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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 Dec 31. 2021

둘 중 약을 먹은 것은 누구인가

이우빈 그리고 구본하 - 뮤지컬 <트레이스 유>의 소. 세. 프. 리

<주의!! 뮤지컬 트레이스 유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해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돌아온 뮤지컬 <트레이스 유>

작가 윤지율은 이번 시즌 나온, 대본집의 마지막, 작업기록에서 처음 이 극을 창작하던 2012년 당시, 빌리 밀리건이란 24개의 인격을 지녔다는, 다중인격으로 무죄를 인정받은 사람에 흥미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수평이라고는 안 맞는, 캐스팅보드. 이번 시즌 자첫페어였던 종구우빈-상준본하, 기존 트유에 없던 캐릭터로 유명했는데, 좀 더 익은 다음인 막공 즈음에 분위기가 달라졌대서 궁금해졌다

극과 뮤지컬에서 다중인격이라는 소재가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뮤지컬 인터뷰, 인터뷰의 시점을 달리 한 버전인 연극 인사이드가 있고, 그즈음 히트한 드라마였던 킬미힐미도.

 다중인격으로 알려졌지만, 공식 용어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다. 대개 아동기의 심각한 외상,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랑 높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병인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어떤 연구자들은 별개의 인격 간의 전환이 아니라, 중첩이 각 인격 상태 간의 단편화, 기억과 정체성이 불연속성을 보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오히려 환청이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특성 때문에, 조현병과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DID가 아주 어릴 때부터 환청이 들린다면, 조현병의 경우 10대 후반~20대 초반, 혼란스러운 사고체계를 특징으로, 다른 정신병성 증상과 동반된 환청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치료법에 있어서 입원 치료 중인 환자의 아급성 불안이나 착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에 정형/비정형 약물의 일부로 쿠에티아핀(Quetiapine, 후술 할 쎄로켈)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부분 때문에 어쩌면, 이들이 스키조, 조현병이 아닐까? 정말 다중인격일까라고 의심하게도 됐다. 입원환자의 급성 증상 치료라기엔 먹는 약이 오죽 많았어야지 말이다.

마침 이날은 커튼콜 촬영이 가능했다. 영상으로 찍었어야 이 신나는 넘버를 느낄 수가 있는데, 아쉽지만 이 장면을 남긴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시금 그리워지는 트유.

16번 넘버인, 낙서 Reprise에서, 우빈의 나직한 선창

소라진, 쎄로켈, 프롤릭션, 리스페달

클럽 드바이의 커튼콜, 원래는 함께 떼창하며 뛰어놀았어야 하는데,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관극 중인 약사를 혼란하게 하는, 실시간 약품명이 울려 퍼지는 광경이라니.

더욱이 이전 시즌까지는 저 넘버를 커튼콜 때 다 같이 따라 부르도록 했던 터라 객석에서 같이 소라진, 쎄로켈, 프롤릭션, 리스페달을 외치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혼란한 체험은 덤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번 시즌은 배우들의 커튼콜을 자리에 앉아 박수만 치며 감상을 하는(이번 시즌 마지막 관극이었던, 이해준-이율 페어의 관극 날, 나름 앞자리-그래 봐야 C열-를 잡아 박수를 쳤더니, 애플 워치가 지금 실외 달리기 중이시군요라고, 부흥회 현장 체험ㅋ) 왠지 모르게 아쉬운 경험이었다.

2018년 트유의 꽃우빈-링본하, 나의 자첫페어. 우빈이 뿌리는 물도 맞고, 약사라는 신분도 잊고, 신나게 나도 쏘세프리를 외쳤던 10월의 어느 날.

소라진(Thorazine)은 클로로프로마진(chlorpromazine)의 상품명으로 한국에서는 네오마진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팔리고 있고, 쎄로켈(Seroquel)은 쿠에티아핀(Quetiapine), 프롤릭션(Prolixin)은 현재 한국에서는 유통되지 않는 플루페나진(Fluphenazine), 리스페달(Rispedal)은 리스페리돈(Risperidone) 성분으로 모두 조현병의 치료에 쓰이는 약물이다.

