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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새벽 Feb 09. 2019

가장 든든한 한 끼

명절 지나고 첫 주말의 비빔밥

Q. 

가장 든든한 한 끼는?


A.

명절 쇠고 돌아와 회사에서 이틀 동안 또 밥을 벌었다. 토요일인 오늘은 아내와 산부인과에 가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병원 외에는 책을 조금 읽었고, 부엌을 정리했다.


낮잠을 자는 동안, 엄마가 치매에 걸리는 꿈을 꾸었다. 엄마는 묻는 말마다 동문서답이었다. 좌절스러운 마음에 "엄마, 내 말 들리냐고!" 라고 고함치면 "응, 냉장고에 순대 볶음 있다니까"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아빠는 더 이상 확인해볼 필요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꿈이었지만 목이 메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몹시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점검한다. 설에 양가에서 싸주신 반찬들이 한가득이다. 오늘 손이 가는 건 갈비찜이나 게장보다 나물들이다.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가 각기 다른 식감과 색을 가지고 무쳐져 있다. 그것들을 팬에 데운 뒤 더운밥 위로 올린다. 나물을 무칠 적에 썼으니 참기름은 따로 붓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달걀을 한 장 부치고 통깨를 뿌린 뒤 고추장을 한 숟갈 푸면 식사 준비 끝이다.

고추장을 넣고 밥을 비벼 한 입 욱여 넣는다. 도라지는 씹는 맛이 좋아서인지 씹을 수록 힘이 나는 것 같고, 고사리는 육고기 같은 면이 있어 든든하다. 시금치는 뽀빠이가 이미 검증한 영양만점 채소라 더 말할 것도 없다.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한그릇 뚝딱 비워내면 그 포만감, 오래 간다.


나물은 독특한 음식이다. 특히 신혼부부에게 있어, 나물은 본가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다. 신혼부부들이 등갈비김치찜이나 살치살 스테이크를 해먹는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나물을 무쳐 먹어봤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서른 무렵의 체력과 기운이라면 자극적인 재미도 있고 지방도 풍부한 음식이 더 당기는 게 당연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나물은 일년에 두 번, 대명절에만 먹는다. 정확히는 명절 연휴 끝나고, 첫 주말에 먹는다. 명절 당시에는 나물 말고도 먹을게 많아서다. 차례 마치고 떡국과 고기로 배를 채운 뒤, 엄마가 싸준 음식 중에는 항상 나물이 들려 있다. 우리 육식주의자들이 '풀떼기'라고 부르는 그것만 데워 먹기는 영 심심해, 고추장의 힘을 빌린다. 그래서 명절 끝나고 첫 주말 끼니는 자연스레 비빔밥이다. 그리고 비빔밥은 이렇게, 엄마 생각하면서 먹는 음식이다. 엄마를 생각하면서 먹는 음식, 그것만큼 든든하게 배가 차는 음식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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