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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새벽 May 01. 2019

당신의 상상력을 허용하는 곳

성수동 『제일』과 김주환의 이야기


아, 어벤져스도 봤고(세 번 울었다), 올 봄은 이제 뭐하면서 보내나. 뭐하긴 뭐해, 나가 놀아야지. 갈 곳은 참 많은데, 나는 요새 여기 좋아한다. 성동구 성수동. 한적하게 서울숲 산책하다 보면 서울도 살만한 곳이구나 싶은 생각 들고, 공원 빠져나와 걷다 보면 아, 여기가 지드래곤이 산다는 거기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고, 조금 더 걷다보면 이 인터뷰 시리즈의 제 1번 주인공 서정일 대표의 탭하우스 숲도 나온다. 그밖에도 분위기 좋은 카페, 한번쯤 가보고 싶은 음식점이 꽤 많이 생겼다. 이렇게 갈 곳 많은 성수동에 커피계의 애플이라고 불리는 블루보틀이 들어온다고 하니, 성수동 상한가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최근, 그 성수동을 돌아다니다가 매혹적인 가게를 찾았다. '제일'이라고, 말하자면 술집인데, 예사 술집이 아니다. 휴일 맞아 성수동 나들이 가고 싶은 분들에게 권한다. 들려서 제주감귤로 만든 와인에 지리산 흑돼지 구이도 맛보시고, 그곳의 정서에도 흠뻑 빠져 보시라. 어떤 사람이 운영하는 곳인지 궁금하면, 아래 인터뷰도 읽어보시고.


(2019.04.20)





一. 第一


성수동 ‘제일’을 경험하는 순서는 이렇다. ①서울메트로 2호선 뚝섬역에 내린다. ②7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선다. ③조금 헤맨다. ④여기 맞나…? 싶은 곳에서 한발짝 더 가서 간판을 확인한다. 일반음식점이라는 설명도, ‘흑돼지 맛집!’ 이란 홍보문구도, ‘다양한 전통주 보유!’라는 소개도 없이 덜렁 ‘제일’이란 두 글자에 전화번호 쓰인 간판을 보고 아, 지금 뭔가 범상치 않은 곳에 왔구나, 라고 생각한다.


놀라긴 이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약 일곱 번쯤 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테이블의 배치다. 정면에 주방이 있고 오른쪽으로 약 스무 명 가량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 길게 늘어서 있다. 왼쪽은 빈 공간이다.


아니, 자세히 보면 무언가 있긴 있다. 저게 뭐지? 싶은 것, 저게 뭐지?를 열 번 되뇌어도 잘 알 수 없는 것,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것, 가까이 가서 봐도 뭔지 알 수 없는 것, 그런 것이 그 거대한 공간에 놓여 있다.

세탁소 아니다.


김주환 | 원래는 거기 스피커가 놓여 있었어요. 최초에 가게를 디자인했던 형이 낸 의견이었죠. 저는 스피커를 잘 모르는데, 아무튼 엄청 비싼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넓은 공간에 스피커 하나 덜렁 있으니 디자인적으로도 이목을 끌고. 거기에 매킨토시를 연결해서, 신중하게 고른 음악을 틀었죠. 스피커가 워낙 좋다보니 이 공간이 음악으로 꽉 차더라고요. 그런데 찾아주는 손님들이 전부 그것만 관찰하는 거예요. 마치 이 집은 스피커다, 이 집 와서 스피커 보면 다 본 거다, 라는 식으로. 그러면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오브제’를 놓기 시작했어요. 여러가지 책을 참고했죠. 동양철학을 비롯해서.


성수동 ‘제일’의 주인장 김주환이 오브제라고 부르는 그것들은 현대미술 전시관에서 본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 오브제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을 하게 만든다. 저게 뭐지, 저게 대체 왜 저기에 있지. 저걸 저기에 놓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제일’의 투어를 조금 더 해보자. ‘진짜 특이하다’를 연신 남발하고 있으면 조금 뒤 누군가 메뉴판을 갖다 준다. 한지로 만든 이 메뉴판에는 지리산 흑돼지나 제주 고등어 구이 같이 메뉴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도는 음식들이 많다. 메뉴를 고르고 습관대로 소주를 시키려고 하는데, 술은 따로 설명을 해주겠단다.