소라진 대신 네오마찐, 그리고 쎄로켈 - 분류 번호 117의 정신신경용제
프롤릭션, 프로릭신의 사진과, 리스페달의 제품 정보

이 약품들은 화학적 구조에 따라 1세대 페노시아진계(정형 항정신병 약물) 또는 2세대 항정신병 약제(비정형약물)로 분류될 수 있다. 먼저 개발된 1세대와, 할돌 주세요로 자주 드라마에서 언급되고 하는 할로페리돌(국내, 페리돌 주)의 경우는 부티로페논계로 다른 계열로 분류된다. 1세대 약물들이 2세대 약물들보다 대체로 추체외로 효과가 강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체외로 부작용은 쏘라진, 즉 클로로프로마진 복용 후 1950년대에 파킨슨 유사증상이 나타난 이래로,  근긴장 이상(Dystonia - 지속적 근육 수축으로 신체의 일부가 꼬이거나, 비정상적인 자세를 보이는 증상), 정좌 불능(Akathisia, 가만히 앉은 채로 있을 수 없는 상태로 몸을 전후좌우로 끊임없이 흔든다), 약물 유발 파킨슨병(Drug induced parkinsonism), 지연성 운동장애(Tardive dyskinesia, 실제 입속에 아무것도 없지만, 입을 우물거리는 등의 행위를 주로 보인다)등을 포함하는 증상을 통칭해 말하고, 항정신병 약제의 특이적 부작용이며, 이후 개발되는 약제들(2세대 비정형 약물 포함)은 이러한 추체외로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트레이스 유가 다루고 있는 소라진은 1세대, 프롤릭션도 1세대, 세로켈과 리스페달은 2세대, 즉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이다.

항정신병 약제의 화학적 구조에 따른 계열 분류 - 출처 : Pharmacotherapy Course Book - BCPS prepertion

이런 항정신병 약물, 특히 조현병의 치료에 쓰이는 약물을 치료 강도(Potency)에 따라 분류하면, 소라진은  추체외로 효과도 1세대 중 낮은 편이지만, 약물강도가 낮은 편이고, 한국에선 쓸 수 없지만, 프롤릭션은 강도도 강하지만, 추체외로 효과도 높고, 항콜린 작용이나 진정이 떨어지는 편이다.

쎄로켈과 리스페달을 포함하는 2세대 약물들은 비정형 약물이라는 말처럼, 정신증상의 조절 외에 부작용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리스페달은 항콜린 효과가 작은 대신, 상대적으로 2세대 약물 중 추체외로 부작용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기립성 저혈압의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가 하면 세로켈도 기립성 저혈압의 가능성은 높고, 상대적으로 추체외로 효과의 가능성은 낮지만, 진정 작용이 리스페달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쎄로켈은 용량도 다양하고, 그냥 쎄로켈 정은 1일 2회 복용하는, 약제였고, 서서히 증량을 해, 유지용량을 복용하는 약물이라면, 이의 복약순응도를 개선하기 위해, 서방정인 쎄로켈 XR정이 출시되었고, 리스페달 역시, 1일 2회 투여하는 리스페달 정과, 유지요법으로 사용하는 2주에 1회 투여하는 주사제형인 리스페달 콘스타주, 지금은 허가가 취하됐지만, 구강 붕해정으로 빠른 흡수를 꾀할 수 있었던 퀵릿 정이나, 오디 정, 액까지 다양한 제형이 있다. 환자의 순응도 및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이건 장기 치료가 필요하고, 순응도가 중요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2세대 항정신병약, 비정형약물들의 부작용 분포, 효과와 부작용을 비교하여 약물을 선택할 수 있다.

조현병과 연관된 증상은 양의 증상과, 음의 증상으로 나뉠 수 있는데, 양의 증상은 대개, 정형 또는 비정형 약물 모두가 효과가 있고, 음의 증상은 일반적으로 비정형약물, 2세대 약물이 더 효과적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인지증상의 경우는 아직까지는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 알려져 있지 않다.


환청은 전형적 양의 증상이고, 편집증성 증상 또한 양의 증상의 예시다.

