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전새벽 Dec 14. 2018

그곳에는 선베드가 두 개 있다

윤종신의 '수목원에서'와 안소현의 '식물원'




노래를 하나 추천받았다. 윤종신 아저씨의 「수목원에서」다. (같은 1969년 생이라도 디제이 쿠는 형이라고, 윤종신은 아저씨라고 부르게 된다) 그나저나 '가든'도 아니고 '프로방스'도 아니고 '수목원'에서라니, 윤종신답다. 원색적이고 정직하다. 어설픈 외래어로 억지스러운 세련됨을 끌어내려하지 않는다. 그 수목원에 왜 갔는지, 가사를 조금 읊어본다.

수다 떠는 아줌마들처럼 웃는 새들과
누굴 애타게 찾는 것처럼 
울어대는 벌레들 

여전해요 그대와 거닐었던 그 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추억의 숲 속길 

나뭇가지 사이 숨어든 따스한 햇살
너무 푸르름이 뿜어내는 
아찔한 산뜻함



음, 알았다. 뻔한 이유였다. '그대와 거닐었던 그 날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노랫말에서 드러난다. '그대'와 같이 왔던 곳이라는 걸. 하지만 이번엔 혼자왔구나. 이제 곧 절규가 시작되려나. 흑흑, 잘못했어요, 돌아와요, 라는.

그런데 수목원을 묘사하는 이 남자의 언어가 남다르다. '수다 떠는 아줌마들'처럼이라니, 이런 가사는 윤종신 아니면 못 쓸 거란 생각이 든다. 

'그대'없이 혼자 온 여전한 수목원의 푸르름은 '아찔'하다. 그것이 아찔한 이유는 화자의 이별에도 불구하고 수목이 여전히 푸르러서, 텅 빈 화자의 가슴과는 상반되게 생명력 충만한 푸르름이 아이러니해서, 그것이 시적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여전해요 그대와 행복했던 그 날 
그대로의 향기를 간직한 채로
추억 속의 길은 나를 인도하네 

나 괜찮아요 여기 그대 없어도 
혼자 걷는 이 기분 아주 그만인걸
늘 그대 인생 
푸른 날만 있도록 빌어줄게
나 정말 편한 맘으로 찾아온
수목원에서



기억은 다양한 매체에 저장된다. 그것은 음악에 저장이 되기도 하고, 후각에 저장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후각은 감각 중에 유일하게 뇌와 직결되는 감각이다. 냄새는 뇌리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수목원의 향기가 다시 '그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을 알면서 왜 왔을까. '그대 없어도' '괜찮'은 상태면서. 혼자 걷는 기분이 '아주 그만'이면서. (기분이 아주 그만이라는 가사도 윤종신이 아니면 쓸 수 없을거라고 확신한다)

청자는 안다. 괜찮지 않다는 걸. 하지만 노래는 활기차다.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가사도, 락 발라드 풍을 자아내는 스트레이트 베이스의 정직한 걸음과 그 걸음 끝에 울리는 E플랫의 힘찬 마무리도 전부 활기차다. 그래서 더 슬프다, 이 노래. 괜찮다는 말을 이토록 힘껏하는 사람 중에 진짜 괜찮은 사람이 어디 있나. '편한 맘으로 찾아온' 건 뻔한 거짓말이다. 마음을 정반대로 말하는 부조리의 슬픔은 오래된 장치지만, 여전히 먹힌다. 덩달아 내 가슴도 먹먹하다.

한편 윤종신의 「수목원에서」가 마음에 들었다면 안소현 화백의 「식물원」을 눈여겨 볼 만하다. 그녀가 그려낸 식물원 풍경에서는 녹내음이 난다. 



안소현, '식물원' 2017. 캔버스에 아크릴, 260.6x193.3cm



안소현과의 인터뷰에서도 썼지만, 이 작품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 속에 선베드가 두 개라서다. 한 쪽 선베드에 누워 있는 나, 그렇다면 다른 한 쪽 선베드엔 누가 있었으면 하는가? 그림은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좋은 노래를 추천 받았다. 거기에 잘 어울리는 그림까지 하나 알고 있으니 오늘은 식물원 감상하며 수목원에서를 듣는다. 

여담으로, 해당곡이 발표된 건 9집 <그늘>을 통해서다. 하지만 2016년 <행보 2015> 콜렉션 앨범에 재수록됐다.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나는 이 '행보'라는 말이 '행복'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걸음의 목적지가 '행복'이라는 뜻이라고, 조용히 우겨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지구를 방문하게 된다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