가끔은 '카스처럼'에서 벗어나 보자.


二.反짠짜라짜

김주환이 이끄는 대로 주방 옆 냉장고에 따라가봤는데, 온통 어둡다. 천장 조명도 없고 무엇보다 특이한 건, 냉장고의 조명조차 꺼져 있다. 당황하는 사이 김주환이 초를 꺼낸다. 그는 촛불을 들고, 신비로운 옛날 얘기하는 사람의 톤으로 하나씩 술 얘기를 들려준다.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은 없다. 대신 제주감귤로 빚은 와인, 쌀로 만든 증류주 같은 것들이 있다. 다 처음보는 것이고, 다 마셔보고 싶다. 흔들거리는 불빛 따라 아름다운 술병들을 눈으로 훑고 있자니, 괴짜 중에서도 ‘상괴짜’가 운영하는 술 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김주환 | 냉장고 불을 켜두었더니 손님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술만 보시더라고요. 저는 하나씩 설명을 해드리고 싶은데. 그래서 불을 끄고 촛불로만 안내를 해드렸더니, 다들 촛불을 따라오시더라고요.


술을 고르고 자리로 와, 일행과 대화를 나눈다. ’제일’의 음식은 빨리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같이 온 이와 더 대화하게 된다. 옆자리와 바짝 붙어 있다 보니 옆 팀의 음식이 나오면 그것도 자세히 보게 된다. 음식을 손님에게 낼 때마다 김주환이 곁들이는 차분하고 친절한 설명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오면 저거 먹어보자, 하고 일행과 약속하게 된다.


‘제일’은 어둡고 조용하다. 술집 특유의 소음, 그러니까 저기요! 라든가, 쏘주 한 병 더 주세요! 라든가,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라든가 하는 소리 같은 게 없다. ‘시끌시끌’이라기 보다는 ‘속닥속닥’, ‘후다다닥’이라기 보다는 ‘살금살금’이란 분위기다. 속도와 소음의 세계에 익숙한 내게는 조금 낯설다. 그리고, 반갑다.


중간에 화장실 갈 일도 있을 것이다. 이곳 화장실에서는 물을 세게 틀 수가 없다. 수도꼭지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용자가 알아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신 분은 직접 가보시라. 아무튼 모든 면에서 절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체 여기를 운영하는 김주환은 어떤 사람일까.


김주환 | ‘빨리빨리’라는 게 싫어요. 손님이 저기요! 하고 부르면 네! 하고 달려가서 부산스럽게 주문하고 받고, 빨리빨리 갖다 주고...이렇게 하기가 싫었어요. 하루는 막 보채는 손님을 보면서, 저 사람들도 일본에 가면 안 그러겠지? 조용히 주문하고 얌전히 기다리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 일본을 예로 든 건, 일본에 갔을 때 그런 면에 많이 놀랐거든요. 손님들이 다 점잖고, 직원도 서두르지 않고… 그래서 생각했어요. 왜 여기선 그게 안 되지…?


전새벽 | 메뉴에서 소주를 빼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김주환 | 맞아요.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니까 부어라 마셔라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는 테이블이 적으니까 가격을 좀 더 받아야 운영이 되는데, 다른 데처럼 그냥 4천 원을 받았어요.


전새벽 | 가게에 따라서 5천 원, 심지어 8천 원도 받잖아요.


김주환 | 제가 술을 잘 안 하니까 트렌드를 몰랐던 거죠. 그래서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도 났어요. 저기 ‘제일’이라는데 가보면 테이블도 몇 개 안 갖다 놓고, 안주가 비싼 것도 아닌데 소주는 또 싸고. 그래서 건물주가 취미로 하는 술집이다, 부잣집 아들이 뭔가 실험을 하는 거다, 이상한 소문들이 났었죠.


