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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May 16. 2017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의견이 있을까

부정(否定)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나는 부정한다>

새로운 대통령이 생긴 지 딱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새 대통령의 행보와 미담, 그리고 국민 반응들이 타임라인에 매일매일 올라온다. 재밌는 것도 있고 감동적인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의 반응이다. 반대하던 후보자가 당선되자 회원들이 쓴 글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는데, 일베는 어둠의 노사모라고 불릴 만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화제로 삼은 글, 혹은 세월호나 위안부 문제를 조롱하는 글들이 많았다. 게시글들로 인한 처벌이 두려워서였는지 단순한 변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재밌는 일이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는데 반대 성향 사이트 이용자들이 스스로 검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치적인 올바름을 고려하지 않는 집단. 재미만 있다면 혐오 발언도 거리낌 없고, 이런 태도야말로 위선 없는 진실이라 여기는 일베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거나, 사이트를 폐쇄해야 한다거나, 혹은 처벌을 해야 한다고. 민주주의 사회에선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리버럴한 의견도 물론 있었다. 여기서 질문.


과연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할까.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의견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민주주의는 존재 의의가 자기부정에 있는 사상이다. 민주주의를 진정 위대하게 만드는 힘은 자신을 부정하는 의견까지도 포섭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때로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나치당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굳이 세계사를 배우지 않아도 다들 안다. 지금도 대부분의 민주주의 나라에선 비슷한 문제를 앓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할까,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건을 다룬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는 유대인을 학살했는가?

의도를 의심케 할 만큼 물음의 답은 쉽다. 질문을 바꾸면 조금 어려워진다.


당신이 그렇게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대답은 '그렇게 배웠다'일 테다. 아우슈비츠가 뻔히 남아 있지 않느냐, 생존자들은 뭐냐는 반문도 가능할 테고.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조작된 사료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자들이 유명세나 금전적인 보상을 바라고, 혹은 왜곡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증언이라고 한다면? 만약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부정하는 역사학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상대하지 말고 그대로 부정해버리면 될까?


바로 그 역사학자가 <나는 부정한다>의 주인공이다. 영국인 재야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다. 히틀러는 조직적인 유대인 학살을 지시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유대인 생존자들이 막대한 보상금을 노리고 지어낸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는 또 다른 주인공은 미국인이자 유대인인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 립스타트 교수는 홀로코스트 연구 전문가로, 자신의 저서에서 데이비드 어빙을 히틀러 광신도이자 역사 날조자라고 묘사했다. 어빙은 립스타트의 표현이 자신을 모욕했으며, 그로 인해 강연 요청이 줄어드는 등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다는 것을 이유로 영국 법원에 출판사 펭귄북스와 립스타트 교수를 고소한다. 자신은 히틀러 광신도나 거짓말쟁이가 아니며 홀로코스트가 정말 없었던 일일 뿐이라고.


명예훼손에 대응하는 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원고가 피고의 의도를 오해했다. 둘째, 피고의 표현이 과장되었음을 인정, 약화한다.  셋째, 피고의 표현이 사실임을 증명한다. 립스타트 교수는 '어빙이 히틀러 광신도이자 날조자'라는 사실을 의도하였으며, 또한 조금도 과장하지 않은 진실 그대로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므로 이 경우 방법은 마지막 한 가지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의 쟁점은 다음 두 가지가 된다.


1. 유대인 학살은 실제로 존재했는가

2. 데이비드 어빙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조작했는가  


1을 증명하면 립스타트 교수의 표현은 진실 그대로이니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만약 데이비드 어빙이 진심으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믿는다면(혹은 그의 지능이 그것을 착각할 정도로 낮다면) 립스타트 교수의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은 부당하므로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다.


문제는 홀로코스트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것이 대학교 연구실이 아니라 '법정'이라는 점. 학계의 정설이나 정황 증거가 아닌, 법리적으로 합당한 물증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대인 학살을 객관적인 물증으로 증명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히틀러와 제3제국의 간부들은 공식 석상에서 절대로 대학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패망할 때는 관련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삭제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모든 수용소들을 철저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을 조직적으로 기계적으로 학살한 것, 가스실, 화장터, 비열한 시신 약탈, 이 모든 것이 밖으로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사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런 사실까지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책을 강구했는데, 공식 석상에서 신중하고도 냉소적인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학살'이 아니라 '최종 해결책'이라 표현했고 '강제이송'이 아니라 '이동', '가스실 살해'가 아니라 '특별처리' 등으로 썼다.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중


어빙과 립스타트의 싸움은 사이비 역사학자와 권위 있는 역사학자의 대결이 아니다.  판사의 결정으로 승패가 정해지는 법정 싸움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립스타트를 괴롭힌다. 립스타트 교수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전제 - 홀로코스트는 없다는 주장이 승리할 확률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전제로 전략을 짜야 한단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자손인 립스타트 교수로서는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비극이다.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몇 번이나 들었을, 먼 형제자매들이 당했을 참담한 지옥이다. 그런데 그것을 상상으로나마 부정해보라니. 어빙이 이길 수가 있다니. 당연히 립스타트 교수는 전력을 다해, 그리고 유대인 생존자들을 대표해 법정에서 싸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립스타트 교수의 변호를 맡은 드림팀은 그녀에게 철저한 참관인이 될 것을, 무엇보다 침묵할 것을 과제로 준다. 어빙 스스로 모순에 빠져드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 될 테니까.


