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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새벽 Dec 14. 2018

그는 비로소 자화상을 그린다

사이민 도미닉, <DARKROOM>


사이먼 도미닉, <DARKROOM: roommates only>



내겐 '쌈디'로 더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다 몇년 전 자신의 이름을 후렴구로 만든 노래('사이먼 도미닉')가 내 귀에도 들려오면서 그의 이름이 제대로 자리 잡았다. 이름이 자리를 잡든 어쨌든 나는 그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문학이길 거부한 랩은 재롱잔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의 가사가 문학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하지만 그의 신보를 듣고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는구나, 라고. 이 앨범은 말하자면, 알이 부서지는 소리다. 그 소리를 8개의 트랙에 담았다. 폼나는 목소리(와 억양)로 거대한 팬덤을 만들어낸 래퍼, 사이먼 도미닉의 신보 [DARKROOM: roommates only]다.

1. roommates only
가수에게 앨범은 자식이다. 자식이면서 원수고, 원수면서 아지트다. 그 아지트는 때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초대하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고, 정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만 들어왔으면 하는 제한구역이 되기도 한다. 사이먼 도미닉은 첫 번째 트랙을 통해 이번 앨범은 제한구역임을 밝힌다. 신보는 '고통이 다 해준 음반'이다. 모여서 기쁜 마음으로 잔치 벌일 생각 아니니, 올 사람만 오라는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들어가 있다. '대신, 같이 불행해질 수도 있으니까 미리 알아둬'에서 그 경고문을 읽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후렴구에서, '정말 내 룸메이트가 되고 싶으냐(do you really wanna be, wanna be my roommate?)'라고 묻는다. 그렇게까지 재차 확인을 하니 어쩐지 이 사람, 가엾다. 제 아지트에 사람을 초대할 때 이토록 조심스러운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한다. 왜 그런지, 그의 방으로 들어가보자.

2. 06076
두 번째 트랙의 제목은 '06076'이다.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것은 그가 사는 (살았던) 곳의 우편번호다. 06076으로 분류된 행정지역은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동 주소로 표기하면 '청담동.'

청담은 상징적인 장소다. 부는 압구정에도 있고 신사에도 있고 강남에도 있지만 청담은 좀 다른 류의 부를 상징한다. 압구정에는 학군, 신사에는 쇼핑(정확히는 쇼핑몰 모델들의 일터), 강남에는 회사촌이라는 리얼리티가 혼재한다면, 청담은 그냥 청담이다. 그 청담에서 래퍼는 노래한다. '한강이 보이는 34층은 쓸데없이 뷰가세가 세'라고. 

탈무드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죽음'과 '세금'이다. 정부는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에 '부가가치세'를 매겨두었다. 래퍼는 여기서 부가세를 '뷰가세'로 탈바꿈 시킴으로써, 한강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지출이 따라오는지를 푸념한다.

뒤따라 이어지는, '여기서 살던 전 주인은 내가 이사 오기 전에 / 이 집 살면서 빌딩을 두 개나 샀다던데 /난 그 좋은 기운을 이어받기는커녕 / 악몽 속에 살아, 부동산 말 이제 안 믿을 거야'라는 가사가 재치있다. 동시에 아프다. 악몽 속에 사는 그에게 한강뷰는 이제 의미가 없다. 그는 청담에서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모든 것에 권태로운 자신을 괴로워하고 있다.('영혼 없는 태도, 관심 밖인 승패들 / 일은 물론 사랑에도 쉽게 권태를') 

3. winterlude '17
먼저 용어 정리부터 하자. 윈터루드(winterlude)라는 말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힙합 앨범에 주로 실리는 interlude(간주, 혹은 연극에서 부르는 '사이')에 겨울(winter)이란 말을 섞은 새로운 말이다. 랩이 문학의 범주고 문학은 언어로 하는 예술임을 떠올려보면 래퍼가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은 신기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신조어를 만들어 막간에 2017년 겨울에 대해 얘기해보겠다는 그의 폼새가 심상치 않다. 옛 사랑 얘기라도 하려는 걸까. 들어보면 알 일이다. 손을 뻗어, 이어폰을 좀 더 귀 깊숙이 밀어 넣는다.

4. 정진철
'명절 때마다 조카들에게' 비싼 옷 선물해주던 삼촌이 있었다. 삼촌의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부산에서 이름 좀 날리던 그의 주 고객은 유흥업소의 접대부들. 삼촌은 그녀들의 옷을 디자인했다. 잘 나가던 그는 어느 날 자취를 감췄다. 잠수의 원인은 사업실패. 엄마가 힘겹게 번 돈 다 날린 게 미안하다는, 그래서 엄마 얼굴 못 보겠다면서 집 나간 삼촌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즉 래퍼의 할머니가 쓰러져 누우신 뒤에도.