전새벽 | 소줏집은 아무래도 분위기가 어수선하죠?


김주환 | 소주를 드신다고 다 똑같진 않죠. 점잖은 분이 있는가 하면 짠짜라짜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전새벽 | ‘짠짜라짜’가 훨씬 많잖아요.


김주환 | 진짜 많더라고요. 소주는 싸게 마실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젊은 손님들이 많이 왔어요. 그런데 혈기왕성한 친구들이다 보니 자기네끼리 말 끝마다 시발, 존나, 이러면서 마시는 거예요. 심지어 헌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물론 소주 마시고 시끌시끌하게 얘기하고, 헌팅도 하고, 그런 술집도 있는 거지만 제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내쫓았어요. 그러다 보니 손님하고 시비가 붙은 적도 있고, 인스타그램에서 욕도 먹고… 그래도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맞춰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과감히 소주를 빼버렸죠.


전새벽 | 소주 빼셨으니까 객단가도 조금 올라갔겠군요?


김주환 | 확실히요.


전새벽 | 반발은 없었나요? ‘제일’을 맘 편히 소주 마시는 곳으로 여겼던 손님들도 계실 텐데.


김주환 | 있었죠. 여러가지 생각해서 소주는 뺐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찾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전새벽 | 결정에는 후회 없으시죠?


김주환 | 네. 소주를 뺀 건 단순히 손님 풀(pool)을 조정하거나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니까요. 가게에 소주가 있다, 없다 만으로도 가게 이미지가 다르잖아요. 물론 소주는 대중적이어서 좋지만, 너무 평범하기도 하고요. 근데 사실 술 파는 입장에서 소주를 뺀다는 게 얼마나 어려워요. 열에 아홉은 소주 찾으시는데… 그래서 단기간에 결심이 안 섰어요. 대신, 우리 음식과 페어링이 잘 되는 전통주를 오래 찾아다녔어요. 그것들이 모이니까, 그제서야 소주를 뺄 결심이 서더라고요.


전새벽 | 아까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누군가요?


김주환 | 저와 동생이요. 대학 후밴데, 제가 같이 하자고 제안했어요. 요리를 주로 하고 있죠. 저는 음식이 어땠으면 좋겠다, 반면에 이러면 싫을 것 같다고 추상적으로만 얘기하거든요. 예를 들어 소스는 매콤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먹고 나서 ‘아, 맵다!’ 면 싫어. 먹고 나서 ‘어, 이게 뭐지?’ 여야 돼. 물음표여야 돼. 이런 식이에요. 그러면 동생은 며칠을 그 연구만 하는 거죠.


전새벽 | 동업자분이 고생이 많으시겠군요.


김주환 | 아, 동업자는 아니에요. 굳이 따지면 직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직원이나 후배라기보다 동반자라는 말을 써요. 제가 너무 이렇게 동생에게 애정을 드러내니까, 어떤 분은 게이인가 오해를 하시더라고요? 그건 아닌데… 아무튼 제가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잘 따라와준 친구예요.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어느날, 뭔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거물 같은 사람이 와서 김주환에게 대뜸 묻더란다. 사장님! 사장님은 일본 쪽이에요? 아님 다른 동양철학이에요?


三. 演技人生


김주환은 원래 연기를 했다. 연극영화과를 나온 그는 이십 대 후반에 연극무대와 뮤지컬 극장에 섰다. 그는 연기를 그만 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한 과정일까.


김주환 | 단역 시절, 작품 한 회에 3만 원을 받았어요. 주 3회 공연하면 일주일에 9만 원, 한달에 36만 원이에요. 생활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 시간에 차라리 딴 짓을 하기로 했어요. 매일 스타벅스에 가서 종일 죽치고 앉아 있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다른 건 못하고,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종일 거기서 시간을 보낸 거예요. 뮤지컬 악보도 연구하고, 연기영상 보면서 구상도 하고, 예능도 보고… 매일매일 죽치고 앉아 있으니 한번은 스타벅스 직원이 쭈뼛쭈뼛하면서 와서 물어보더라고요. 실례지만 뭐하는 분이냐고…


전새벽 |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김주환 | 연기자 준비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다음부터 사이즈 업그레이드를 해주시더라고요.


