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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쌤 Sep 30. 2021

영화 "시네마 천국" 감상문


1990년에 개봉했던 영화 ‘시네마 천국’은 나이 든 토토가 알프레도 아저씨가 남기고 간 마지막 필름을 보는 장면의 휘몰아치는 감동으로 기억되는 영화이다. 돌이킬 수 없는 옛 시간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랄까, 슬프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는 그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매료가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에 엔리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도 큰 역할을 했고.


그러나 2021년, 아주 오랜만에 ‘시네마 천국’을 유튜브에서 감독판으로 다시 보면서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지 않았다.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여전히 과거 속에, 추억 속에 빠져있는 토토가 매우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두 군데가 있었는데, 시간 간격은 있지만 결국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들이다.



먼저, 연인 엘레나와 다시 만나기 위해 이 지긋지긋한 여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젊은 토토가 혼잣말로 하는 대사이다. “여름은 도대체 언제 끝나지? 영화라면 아주 간단할 텐데. 페이드 아웃하고 바람이 부는 장면만으로 충분한데...” 나는 이 대사를 통해 어려서부터 영화를 너무 많이 봐온 토토가 현실에 적응하는데 어쩌면 약간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는 모든 것이 현실보다 빨리 이루어진다. 남녀가 찰나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영화 속 영웅들이 힘과 실력을 기르기 위해 훈련하고 노력하는 장면들은 빠르게 편집되어서 현실에서는 최소 2~3년 이상 걸릴 시간을 2분 안에 압축해서 보여준다.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시간을 그야말로 서너 컷으로 해결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상은 지루하지만 영화는 스펙터클하다. 내 삶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과 별 다를 것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지만, 영화 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선남선녀들과 뜨거운 사랑과 환상적인 모험들이 넘쳐난다. 2시간 남짓 되는 상영 시간 동안 영화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나의 비루한 현실은 사라져버리고, 나는 영화 속 주인공에 감정이입하여 극강의 판타지를 체험할 수 있다.


실제로 내 인생에서 가장 암울하고 되는 일이 없던 시절에, 나는 엄청나게 많은 영화와 뮤지컬을 보았다. 영화를 극장에서 하루에 연달아 네 편을 본 적도 있고, 거의 매일 뮤지컬을 보러 대학로에 나가기도 했다. 극장에서 영화나 공연을 볼 때만 살아있다고 느껴졌고, 극장에서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재미없어지곤 했다.

알프레드 아저씨를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토토에게 마을을 떠날 것을 종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알프레도 아저씨가 토토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삶의 냉혹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토토는 이 말을 귀담아 들은 것 같지 않다. 그는 현실을 살면서도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늘 영화 같은 사랑, 영화 같은 추억을 곱씹었다. 비록 영화감독으로 성공은 했을지언정, 그는 엘레나라는 마음속 여주인공과 ‘cinema paradiso’라는 추억의 공간을 가지고 계속 자기만의 영화 속으로 도피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토토는 현실 속의 여인들과는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했을 뿐 아니라, 행복한 삶을 누리지도 못했다. 그가 고향에 돌아오는 순간 곧바로 과거를 복원하려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도 어른이 되지 못한 모습에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러니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안 나올 밖에.


물론 첫사랑에 대한 순수함을 간직한 순애보로 볼 수도 있고, 영화보다 영화 같은 삶을 일궈낸 인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알프레도 아저씨가 토토를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현실에 발을 딛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욕먹을 각오를 하고 했던 거짓말이 무색할 정도로, 토토가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유감이다. 예전엔 어린 시절 토토의 눈매와 똑같은 중년 배우를 섭외한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 분위기가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소름끼친다.


과거의 나는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사람이 되길 꿈꿨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풍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있는 사람을 보면 무섭다. 그 완고함과 집착과 어리석음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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