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학의 시선으로 본 창작의 본질
창작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창작의 주체가 되는 예술가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오늘은 감정과학의 시선에서 창작이란 무엇인지,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탐구해 보고자 한다. 감정과학의 시선에서 감정의 근원은 외부 자극이 아니라 ‘내 몸의 진실’이라고 본다. 따라서 예술 창작에서의 감정 역시 외부에서 억지로 주입하거나 모방할 수 없다. 진실된 감정은 오직 창작자 자신에게서만 나온다. 그 감정에 얼마나 진실하게 머물렀으며, 얼마나 억누르지 않고 흘려보냈는지가 음악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렇기에 예술가는 자신의 감정에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사람이다. 그것이 진실하지 않다면, 어떤 기교나 화려한 구조도 감정의 진동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음악 속의 감정이란 결국 예술가가 사유하고 깨닫게 된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감정을 다룬다. 그것이 노래든, 연주든, 작곡이든, 감정은 예술을 구성하는 중심 요소가 되고, 동시에 예술가의 내면에서 가장 민감하게 작동하는 창작의 동력이자 본질이다. 그러나 감정은 음악 속에 단순히 표현되거나 연출되는 대상이 아니다. 감정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며, 창작이란 그 감정의 존재를 알아채고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다. 감정과학은 우리에게 감정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라고 말한다. 감정은 단지 반응도 아니고, 기호도 아니며, 상징도 아니다. 감정은 내 몸의 진실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음악이라는 예술이 감정을 품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감정의 본질과 가장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감정을 억지로 해석하지 않으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머물게 한다.
하지만 예술가는 감정의 진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종종 억지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연출하려고 한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또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감정을 다룬다는 착각에 불과하다. 억지로 감정을 표현하려는 의도는 감정의 생생함을 왜곡하고, 그 생명력을 오히려 억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예술가는 감정을 통제하거나 조작하는 존재가 아니다. 감정이 흐를 수 있는 틈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감정과학의 시선에서 본다면, 창작이란 감정을 해석하거나 의미화하는 작업이 아니라, 감정이 존재하는 방식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예술가는 감정을 억지로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않아야 하고, 그저 그 순간의 감정과 동행함으로써 그것을 음악이라는 형식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감정의 무형성을 존중하고, 감정이 그 무형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사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실천하는 예술가의 음악에 담긴 감정은 단순히 전달되는 정보가 아니라 무한히 공명하는 진실이 된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음악에 담기는 감정은 각각의 고유한 구조를 가진다. 슬픔에는 슬픔의 길이 있고, 두려움에는 두려움만의 진동이 있다. 이름 모를 감정에도 그 감정만의 진동이 있다. 예술가는 이 감정의 길과 흐름을 단순히 악보에 옮기고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파동에 귀 기울이고, 그 흐름이 형태를 가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그 흐름과 함께 감정의 진동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선을 따라가면 작곡은 기술의 집합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직조하는 작업이 되고, 연주와 노래는 그 감정의 진동을 내 목소리의 울림으로 바꾸는 작업이 된다. 이 모든 작업은 그저 단순한 형식과 기술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리듬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자라나는 생명력을 더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 창작이란 표현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살아 있을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고, 그 공간에 감정 그 자체로 살아 있게 두는 것이며, 예술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머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무한한 감정의 본질을 꿰뚫는 감정과학의 철학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깊은 사유의 틀이 되며, 그 안에서 탄생한 음악은 그러한 감정이 가장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예술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명 뮤지션의 인터뷰를 인용하고자 한다. 얼마 전 ‘한국 록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김종서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바로 이것이 감정을 다루는 예술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음악은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강박은 없어요.
내가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이 내 음악에 녹여지는 것뿐이에요.
그 당시 나의 상황이나 감정이 투영되는 음악이 진정한 ‘레코드’ 아닐까요?
- 하루잇문학 6월호: 철학을 잇다 ‘김종서’ 中 -
이 글의 화자인 나도 예술가로서의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본다. 그동안 나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노래하는 예술가였는가? 아니면 타인의 감정을 억지로 모방하는 것에 집중한 예술가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