서핑이 지정된 장소로 이동! 보드를 받아 모레에서 자세 연습을 마치면 실전 돌입!

그렇게 같은 시간에 있던 아가씨 한 분과 아이들의 서핑이 시작되었다. 조용하고 배려심 넘치는 수강자분과 활발하고 다정한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즐겁게 신나는 서핑을 배워갔다. 어른들도 잘 못서는데 아이들이 몇 번 안 되는데도 금방 보드에 올라와 자세를 잡고 서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제일 뜨거운 12시~2시에 그렇게 아이들은 서핑을 배워가고 바라만 보는 엄마는 불에 타버린 한 마리의 오징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평정심마저 사라져 가 아이들 사진 찍어주며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수업이 끝나고 돌아온 아이들은 당장 배가 고프단다. 식사를 위해 뜨겁게 달구어진 불판 위 같은 도로를 한참을 걸어가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한 식사 피크 시간이기에 주문하고도 한참이 걸려 나온 음식을 아이들이 허겁지겁 먹었다. 순식간에 점심을 해치우고 난 뒤 바로 다시 바다로 가겠다고? 아주 신이 나고 불이 붙었구나. 엄마는 온몸이 타들어 가는듯한 불구덩이 한 복판으로 뛰어드는 느낌인데!! 더위에 이미 녹초가 되었지만 어쩌겠나. 아이스커피를 사서 천천히 오라는 남편의 오더를 받고 커피를 사서 다시 해변으로 가니 아이들은 이미 바다에서 신이 났다. 그래 너희들을 위해 왔는데 즐겨야지!! 근데 이거 휴가 맞지? 가족 여행 맞는 거지???



다들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왔으니 내리꽂는 태양은 살을 파고들었고 커다란 우산을 손에 꼭 쥐고 있어도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없으면 숨을 헐떡 대기 일쑤였다. 그래도 즐거운 아이들을 보며 마인드 컨트롤 중인데 막내가 막 뛰어나온다. “엄마 형이 그러는데 바다에 해파리가 있다고 나가재!” 진짜 거대한 해파리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해파리는 바다 위로 솟았다 바닷속을 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의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게 만들었다. 안전요원들이 뜰채를 들고 기다렸지만 숨바꼭질을 이어가는 해파리덕에 긴장하는 사람들과 개의치 않고 노는 사람들로 나뉘어 버린 상황. 드디어 바다 끝까지 밀려온 해파리는 얼마나 오래 죽은 채로 떠내려 온 건지 몸의 일부가 계속 떨어져 조각조각이 떠내려오며 바다에서 그렇게 한 동안 머물렀다. 다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구경하며 긴장은 늦추지 않는 익숙한 듯이 뜰채로 뭍에 다다른 해파리의 몸 일부를 떠내는 요원들을 보며 머리가 멍 해졌다. 남편이 옆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원래 바다는 해파리 집이잖아”


독성이 강하고 쏘이면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해파리이기에 여름 해수욕장에서 조심해야 하는 걸 모두 알고 있다. 바다에 들어갔다 해파리가 보이면 일단 최대한 빠르게 피해야 한다. 해파리에 쏘여 목숨까지 위험한 경우가 많으니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처사다. 허나 해파리는 자기의 운명을 모른 채 떠내려오다 갈기갈기 해체된 것인지, 이미 죽고 나서 그렇게 계속 떠내려오고 있었는지 한참 동안 건져지는 해파리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 이 해파리도 가족 여행을 하다 혼자 헤매다 길을 잃은 건 아니겠지. 혼자 감수성 짙은 생각에 빠지는 찰나. “엄마! 이제 그만하고 저녁 먹으러 갈래” 아 또 먹을 시간이구나.









휴가(休暇)

직장ㆍ학교ㆍ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 (네이버 국어사전)


휴가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휴식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쉬는 시간’이 아닐까? 하지만 부모가 되면 휴가도 ‘노동’의 시간이 된다. 끊임없이 먹이고 요구사항을 받아주고 아이들을 보호하고 이동하고 수억 마디의 말을 들어주며 수백 마디 말을 뱉어내야 한다. 가끔은 지치고 힘들어 휴가를 왜 오자고 했을까를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기도 했다. 아이들이 즐거울수록 부모의 얼굴에 그늘과 피곤함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 같은 휴가를 아이들을 위한 여행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아이들만 줄 수 있는 사랑스러움이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다 어루만져 회복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저녁이 되거나 여행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아이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엄마 아빠 이번 여행도 너무 즐거웠어요!” “진짜 너무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일상적인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런 작은 말 한마디와 표정으로도 알 수 있는 아이의 행복 하나로 모든 위로와 치유가 가능한 걸 부모는 알고 있다.


아이가 없이 회사를 다닐 때는 그저 회사와 멀어져 나만의 시간을 갖는 의미가 짙었다면,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보내는 휴가는 평소에 즐겨보지 못한 이벤트가 곳곳에 자리한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이다. 그 안에서 바쁜 시간 속 부족했던 대화도 할 수 있고 새로운 환경에서 가족 간의 유대감도 짙어진다. 그렇게 쌓인 보물 같은 추억들이 아이들이 자라는데 잘 쓰일 깊고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