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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새벽 Dec 14. 2018

비밀이 되어야만 했던 사랑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골수 신자였다가 게이인 형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신앙을 저버렸다는 사람의 얘기를 어디서 읽었더라.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태초에 남자가 빚어지고 여자가 뒤따라 빚어진 뒤 둘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는 지극히 신화적인 이야기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좀 달랐을까. 남성우월주의나 '이성애 표준론' 같은 게 없었을까.

어렸을 적, 동성애자들의 사랑도 서로를 만지고 끌어안고 입맞추고 싶어하는 욕망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그들의 육체적 결합이 생명의 잉태라는 어떠한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그 눈물 겨운 결합행위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하면서. 

하지만 이성애자들의 사랑이라고해서 뭐 큰 의미를 남긴다던가. 나는 그만 이성애를 옹호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런 생각들을 했다. 몽환적인 음악과 서정성 짙은 화면들이 황홀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1983년 이탈리아 남부의 어딘가, 17세 소년 엘리오는 가족들과 여름을 만끽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그랬듯, 엘리오의 집에 식객이 하나 도착한다. 고고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공부하는 미국인 청년 올리버가 바로 그 주인공. 올리버는 여름 동안 엘리오의 집에 머물며 연구와 집필과 휴식을 전부 해낼 예정이다. 똑똑하고 잘생기고 운동 잘하는 엄친아의 등장으로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몇 사람은 핸섬한 그와의 짜릿한 '서머러브'를 기대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 중 하나, 엘리오다.

햇빛과 놀 것과 먹을 것, 온통 모자람이 없는 마을. 그곳에도 없는 게 있었으니 하나는 '웃도리'요 다른 하나는 엘리오가 속내를 털어 놓을 사람이다. 길고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에 온몸에 햇빛을 저장해두려는 심산인지 다들 상의를 탈의한 채 생활하고 있다. 한편 낯선 청년을 향한 연정을 품은 엘리오는 말은 못하고 적기만 한다. 낙서장에, 악보에, 사랑을, 비밀을. 비밀이 되어야만 하는 자신의 사랑을.

엘리오는 과연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이 짧은 여름과 이 짧은 청춘이 다 지나가기 전에 그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은 지적이고 감수성이 넘치고, 그리고 매끈한 다리를 가졌다.



본 작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동성애 코드는 완성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엘리오가 소녀였거나 올리버가 '올리브'였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영화일 것이다. 다만 감춰야하는 사랑이었으므로 발랄함은 죽고 간절함이 살았다. 그 간절함은 숙연하기까지하다. 귀족과 노비의 그것보다, 근친 간의 그것보다, 원수집안 끼리의 그것보다 더 그렇다. 왜? 제일 뭇매를 많이 맞는 터부라서, 제일 서러워서.

관객이 동성애 혐오자가 아닌 이상,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치유적인 기능을 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후반부에 있다.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엘리오 아버지의 대사들이 그렇게 한다. 아버지의 덕담은 동성애자 아들뿐 아니라 모든 아픈 청춘들을 와락 끌어안는다. 십 대의 번민이 미성숙의 대가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것이라며 다독이는 아버지의 음색은 어찌 이리도 따스한가.


동성애자가 이성과의 사랑도 가능하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개체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나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의 주장이다. 다른 종(種)까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종은 분명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타인의 눈물이 나를 자꾸만 울게 하는 것이 설명이 안 된다. 타인의 웃음이 그러한 것도, 타인의 체온이 절박한 것도 모두 설명이 안 된다.

연결되어 있는데 어찌 분리되어 태어났을까. 각자의 드라마를 경험할 기회를 갖기 위해선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두 사람은 강렬하게 재결합을 원한다. 가장 내밀한 부분인 혀로 서로를 핥으며, 다시 하나되길 원한다. 그래서 이름도 통일해본다. 너를 내 이름으로 불러 너를 내게 흡수시켜보기도 하고 나를 네 이름으로 부르도록해 너에게 흡수 당해보기도 하며 둘은 간신히 포개지는가 싶더니, 여름은 끝난다.

가끔 텍스트보다 뛰어난 영상을 만나기도 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오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 편 들었다. 헤세의 성장소설 같기도, 사강의 연애소설 같기도 한 이야기, 풀내음과 축축한 타액과 살구향기 나는 이야기를. 다시 오지 않을 시간과 계절에 대한 이야기, 비밀이 되어야 했던 사랑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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