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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새벽 Dec 14. 2018

당신이 지구를 방문하게 된다면

<뮤지컬 보디가드> 를 봐라



매일 지나다니는 곳에 공연장이 하나 있습니다. 1,100석 규모의 대극장을 가진 엘지아트센터입니다. 벌써 4년 째 그곳을 매일 지나다니고 있는데 한 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었네요. 공연관람을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제 (이 글은 2017년 3월 4일에 썼다) 아트센터를 지나다가 들려온 노래를 듣고 저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죠. 앤다아아이아~ 로 클라이막스를 시작하는 윗니 휴스턴의 명곡 <I WILL ALWAYS LOVE YOU>였습니다. 그런데 원곡이 아니라 뮤지컬 배우가 부르는 버전인 듯 하더군요. 고개를 돌려 보니 공연안내가 있었습니다. <뮤지컬 보디가드>, 당장 내일 모레가 폐막, 게다가 캐스트가 손승연과 박성웅이라니!
 
바로 매표소로 가서 티켓을 한 장 구매했습니다. 그것도 R석으로요. 다사다난했던 지난 2개월을 버텨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랄까요. 

15시 공연을 조금 앞두고, 드디어 처음 아트센터에 입장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저는 엘지아트센터를 많이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내방송이 어찌나 재치있는지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웃기는 또 처음이네요. 마지막 멘트는 아직도 머리에 맴돕니다. ‘토요일인데 광화문 안가고 다들 여기 오셨네요. 자, 그럼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공연을 시작해볼까요! ‘
 
공연이 시작되자 손승연이 등장했습니다. 푹푹찌는 여름날 머리위로 찬물 한 말을 들이 붓는 것 같이 시원한 고음을 가진 가수라는 것은 알았는데, 막상 그녀의 라이브를 접하니 아, 너무 준비도 없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클리넥스를 한 2통은 가져왔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훌륭한 예술을 마주치면 곧잘 울어버립니다. 피카소의 전시에 갔을 때는 입구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져 두 시간 동안 벤치에서 운 적도 있었죠. 주변에서는 감수성이 너무도 풍부한 사람 정도로 해석하는 듯 한데 저는 강렬한 스탕달 신드롬을 겪는 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손승연이 무대에서 춤을 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눈물이 나더라고요. 밝고 쾌활한 노래임에 불구하고 말입니다. 너무 잘해서요너무너무 잘해서요
 
<뮤지컬 보디가드>는 이미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세계적인 가수 레이첼(손승연)이 괴한의 스토킹을 느껴 새로운 보디가드(박성웅)를 고용하면서 벌어지는 드라마입니다. <뮤지컬 보디가드는>거의 레이첼이 끌어가는 극인데 사실상 레이첼의 노래가 전부인 공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습니다. 그런데 그 손승연이 하는 레이첼이라니, 손승연의 <뮤지컬 보디가드>라니요.
 
그녀가 무대에서 몇 곡의 노래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딱 정확히 그만큼 울었습니다. 그녀가 겨울산속 입김처럼 첫음을 뱉고 나서, 곧 바이브레이션이 시작되면 제 몸도 들썩들썩하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들어도 백퍼센트의 컨디션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을 황홀경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손승연의 독보적인 카리스마 외에도 공연은 전체적으로 웰메이드 작품이었습니다. 연출면에서는 공간을 분할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식이나 녹화된 영상을 쏘면서 영상예술과 무대예술의 퓨전을 해내는 것도 눈여겨볼 만했습니다. 그리고 사소한 거지만 저는 창문밖에서 햇살이 들어오는 것처럼 만든 조명연출이 참 좋더군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같은 손승연은 연기도 앙증 맞았습니다. 위기의 신에서 나오는 격한 감정도 좋았고 애교있는 모습도 사랑스러웠고요. 일단 무슨 대사를 해도 목소리가 황홀하니 귀가 호강을 한다는 기분이었죠.
 
공연이 끝나고 프랭크 역의 박성웅 배우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레이첼 손승연이 방금 마지막 공연이었다면서 박수를 보내 줄 것을 청하더라고요. 이미 모든 관객이 그녀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93년 생의 이 작고 어린 여자 아이에게지난 12월부터 장기간 무대에 서면서 이미 체력이 전부 소진되어 어제는 응급실오늘은 수액을 맞고 무대에 섰다는 이 신인 배우를 위해휘트니 휴스턴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는그리고 오늘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통해 천명의 관중에게 행복한 눈물을 선사한 그녀에게요
 
처음해보는 뮤지컬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헤어지기 싫다며 울음을 터뜨린 그녀는 영락없는 이십대 소녀였습니다. 그녀가 울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더 큰 환호를 보냈습니다.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기립하여 박수를 쳐본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네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 뿐입니다.
 
<뮤지컬 보디가드>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어 즐거움이 더합니다. 넘버들은 대부분 한국말로 개사되었습니다. 원곡 팬들을 위해 후렴구 정도는 원곡 그대로 두었지만요. 그런데 공연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마지막곡 <I WILL ALWAYS LOVE YOU>만큼은 전부 개사 없이 영어로 불렸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에 대한 오마쥬일까요. 마치 연출자가 이 곡만큼은 원곡으로 듣는게 좋으시죠?’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연출자와 관객이 텔레파시를 경험하게 되는 것, 그것이 예술의 놀라운 점 아닐까요.
 
제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책, <외계인의 지구관찰일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구인들은 종종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서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는데 어찌나 흥겹게들 하는지 공연을 하는 쪽도 보는 쪽도 모두 행복한 웃음을 지우지 못한다. 그들은 그것을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우리 mag0915SY행성 주민들도 지구를 방문하게 되면 한 번쯤 뮤지컬을 봐볼 것을 권장한다. 물론 지구인들에게 발각되면 곤란하니 투명슈트를 입고 말이다. 투명슈트를 써서라도 들어볼만큼, 그들의 노래는 감동적이다.
 
다만 너무 감동한 나머지 눈물이라도 흘리게 되면 투명슈트가 오작동하여 지구인들에게 발각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 오늘 우리 11명의 탐사대는 서울에서 어떤 공연을 보다가 전원 눈물바다가 되어 한순간 전부 투명이 풀려버리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상태였기 때문에 지구인들에게 발각되는 사고는 면했지만 탐사대장으로서 정말 식겁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때로 그런 가수들을 만나게 되니 뮤지컬을 볼 때는 누가 노래를 하느냐를 잘 살피라. 오늘 우리를 전부 위기로 몰아넣을 뻔했던 지구인은 손승연이라고 한다. 다음 탐사대는 그녀의 공연을 피하라…’


사진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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