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전새벽 Nov 16. 2018

그 형사가 쫓던 것

 - 영화 <암수살인> 리뷰



갑자기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진 요즘입니다. 본격 사회인 힐링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보면서 위로도 받고 싶고, <미쓰백>을 통해 참혹함이 어떻게 아름답게 그려지는지를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요, 또 못다 이룬 뮤지션의 꿈을 <스타 이즈 본>을 통해 추억하고 싶기도 하고요.

이렇게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은 가운데,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는 썩 구미가 당기지 않았었습니다.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하면서 유족들과 사전 교감을 하지 않았다는데에 화가 나서요. 그러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던 유족이 끝내 제작진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일부 유족은 경각심을 깨운다는 제작의도에 공감하며 영화를 응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보고 비로소 영화를 볼 결심이 섰습니다. 개봉 전부터 곤욕을 치르며 위기를 맞았던 영화,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영화, 그리고 지금은 보란듯이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화제작, <암수살인>입니다.


마약수사대에 있다가 형사과로 넘어온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 그는 어느날 끄나풀인 마약쟁이를 통해 청년 강태오(주지훈 분)를 만나게 됩니다. 강태오는 그에게 살인사건으로 추정되는 한 사건에 대해 제보하며 은밀히 정보비를 요구하죠. 그런데 둘의 '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강태오를 잡아갑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강태오란 놈, 여자친구를 죽인 놈이라는 거 아닙니까.

강태고가 구속된 후 몇 개월 뒤, 김형사는 전화를  한 통 받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것은 다름 아닌 강태오. 강태오는 자기가 죽인 사람이 총 7명이라며 김 형사를 구치소로 유인합니다.


김형민은 강태오로부터 자술서를 받아내고, 그 대가로 영치금을 넣어 줍니다. 그리고 자술서를 바탕으로 동료인 조형사(진선규 분)와 사건을 추적하기로 해보죠. 피해자도 발견되지 않은, 신고도 들어오지 않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암수살인' 사건들을 말이죠.

김형사는 먼저 도박장 '꽁지(도박판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챙기는 사람)' 박사장 사건을 추적합니다. 그런데 웬걸, 단서들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보니 박사장이 멀쩡히 살아있는 게 아니겠습니다. 박사장에 말에 따르면 강태오는 그를 죽이겠다며 일본도를 들고 찾아왔다가 오히려 겁을 먹고 쫓겨 났다고 하네요. 저런... 김형사는 돌아이 살인마의 거짓자백을 듣고 시간낭비를 한 건 아닐까요?



다시 구치소에서 만난 강태오. 그는 "죽이고 싶었던 놈이랑 실제 죽인 놈이랑 헷갈렸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그리고 이번엔 보다 자세한 단서를 김형사에게 건네주죠. 바로 토막난 시체의 일부를 매장했다는 어느 무덤의 약도입니다. 김형사, 일말의 의심도 없이 수색인원을 동원해 무덤으로 갑니다. 하지만 끝내 단서가 발견되지 않고, 김형사는 인력들이 철수한 늦은 밤에 조형사와 외로이 땅을 파지요. 그런데 김형사의 눈물겨운 노력에 하늘이 응답이라도 한 것일까요. 그들은 마침내 발견하게 됩니다. 배꼽부터 무릎까지만 묻힌, 어느 여인의 유골을 말입니다.

자, 이제 김형사는 보다 확신을 가지고 강태오를 만나기 시작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전부 들어주면서, 사비를 털어서 놈의 영치금을 넣어주면서까지 말이죠. 살인자의 비위를 맞춰가면서까지 과거의 사건에 매달리는 김형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굳이 아무도 모르는 사건들을 자백하는 강태오의 저의는 무엇일까요? 그가 주장하는 암수살인들은 과연, 이제라도 해결될 수 있을까요? 