전새벽 | 간절한 꿈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응원하고 싶어지잖아요. 예능은 왜 보셨나요? 그것도 일종의 공부로 하신 건가요?


김주환 | 아니요. 웃을 일이 없어서 봤어요.


전새벽 | 노래와 연기를 다 하셨는데, 둘 중에 더 욕심내신 분야는 뭐였나요?


김주환 | 원래는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누가 소개해줘서 뮤지컬 오디션을 봤죠. 근데 긴장을 많이 해서 완전 망쳤어요. 노래를 전부 플랫으로 불렀거든요. 근데 붙은 거예요.


전새벽 | 왜 합격이 됐는지, 나중에 얘기를 들으셨나요?


김주환 | 쇼뮤지컬인 <캐치 미 이프 유 캔>땐데요, 쇼뮤지컬은 배우들이 키도 크고 멋지거든요. 아무래도 화려한 연출이 주요 볼거리니까요. 그때 오디션 끝나고 관계자가 말씀하시길, 저는 원래 키 때문에 떨어지는 거였대요. 그런데 연기가 돼서 붙여 주신 거라고… 그런 식으로 고마운 기회들을 얻어서 여러 작품을 했어요.


전새벽 | 어떤 작품들이 있었죠?


김주환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에비타>, 방금 말씀 드린 <캐치 미 이프 유 캔>하고, <스칼렛 핌퍼넬>요. 전부 앙상블로 참여했죠.


전새벽 | 내친김에 참여하신 연극 작품들도 좀 여쭤 볼까요? 저는 문외한이지만, 독자 중에 연극 보신 분들이라면 반갑우실 것 같은데.


김주환 | <헨리 6세 - 1부>하고 <됴화만발>을 했었어요. 특히 <됴화만발>은 많이 인정받는 작품이다 보니 거기 출연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전새벽 | 뮤지컬을 더 많이 하셨네요.


김주환 | 네. 그런데 뮤지컬은 방식이 좀 달라요. 동작도 훨씬 크게, 목소리도 과장되게 하잖아요. 저는 그게 조금 안 맞더라고요.


전새벽 | 그럼 연기는 무대 위에서 보다는 카메라 앞에서 하시는 게…?


김주환 | 맞아요. 영화가 하고 싶어요. 그래서 영화사에 프로필을 쫙 돌리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연락 안 오고…(웃음) 그러다 돈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전새벽 | 어떤 아르바이트를 주로 하셨나요?


김주환 | 되는대로 다 했어요. 택배알바, 행사 알바… 그러다가 맥줏집 알바를 시작했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때 만난 배우 형님이 가게를 하고 계셨거든요. 단순 알바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제 가게처럼 일했죠. 그러다가 내 가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전새벽 | 다시 연기를 하게 되시면, 지금 이 생활이 그리우시지는 않을까요?


김주환 | 같이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전새벽 | 큰 질문 하나 해볼게요. 연기는 왜 시작하셨나요?


김주환 | 이 얘기 어느 오디션장에서 했다가 욕먹었는데…중 2때부터 연기학원을 다녔어요. 왜 그랬냐면, 그때 어느 드라마에서 류시원하고 김희선이 키스하는 장면을 봤거든요. 어린 마음에, 나도 김희선하고 키스신이 너무 해보고 싶은 거야. 그래서 연기자가 되기로 했어요.


전새벽 | 이거 그대로 써도 될까요? (웃음)


김주환 | 네. 저는 지금도 그분과 키스신이 해보고 싶어요.


전새벽 | 지금은 연기 연습을 어떻게 하고 계세요?


김주환 | 주호성 선생님이라고 계시잖아요.


전새벽 | 배우 장나라의 아버지이신…?


