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칼날의 선율, “새야 작은 새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꿈을 위한 싸움의 서사

by 정태영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극중극의 구조를 통해 인간의 꿈과 현실, 이상과 절망의 간극을 탐색하는 뮤지컬이다. 세르반테스가 종교재판소 감옥에 갇혀 자신의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죄수들에게 연극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이중의 시공간 안에서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다. 1965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었으며, 한국에서도 2005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2012년부터는 조승우, 홍광호, 류정한 등 한국 최고의 배우들이 돈키호테 역을 맡으며,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한 돈키호테의 여정은 한국 관객들의 심장을 뜨겁게 울려왔다. 그의 광기 어린 이상주의는, 차갑고 무미건조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인간 정신의 불씨를 확인시켜준다.

칼끝을 감춘 노래, "새야, 작은 새야"의 아이러니

그러나 《맨 오브 라만차》는 결코 아름답기만 한 꿈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중반부, 관객은 칼날보다 날카로운 순간과 직면하게 된다. "새야, 작은 새야(Little Bird, Little Bird)" 장면이다.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로 믿고 있지만 실은 주막의 하녀이자 거리의 여자인 알돈자. 그녀의 일상은 술 취한 기사들과 군인들에게 능욕당하는 존재다. 그녀를 조롱하고 농락하는 거친 사내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새야, 작은 새야"이다. 잔혹한 이중성이 이 장면의 핵심이다. 사내들은 알돈자를 희롱하고 유린하려는 추악한 의도로 뭉쳐있다. 그러나 그들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협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린아이들의 동요를 부르듯, 부드럽고 감미롭게 노래한다.


“새야, 작은 새야, 나무 위에 앉은, 새야 작은 새야, 노래 해 다오.”


그 음률은 맑고도 청아하다. 마치 어린 새를 손에 쥐고 있는 듯한 부드러움이다. 그러나 그 새는 도망갈 수 없다. 노래는 결국 새의 날개를 꺾고, 자유를 빼앗아버리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노래가 진행될수록 알돈자는 점점 무너지고, 관객은 절망 앞에 무력해진다. 사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이 절정으로 치닫는 그 순간...

아름다움이라는 칼집 속의 추악한 칼날

이 장면에서 "칼"은 명징하게 존재한다. 그것은 사내들의 손에 쥐어진 흉기가 아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칼이다. 부드러운 선율에 감싸진 이 노래는 관객의 감각을 마취시키고, 방심하게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노래는 칼끝이 되어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이것이 《맨 오브 라만차》가 만들어낸 '칼'이다. 꿈이라는 환상 속에서도, 인간은 쉽게 악의 칼날을 숨긴다. 그리고 관객은,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노래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짓밟고, 파괴하려는 의도를 어떻게 '아름다움'이라는 외피로 감쌀 수 있는가? 인간의 악의는 그렇게 세련되고 우아하다. 관객은 노래가 아름다워서 더 아프다. 새를 부르는 부드러운 손짓이 실은 새의 목을 비트는 동작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씁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맨 오브 라만차》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처럼 아름다운 추악함에 능욕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새야, 작은 새야"는 관객의 심장을 정통으로 꿰뚫는 칼날이다.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이 노래인가, 절규인가. 그리고 그 칼끝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 앞에서 번뜩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