<나는 부정한다>는 잘 만든 법정 스릴러면서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교훈을 준다. 동시에 데보라 립스타트의 성장 스토리기도 하다. 유대인의 대변인으로서 립스타트 교수는 영국인 변호팀의 진정성을 끝없이 의심한다. 당신들이 감히 우리들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어? 어떻게 감히 영국인 판사가 이 문제에 대한 판결을 내릴 수 있지? 그리하여 립스타트는 첫 공판일 영국인 판사를 향해 인사를 하지 않는다. 더더욱이 승리에만 집중해 냉정해 보이기까지 한 영국 변호인들 태도는 그녀에게 상처가 된다. 그러나 영국 변호인들은 나름의 소명으로 최선을 다해 재판을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내 승소한다. 립스타트 또한 재판이 거듭되며 서서히 마음이 열리고 마지막 판결의 날에는 드디어 영국인 판사에게 다른 영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녀에게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영화에는 2차 대전의  후손들이 등장한다. 희생자의 후손 유대인 데보라 립스타트, 참관자의 후손 영국인들. 영화 속 영국인들은 이 사건에 반대하거나 찬성한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의 후손은 나오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며 히틀러를 옹호할 때도, 그런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를 공격할 때도 독일인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의 진위여부를 증명할 판결 장소 또한 독일이 아니라 영국이다. 바로 여기서 이 사건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것으로 확장된다. 언제까지 지난 과거사에 집착할 거냔 남자친구의 투정을 듣는 변호팀의 인턴과 내가 만약 당시 독일인이었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반성하는 변호사. 이들의 고민은 그저 영화 속 영국인의 것이 아니라  결국 전세계 모두의 것이 된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  이런 식으로 해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 그들은 입과 눈과 귀를 다문 채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환상을 만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자신은 자기 집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공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중


역사적인 잘못은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 걸까. 마지막 홀로코스트 생존자까지 모두 죽은 다음엔 누가 사과를 받아야 하며, 마지막 나치 생존자까지 죽은 후에는 누가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

 
연합군 라디오에서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을 여러 번 묘사했다. 하지만 너무나 잔인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그걸 믿지 않았다.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중


너무 끔찍한 이야기를 들으면 부정하고 싶어진다. 그럴 리가. 설마.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런 일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왜 생길까. 세상을 보면 피해자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꼭 생겼다. 범죄자를 혐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왜 피해자에 대한 혐오가 함께 생길까. 사실 끔찍한 이야기는 확률적으로 적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끔찍한 일을 평생에 겪을까 말까 한다. 무엇보다 끔찍한 이야기가 있는 세상은 아주 많은 긴장을 필요로 한다. 저것이 내게도 일어난다면 - 이란 가정은 몹시 위협적이다.  대다수의 우리에겐 끔찍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을 때 스스로를 보호할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이야기는 우리의 무력함을 실감케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무력한 자신에게 화를 내기보다, 그런 사건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지어낸 것이라고. 그러면 좀 더 세상이 수월해진 다. 그럴 때 세상은 내 편이 되고 피해자나 그들 편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은 좀 예민하거나 피해망상 환자들이 된다. 피해자가 뭔가 빌미를 주었겠지, 설마 이유도 없이 그런 일이 일어날까. 그러나 여태까지의 역사를 보면 이 문제만큼은 아니 뗀 굴뚝에서도 연기가 났다.


우리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아무도 여기서 나가선 안된다. 팔뚝에 새겨진 숫자를 들이대며, 아우슈비츠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슨 짓이든 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불길한 소식을 세상에 전해서는 안 된다.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중


우리는 프리모 레비의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아우슈비츠는 인간 무리가 다른 인간 무리를 혐오의 수단으로 복종하게 하고, 서로 싸우게 하고, 지상에 지옥을 건설한 적 있다는 기록이다.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집단 가해와 집단 피해의 기억이다. 그러므로 이 일에 대한 사과는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가 사과해야 하고 우리 모두가 사과 받아야 한다. '인간'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슨 짓이든 저지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언제든 다른 인간에게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사과는 그쳐서는 안 된다. 다시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핵심은 제목 그대로 '부정'에 대한 것이다. 영화 안에서 영국 유대인 지도자들은 립스타트에게 어빙 같은 쓰레기의 의견 따위는 무시하지, 왜 굳이 일을 크게 벌려서 위험을 감수하냐고 묻는다. 립스타트 본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선하고 옳기 때문에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부정하는 사람은 역사적 참을 모르는 척하는 어빙뿐 아니라 립스타트가 속한 참의 세계, 그 자체기도 하다.