영화 <암수살인>은 이렇게 미스테리 범죄극의 형태를 유지하며, 알쏭달쏭함을 증폭시켜 나갑니다. 와중에 시간이 흐를수록 확실해지는 것 하나는 한 가지, 바로 강태오가 철저한 악인이라는 것이네요. 그런데 그의 말이 어디까지인지 사실인지는 너무도 불확실합니다. 그는 전문가도 심리 파악을 포기한, '판정불가'의 범죄자이니까 말이죠. 

한편 의뭉스러운 것은 김형사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비를 털어서까지 과거 사건을 수사한다니, 대체 그의 동기가 무엇인지가 점점 궁금해지죠. 자,영화는 이제 한 가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불필요한 자백을 하는 범죄자와, 그것을 일단 믿고 가는 무대뽀 형사. 이 둘의 '동기'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설사 영화가 실화에 기반했다고 하더라도- 영화는 망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영화의 중반부에서 드러나는 강태오의 동기는 과연 보는 사람들을 납득하게 합니다. 김형사로 하여금 사건 B,C를 가지고 자신을 추가 기소하게 만든 다음 법정에서 무죄임을 판결 받고, 뒤에 가서는 최초에 혐의를 인정 받은 사건 A에 대해서도 무죄를 주장하겠다는 계획이지요. 그동안 김형사가 제공하는 영치금은 덤이고요. 


자, 이제 궁금한 것은 하나입니다. 김형사를 움직이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영화 <내부자들>의 히어로 우장훈 검사의 동기가 '출세'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독전>에 등장한 형사 원호의 동기는 이선생에 대한 '집착'이었죠. 또 <더 킹>에서 박태수의 동기는 '복수'였고요. 그러니까 한국 범죄 영화가 보통 그려내는 '동기'라는 건, 그게 선이든 악이든, 돈 아니면 원한이었다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설정인겁니다. 그런데 <암수살인>의 김형사는 다릅니다. 그 분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정의'인 것입니다.

13년 입니다. 제 정년퇴임까지 말입니다. (추가 기소하지 않고 이대로 두면) 그로부터 2년 뒤에 강태오가 출소합니다.


형사 김형민은 법정에서, 검사실에서, 자신을 움직이는 동기를 명백히 밝힙니다. 그리고 그 '동기'는 <암수살인>의 관객들에게 넉넉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그 형사가 끝까지 쫓던 것이, 돈이나 원한이 아닌 '사회의 안전'이었다는 것이 감동스럽기까지 하달까요.

또 살인할 것이 뻔한 놈이 언젠가 사회로 돌아온다는 것이 견딜 수 없다는 김형사. 그걸 막기 위해서는 승진도 포기하고 돈도 포기한 채 몸을 내던지는 김형사. 그런 인물이 영화 밖에 실존한다는 것. 그가 피해자와 유족을 배려하는 공권력이라는 것. 그가 악에 대한 철저한 미움으로 무장한 히어로라는 것.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사회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덕분에, 저 역시 든든한 마음으로 극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영화에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 없다는   점에도 감사하면서요 말이지요. 


한편 배우들의 연기에 있어서도 만족스런 점수를 매겨봅니다. 특히 <신과 함께>때 너무 과장된 연기를 해서 저를 불안케 했던 주지훈도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네요. 그의 연기는 여전히 과장되어 있지만, 김윤석, 진선규, 문정희 같은 베테랑들이 온몸에 힘을 쫙- 빼고 베이스를 받쳐주니 배역 간의 밸런스도 안정적이고요. 


자, 이제부터는 예비관객들의 몫입니다. 극장으로 가셔서, 여러분들은 더 많은 단서를 찾아 오십시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 봅시다. 수사대가 사건을 포기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해지는지, 악인이 제대로 심판받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위험이 생겨나는지, 정의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의 뒷모습은 어찌나 외로운지, 그런 단서들을 가지고 찾아봅시다. 더 살기 좋은 곳, 더 안전한 곳, <암수살인> 따위 없는 곳으로 가는 길을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글, 니모를 찾아줘!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