집나간 삼촌을 그리는 래퍼의 심정은 복작복작하다. 단순히 그리운 것을 넘어 차라리 없어진 게 고맙다('감감무소식 삼촌이 고맙긴 해 이렇게라도 인생에 도움을 주네')는 표현과 더불어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지('혹시나 TV속에 나를 봤다면 기억이나 했을까 궁금해')의 여부 등.

신보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인 '정진철'은 오로지 헤어진 혈육에 대한 그리움의 곡만은 아니다. 다만 이 곡은 래퍼의 유년시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그가 알을 깨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머니가] 퇴원 후 우리 방은 병실이 됐고 / 날마다 똥오줌 치우기 싫어 집에 가기 싫어했지'라는 가사가 특히 그렇다.

창작자는 필연적으로 자전적인 얘기를 한 번은 하게 된다. 그런데 소설가는 그것을 주로 1집에 하고, 래퍼는 거의 안한다. 왜 그럴까? 내가 더 쎄, 아냐, 내가 더 쎄,를 외치기 바쁜 이 세대의 힙합씬에서는 조용히 자기 얘기를 해봤자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일지도. 

그런데 사이먼 도미닉, 서른 다섯의 나이에 삶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 아닐지라도 래퍼 본인과 팬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나를 이루는 코어를 재발견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역할일지니.

*앨범 발매 후 얼마 가지 않아 래퍼는 삼촌 정진철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5. 씻겨줘
해시태그로 짧게 가 본다. #어리광 #쓸쓸함 #지쳤어.



6. 데몰리션 맨 (Feat. 김종서)
6번 트랙은 그야말로 래퍼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다. 일단 제목부터가 그렇다. 정기석은 그의 예명이 영화 <데몰리션 맨>의 사이먼에서 왔음을 밝힌 바 있다. 사이먼 도미닉이란 아이덴티티가 탄생한 계기가 되어준 영화 제목을 타이틀로 쓰다니,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다. 짐작건대 그는 '언젠가 데몰리션 맨이란 곡을 꼭 써야지'라고 오래 전에 마음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그것을 쓸 시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과장하면, 이 트랙이 래퍼 사이먼 도미닉이 음악생활을 하며 발표할 노래 중에 가중 중요하다고도 말해 볼 수 있다는 것.

'언젠가 이 고통은 쓸만할 거야'라고 가살 적어놨지


첫 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원래 자신의 고통을 재료로 삼곤 하므로, 그가 자신의 고통을 재료 삼아 보관해두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고통, 오래 묵었던 모양이다. '차들이 쌩 달리는 도로에 몸을 던지고 싶었던 적 많아'에서 오래된 스트레스와 우울이 읽힌다. 그 외의 가사들도 대부분 자신의 고통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얼핏 병이 깊어 보인다. 듣는 팬들은 꽤나 걱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을 다물어버리는 순간 마음의 병은 악성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팬들이여, 너무 걱정 마시라. 사이먼 도미닉은 '재미'는 잃었을지언정 '분노'는 아직 다 잃지 않았다. 그가 강렬하게 외치는 '아 X나 힘드네 X발'이란 구간을 들어보라. 분노 에너지는 싸우기 위해서 존재한다. 사이먼 도미닉은 그 분노로 우울을 이겨내고 돌아올 것이다. 제목인 데몰리션맨의 데몰리션(파괴)은 자기 파괴가 아닌 우울의 파괴라고 믿자. 껍질의 파괴라고 믿자.

타이틀 곡인 '데몰리션 맨'은 사이먼 도미닉판 '데미안'(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8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진, 알이 부서지는 소리다. 알을 깨고 날아간 래퍼가 어디로 가 닿을지, 그것은 래퍼가 직접 보여줄 거다. 필자가 기다려 마지 않을 다음 앨범을 통해.

리뷰를 마치며 : I am your roommate
*7~8번 트랙의 리뷰는 적지 않는다. 일일이 적는 것도 매력 없잖아. 나머지는 다른 리스너들께서 완성해주시라.

*사이먼 도미닉은 이번 앨범의 커버로 어린 시절 사진들을 썼다. 이것은 내밀한 자기 얘기를 할 것이란 예고다. 이번 앨범이 '자화상'이 될 것이란 사전언급이다.
잠깐 미술계로 얘기를 돌려, 화가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피카소, 고흐, 달리, 에셔, 쉘레...)와 그리지 않는 화가다. (궁중에서 귀족들을 그렸던 수많은 화가들) 그리고 우리는 전자를 더 좋아한다. 아티스트가 자기 자신의 세계관을 깊게 탐구하고 나오면 반드시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것이고, 그 이야기들이 팬들에게 깊은 심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사이먼 도미닉은 비로소 자화상을 그렸다.

*그의 자화상을 보고 필자, 그의 룸메이트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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