자폐나, 반응속도가 느린 것, 위생 증상의 결여, 말이 어눌한 것, 무의욕증 등은 음성 증상의 예시이고 말이다.

우빈과 본하가 보였던 중얼거림이나 기억 소실, 무슨 소리 안들려냐던 환청 등등의 증상이 양의 증상과 음성 증상이 혼재되어 있고, 그래서 정형과 비정형 약물을 함께 투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이 조현병이건, 아니면 작가의 의도대로 다중인격장애였던 간에, 그들 혹은 그는 치료될 수 있는 인물이다. 비록 우빈이는 정신과 의사들은 우리 둘 중 하나는 이 약을 먹고 사라진 줄 안다고(그래서 그는 약을 먹지 않고 모아두었다. 극 중 어떤 페어에서는 약을 먹기도, 또 쏟아 버리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날바 날, 그래서 결말의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이런 오첨 트유가 트유를 즐기는 매력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제대로 꾸준히 약을 복용했다면, 환청이나 환각일 수 있는 어떤 한 존재는 사라졌을 수도 있으니, 둘 중 하나는 약을 먹고 사라졌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들이 조현병이던 해리성 인격장애의 공격 증상이던, 만약 조현병이라면, 와해된 언어(본하는 느낌인 필을 peel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와해된 언어의 특성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생각한다)가 특징적일 수 있다. 다른 정신질환의 경우, 심리치료 등이나, 요즘 개발되고 있는 게임치료 등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조현병 만은 생활치료나 상담치료가 아닌, 약물치료가 기본이자 필수적이다. 심리치료나, 정신사회적 재활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족을 포함한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매우 중요한데, 본하에게는 뚜렷한 보호자가 없다. 물론 본하가 사실적 존재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이들 조현병 환자들은 개별 약물에 대한 반응은 약 70~80%라고 알려져 있으나, 만성적 증상의 경우, 장기치료를 필요로 하다 보니, 약 1/3 은 거의 완전하게 회복이 되어,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1/3은 증상이 일부 잔존한 상태로 관리하는 삶은, 나머지 1/3은 만성화가 진행되어 예후가 나쁘게 된다.  또 증상이 좋아진 경우라 해도, 약물 치료 중단 혹은 큰 스트레스가 있는 경우, 2년 내에 약 90%의 환자에게서 재발하는 경우가 많아, 일생 간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적 치료 중단, 복약 순응도가 떨어지는 환자들이 대개 신문 사회면에서 볼 법한 사건들을 일으키곤 해, 치료를 잘 받고 있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편견이 생긴다는 의견이 생기기도 하는 걸 보면,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조인성과 공효진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조현병 환자인 장재열(조인성 분)과 그의 망상, 또는 환각인 한강우(도경수 분)가 그 모습이었고, 진료를 통해서 한강우와의 이별, 즉, 환각의 소멸을 묘사했던 것처럼, 때로는 건강한 이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둘 중 하나가 사라졌을 거라고 믿는 의사들을 속이지 말고, 치료를 잘 받길 말이다. 우빈이, 본하 둘 중 누가 약을 먹었고, 누가 소멸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그날그날의 노선에 따라 누가 양의 증상/음의 증상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한쪽이 주인 격, 어느 한쪽이 소실되어져야 하는 망상 같기도 한데, 매일이 달라지는 트레이스 유의 설정에선 누가 누구이냐보다, 이들에게, 치료 약물에 대한 순응을 통해 건강한 이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제발, 약을 안 먹는다는, 그런 끔찍한 말만 말아주세요라는 건 관객이기에 앞서, 약사라는 사회적 자아를 함께 가지고 가는 어떤 관객 1의 진심 어린 부탁과 함께, 할 말이 엄청 많은 트레이스유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홍대 드바이 클럽의 우빈과 본하의 모습이 이랬을까.


제발, 약 안 먹는다는 말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어쩌면 현실이 아닌 꿈속 모습일지도 모를 우빈과 본하


여전히 삐뚠 객석층의 포스터 - 웅우빈과 메본, 해준본하, 이해준의 재발견이었던, 이번 트유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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