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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새벽 Nov 16. 2018

가가 가가가?

-영화 <스타 이즈 본> 리뷰



간절히 원했는데 갖지 못한 것, 그런 것들로부터는 거리를 두는 게 상식 아닐까. 

오랫동안 곡을 쓰고 기타를 치며 록스타를 꿈꾸었던 나는, 회사원이 된 뒤에는 음악 영화만 보면 목이 움츠러 들었다. 손에 들린 서류가방과 반듯하게 다린 셔츠가 갑자기 '어글리'하게 보일까봐 두려웠다. <비긴 어게인>이 그랬고 <내 어깨 고양이 위 밥>이 그랬다. <드림걸즈>가 그랬고 <레이>가 그랬다.
  그래서 브래들리 쿠퍼가 <스타 이즈 본>이란 음악 영화를 만들었다고, 상대역은 레이디 가가라고 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온갖 이유를 대며 관람을 보류했다. 쿠퍼란 놈은 <행오버>같은 코미디에서 실실 대는 거나 어울리는 놈 아니야? 가간가 뭔가는 괴상한 분장하고 과장스런 춤추는 팝스타에 불과하잖아... 

온갖 이유를 대며 시간을 버는 동안, 영화는 다행히 극장을 떠났다. 그런데 며칠 전 문우(文友)로 지내기로 한 동생이 쓴 <스타 이즈 본> 관람평을 읽어 달라며 가지고 왔을 때, 나는 신이 조크를 좋아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너무 좋았다는 녀석의 평을 들으며 나는 두 손을 들었다. 아, 봐야겠다. 또 한동안은 몽롱한 상태로 영화의 OST를 흥얼거리게 되겠지만. 구두를 신고 영업을 다니는 것보다 기타를 치고 싶어 견딜 수 없게되겠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완전히 '오버'했다. <스타 이즈 본>은 뮤지션의 꿈으로부터 도망친 사람들의 '잠든 노래 세포'를 깨우는 영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뮤포자들이여,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건 노래 세포보다 세상에 훨씬 많이 존재하는 '어떤' 세포들을 강렬히 깨우는 영화니까.


이름난 밴드의 프론트맨 잭 메인. 평소와 같이 공연이 끝난 뒤 취한채로 바를 찾아해메던 그는 우연히 드랙 바(drag bar, 크로스드레서들이 주로 찾는 바)에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매혹적으로 샹송을 부르는 앨리에게 술을 청하고, 그녀와 밤을 보내며 그녀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다.
다음날 공연장으로 앨리를 초대한 잭은, 전날 앨리가 흥얼거렸던 그녀의 자작곡을 편곡해 무대에서 노래한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관객 앞에서 노래를 이어 부르게 한다.
앨리가 노래하는 장면은 유튜브를 통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앨리는 결국 알바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잭의 투어에 합류한다. 잭과 함께 공연하며 앨리는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어가고, 잭과 앨리는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앨리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프로듀서의 손을 잡고, 잭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그녀는 댄서들과 춤 연습을 하고, 프로듀서의 강요에 따라 머리도 염색한다. 우스꽝스런 가사를 노래하며 격렬히 춤을 추는 앨리를 잭은 탐탁치 않아하고, 앨리는 잭의 알코올중독에 진저리를 낸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플롯이다. 함께 음악을 하며 꿈을 키우던 연인 중 한쪽이 거대 미디어의 입맞대로 변해가며 벌어지는 갈등의 플롯 말이다. 그래서 지루했다. 가가가 노래를 잘하는 건 알겠는데, 쿠퍼도 기타 잘 치는 건 알겠는데 갈등의 원인이 너무 빤했다. 그렇다면 결말도 빤하지 않을까. 흥행만을 생각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 염증을 느낀 앨리가 끝내 잭의 품으로 돌아오며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데, 결말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스타 이즈 본>에는 그와 비슷한 플롯을 가진 <비긴 어게인>과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변질한 연인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경이 영 읽히지가 않았다. 데이브(애덤 리바인)이 한껏 인기에 취해가는 동안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겪은 깊은 실망이 잭에게는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라는 얘기였다. <스타 이즈 본>은 캐릭터 설정조차 부실한 졸작이거나, <비긴 어게인>같은 영화를 가볍게 뛰어 넘어버리는 작품이거나.


영화의 후반부, 비로소 영화의 주제를 알게 된다. 끝내 결별하지 않는 잭과 앨리를 보며, 나는 기실 이 영화와 닮은 작품이 <비긴 어게인>이 아니라 <이프 온니>라는 걸 깨달았다. 앨리가 알코올중독 치료를 하러 시설에 들어간 잭에게 "꼭 돌아오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하는 건, 그녀가 변심해서가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이 남자의 사랑이 애초에 알코올로 인한 착각이었을지 모른다는 불안, 중독을 치료하면 사랑도 무효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안심하고, 다음 순간 더욱 불안해진다. 이 영화가 내 음악 세포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안심하고, 이 영화가 음악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나를 더욱 세차게 흔들 것이란 확신 때문에 불안해진다.



<스타 이즈 본>은 사랑에 관한 영화다. 두 인물의 직업은 뮤지션이 아니라 작가, 운동선수, 학자, 회사원, 뭐였더라도 상관 없다. 하지만 배우는 다른 사람이면 안 된다. 이 영화는 브래들리 쿠퍼라는 전방위적 예술가와, 이 시대 가장 사랑스러운 여성 중 하나인 가가가 전작들에 바치는 오마주이자, 모방 불가한 세레나데인 것이다.

모방이 불가능한 첫 번째 요소는 가가에게 있다. 그녀는 압도적인 노래 실력으로 관객을 전율케 하고,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함으로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킨다. 외모나 목소리가 어딘지 스칼렛 요한슨을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는데, 요한슨은 전쟁터에 내놓아도 안심일 것 같은 면이 있는 반면, 가가는 혼자서는 전쟁 쟁영화조차 보지 못하게 하고 싶을만큼 감싸주고 싶은 면이 있다. 가수로서 그녀가 내뿜었던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미처 발견되지 않았던 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레이디 가가의 재발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짧게 하면, 가가 가가가? 정도가 되려나.

모방이 불가능한 두 번째 요소를 설명하려면, 내가 평소 가가의 팬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힐 필요가 있다. 평소 팬이 아닌데도 이토록 그녀를 추켜 세우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모방 불가능한 두 번째 요소, 감독의 시선이다. 
전문평론가가 아닌 나는 쿠퍼의 연출 실력을 평할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그가 작업하는 내내 레이디 가가라는 인물을 진심으로 사랑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사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분명 사랑이리라.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이런 식으로 화면에 담아낼 수 있는 신인 감독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어느 순간에도, 앨리라는 인물은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다. 감독이 그렇게 만든다. 사랑 영화를 사랑을 하며 찍다니, 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 감독인가. 



<스타 이즈 본>은 음악이 황홀한 영화는 아니다. 몇 가지 트랙이 인상 깊긴 하지만 그 트랙들 조차 '인상을 주려고 만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만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끝내 이해할 수 없었던 잭의 심정은 잭 본인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라는 걸 납득하는 순간, 어떤 사랑은 너무 사랑해서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그 어떤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보다 아득해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것은 음악의 순수성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기라는 걸, 그리고 음악이란 늘 사랑을 닮으려 애쓰는 존재에 불과하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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