립스타트와 어빙은 법정에서 싸운다. 역사적 사실이 법정에 올라온 순간, 그것이 아무리 도덕감정이나 도리에는 안 맞을지 몰라도 논리적으로 하자가 있으면 거짓이 된다. 이 살벌한 합리성의 세계에서 데보라 립스타트와 함께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정의가 곧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선한 것이 진실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선한 것도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선한 의도가 방만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선한 것도 치열해야 한다. 옳다는 것이 모든 것의 변명이 되진 않는다. 그 어떤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정의를 역사는 파시즘이라고 불렀다.  


영화에선 ‘감성팔이’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일베 이용자들이 가장 쉽게 민주진영을 공격하는 말이 ‘감성팔이’다. 이들에게 감성은 논리적이지 못한 것, 이성보다 열등한 것, 순간적이며 감각적인 것이다. 이 지적은 감성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치우쳐 오류를 범하는 패션 좌파들에 대한 공격일 뿐 아니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지 못한 태도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자신이 정의라고 믿기 때문에 안일해질 경우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가 영화에선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이 고민을 오리지널 포스터 카피는 완벽하게 표현했다.


The whole world knows the holocaust happened.
Now she needs to prove it.

전 세계가 홀로코스트가 일어났단 걸 압니다.
이제 그녀가 증명할 차례입니다.


그러나 한국판 포스터는 그것을 너무 쉽게 카피화했다. 이분법의 세계로.


거짓이 승리하는 것을

진실이 침묵하는 것을

나는 부정한다


대선 2주 전이라는 개봉 시기,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는 세월호 노래 가사 등을 생각하면 이 영화의 흥행이 어떻게 기획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나는 불편하다. 영어판 카피가 다른 의도 없이 사건으로 직행한다면, 한국판 카피는 분명 노림수가 있다. 사건 자체보다도 이 영화를 구매할 사람들이 누군지 타깃을 암시하는 것이다. '정의 팔이'에 대한 기획의도가 노골적이다. 사실 오리지널 영화 역시 자명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데이비드 어빙을 혐오스러운 캐릭터로 만드는데 주력한다. 실제 데이비드 어빙은 몸집이 크고 잘생긴 남자인데, 제작자들은 어빙 역으로 티모시 스풀을 기용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혐오스럽다는 정체성을 굳이 만들어 넣었다. 이들의 싸움을 추한 늙은이와 아름다운 젊은이의 대결로 비주얼화 했다. 마치 일베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평범하지 않고 사회 부적응자, 루저들이라고 생각하듯이. (아래 사진 참고. 왼쪽이 실제 립스타트와 데이빗 어빙, 오른쪽이 영화 속 인물들)





모든 의견은 동등할까? 영화에서 립스타트는 승소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의견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며, 발언한 사람은 그 말의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말의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는 건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정치인이 지나가듯 던진 농담에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지지자가 반대 세력을 죽일 경우 그 정치인은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그가 아무리 책임을 져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온갖 위험과 막연함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선, 어느 한쪽의 의견이 다른 쪽의 의견을 삭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을 지지할 권리는 모두에게 평등하며 그 이유 역시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유대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가끔 생각해 본다.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선망받는 민족이면서 동시에 가장 유명한 희생자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민족은 아니지만 역시 피해자의 후손으로 살고 있는 덕분에 영화는 좀더 뜻깊게 다가왔다. 위안부 문제는 전쟁 중에 일어날 수 있었던 평범한 비극일까? 5월의 광주는 북한의 사주로 기획된 폭동에 불과할까? 세월호는 단순한 교통사고이며 그 부모들의 주장은 한 푼이라도 더 챙기기 위한 과대망상에 불과할까?


모든 의견들이 다 함께 나와 다투고, 그렇게 얻어진 결론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희생자의 자손에게 남겨진 과제 같다. 더 이상의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때로 어떤 의견은 상대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지고 어마어마한 에너지 낭비로 여겨지는 의견이 분명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의견의 진실을 증명하는데 소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는 순간 부정당하니까.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쓰레기들의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균형 있는 시각과 양비론 사이에서 중심잡기. 그러면서도 나만의 뜻하는 바를 밀고 나아가기,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숙제는 이것 같다.






<나는 부정한다>를 보고서 든 쓸데없고 장황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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