김주환 | 맞아요. 그분께서 지도하시는 그룹 연기 스터디에 매주 나가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사비 털어서 밥사주고 하세요. 무척 고마운 분이죠. 빨리 성공해서 보답하고 싶어요.


전새벽 | 배우 중에 롤모델이라고 할 분이 계실까요?


김주환 | 롤모델이라기 보다, 하나씩 닮고 싶은 게 있긴 해요. 조승우의 웃음, 박해일의 미묘한 눈, 하정우의 자연스러움 같은 것들이요. 그 외에 하고 싶은 건 김희선과의 키스신…


전새벽 | 연기도 해야지, 가게도 꾸려야지… 그런데 정작 시간 가장 많이 쏟으시는 건 축구 같아요 (웃음). 오늘도 축구하고 오셨다고 했죠?


김주환 | 제가 술도 잘 못하고, 보시다시피 담배도 안 피우잖아요. 전에는 예능 보는 게 취미였는데 가만히 앉아서 영상 보고 있으면 자꾸 가게 일 생각만 나고… 그래서 시간을 쪼개서 축구해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공 차러 가는 거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가게를 주 2일이나 쉬었는데요, 전부 축구 하려고 쉬었던 거예요(웃음).


전새벽 | 축구를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김주환 | 안 하면 안될 것 같아서 해요. 그걸로 다 풀어요. 저는 잘 살고 싶다, 라고 할 때 ‘잘 산다’의 기준이… 나와 내 가족이 여유 있고, 너무 바쁘지 않고, 축구 할 시간 있고… 그런 삶이에요. 그래서 일을 많이 안 벌려요.


주호성과 김주환.


四. 同伴者


전새벽 | 가게 ‘컨셉’이 뭐냐고 물어보는 걸 싫어한다고 하셨죠?


김주환 | 어떤 컨셉이다, 라고 말해버리면 그것만 보시는 것 같아서요.


전새벽 | 단어에 민감하신 편인가봐요.


김주환 | 연기할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사전에 상의도 없이 지방스케쥴 있다면서 2달간 시간 빼놔, 이러면 반감이 생기더라고요.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톤에 반감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러고보니 단어 보다는 어투에 민감한 것 같네요. 무례한 어투로 말하는 손님하고 싸운 적도 있어요. 아, 동생 책임지려면 더 잘 참아야 되는데…


토요일 낮 1시에 가게에서 만난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오픈 준비 시간이었고, 인터뷰 기록을 위해 가져간 노트는 마지막 페이지만 남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신지헌이 등장했다. 김주환이 ‘책임져야 하는 동생’이라며 숱하게 언급했던, 제일의 음식을 책임지고 있는 주인공이다. 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김주환하고 일하는 게 어떤 지, 제일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것인지.


전새벽 | 원래는 연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신지헌 | 연기를 하고 싶어서 연영과에 들어갔죠. 그러다 무대 제작 쪽에 매력을 느껴서 그쪽 일을 꽤 했어요.


전새벽 | 김주환 님이 쏟으시는 애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아요. 독립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신지헌 | 아직 그런 생각은 없어요. 지금은 형하고 동반자예요. 같이 구상해 나가고 있어요. 요새 구상하는 건 발효음식이에요. 가게와는 상관없이 제품으로 팔 계획으로, 맛간장이나 된장을 직접 개발하고 싶은 생각이에요.


전새벽 | 주로 주방에 계시니까 손님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못하시잖아요? 아쉽지는 않으신가요?


신지헌 | 형이 다 얘길 해줘요. 그리고 가끔 홀에 있으면서 직접 듣기도 하고요.


전새벽 | ‘제일’의 일원으로서, 가장 큰 자부심은 뭔가요?


신지헌 | 신선한 재료. 매일 시장에서 직접 사와요. 자부심이라기 보다, 그렇게 하는 게 당연히 맞다고 생각해요. 하루는 형이, 매일 나가는 거 너무 힘드니까 그냥 배달시키자고 한 적도 있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전새벽 | 묵묵하게 성실하신 모양이에요.


신지헌 | 제가 좀 고집이 있어요.


ㅇㅇ


전새벽 | 음식 얘기를 조금 해볼게요. 대표 메뉴는 흑돼지 구이죠? 정확히는 ‘경남함양군마천면천왕봉로흑돼지.’ 얼마 전에 놀러 왔다가 정말 맛있게 먹었었습니다.


신지헌 | 고기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전에는 흑돼지, 하면 제주도인 줄 알았죠. 그런데 누가 지리산 고기를 얘기해주더라고요. 농가를 소개받아서 바로 갔죠. 직접 먹어보니 이거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고기 파는 분이 얘기하시길, 여기는 품질이 항상 고르게 유지된다는 거예요. 메뉴맛이 변치 않는 건 중요하잖아요. 1년 반 째 쓰고 있는데, 확실히 맛이 안 변했어요.


전새벽 |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신지헌 | 대량생산을 하지 않는 농가거든요. 관리를 위해 소량으로만 키우세요. 그러다 보니, 삼겹살만 따로, 목살만 따로는 구매가 힘들어요. 그래서 저희도 돼지 한 마리 다 받아요.


전새벽 | 곁들여 나오는 채소도 색다르던데요.


신지헌 | 얼마 전에 오셨으면 세발 나물을 드셨을 거예요. 해풍을 맞아 크는 나물인데 아삭한 식감이 좋죠. 원래는 파를 썼는데, 중간에 형이랑 약초에 대해 공부를 좀 했어요. 세발 나물 다음에 5~6월에는 영양부추로 바꿀 예정이에요. 하우스 말고 노지에서 자란 것들로 알아봤고요. 채소 위에 뿌리는 소스에는 생파인애플 즙을 섞어요.


전새벽 | 얘기하다 보니 또 먹고 싶네요.


김주환과 신지헌.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왠지 행복해진다.


신지헌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김주환은 주방에서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기 인터뷰라고 욕심내지도 않고, 동생이 허튼 소리 않나 감시도 않고,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왜 ‘제일’이 줄 서서 기다리는 집이 됐는지를 알게 해준다. 떠나기 전,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전새벽 | 고집불통 사장님이네, 미니멀 컨셉이네, 라는 류의 반응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셨죠? 함부로 규정짓는 것 같고. 그럼 어떤 반응이 마음에 드세요?


김주환 | 최근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다셨어요. ‘한옥이 아니어도 한국 정서를 담아낼 수 있구나’라고.


‘제일’에는 분명 어떤 정서가 담겨 있다. 다만 필자에게는 그것이 오직 ‘한국적’인 것으로만 비치지는 않는다. 이곳을 경험한 사람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동양철학, 미니멀리즘, 힐링, 슬로우 같은 말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여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확실한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이 공간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오브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김주환의 존재, 그가 입고 있는 옷, 가게의 조도(照度), 음식과 나온 소스, 그 밖에도 참 여러가지들이 우리로 하여금 상상을 해보게 만든다. 이건 뭐지, 이건 왜 이렇지, 어떤 의미지… ‘제일’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바로 그 상상력이다. 주인이 일방적으로 ‘여긴 힐링 주점이에요,’ ‘여긴 슬로우 다이닝이에요’라고 강요하지 않고 텅 빈 공간을 내어주니, 손님이 거기에 개입하게 된다. 개입해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상상력이란 ‘대상을 그 현전 없이도 직관 속에서 표상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칸트의 말이다. 멋진 인생을 꾸려 나가고자 하는 개인에게는 꼭 필요한 힘일 것이다.


멋진 인생에는 그 밖에도 필요한 게 있다. 멋진 음식과 멋진 술이다. 그것들은 때로 풍미와 향취가 아닌 정서로 다가온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그런 정서를 만들어 나가는 청년들이 있다. 저녁 여섯 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만날 수 있다. 전화번호는, 방금 독자 여러분이 무심코 지나치신 사진에 써 있다.



정리/전새벽

사진/김주환 인스타그램(@ji____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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