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보며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작가였다. 그 이유는 오로지 글쓰기가 좋아서. 독서의 재미에 갑작스럽게 빠진 나는 글쓰기 실력이 월등하게 늘었고, 교내 글쓰기 대회는 내가 다 싹쓸이하곤 했었다. 창조적인 글쓰기 활동에 즐거움을 느낀 나는 그때부터 자의적으로 나의 장래희망을 ‘작가’로 선택했다.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과 열정은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나는 친구들의
‘나중에 작가 되면 연락해라!‘와 같은 농담과 함께 졸업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나의 작가를 향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나는 백일장 대회에 매년 참가해 수상을 하였고, 교내에서도 글쓰기 대회가 있으면 반드시 참가해 좋은 성적을 얻곤 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무조건 작가가 될 생각이었다. 세상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중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내 마음속에 큰 변화가 있었다. 작가라는 꿈을 점점 놓게 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작가는 불안정한 직업이라고 일침을 가하는 주변 사람들과 내 글쓰기 실력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꼈던 나의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 봐야 저 밖에는 훌륭한 글쓰기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할 테고, 그 사람들을 제쳐 작가가 된다 한들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찜찜한 마음을 뒤로한 채 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느덧 작가라는 꿈은 내 마음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고, 나는 뜬금없이 영어에 빠져 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느꼈던 ‘글‘에 대한 이끌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열정이 나를 영어에게로 이끌었다. 한동안은 영어에 미친 듯이 살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영어 한 과목만은 전교권을 찍어버리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장래희망을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나는 깊은 생각을 마친 후 결국 ’번역가‘로 정했다. 영어를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니까 번역가가 내 적성에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작가의 꿈을 포기한 데에서 나온 아쉬운 마음이 번역가라는 꿈에 투영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예전과 같은 비판을 맞이했다. ‘번역가 해서 돈은 잘 벌 수 있겠느냐’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의 마음은 굳건했다. 그렇게 다른 친구들이 모두 현실적인 생각을 하며 진로를 선택할 때, 나는 내 마음만을 따랐다. 나의 이런 마음을 사람들도 알았는지 점점 내 꿈에 대한 비판은 줄어들었고, 나는 내 꿈을 향해 더욱더 노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원하던 영어 관련 학과에 들어갔다. 여기서 영어를 마스터하고 실력 있는 번역가가 되는 게 내 생각이자 목표였다. 학기 초까지는 열정이 활활 타올랐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 열정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전과 같은 장애물에 봉착했다. 나는 또 다른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었다. 이번에는 남들의 압박보다는 나 스스로의 의구심이 컸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내가 너무 이상주의적인 건 아닌지. 차디찬 현실도 바라봐야 하는 건 아닐지. 그렇게 내 꿈은 또 희미해졌다.
난 정말 바보 같다. 나는 알면서도 왜 이런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선택했을까. 내 성격이 너무 이상주의적인 탓에 현실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나는 내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될 걸 알고 있더라도.
그렇다 해도 나는 아직 작가와 번역가의 꿈을 잊지 않았다. 가끔씩 옛날 꿈의 열망이 타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기쁨이 느껴진다. 하지만 항상 그 끝에는 비참함이 나를 맞이한다. 글을 쓸 때면 마치 내가 작가인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다 쓴 글을 읽어볼 때면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 글쓰기는 그저 하나의 취미로 남겨두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내가 번역한 결과물을 보면 나 스스로가 멋져 보이지만, 나보다 번역을 잘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는 사실은 날 주눅 들게 만든다.
항상 이런 순환의 반복이다. 나의 작은 성취에 기뻐하다가도 끝에는 비참함이 찾아온다. 사실 난 이미 문제점을 알고 있다. 남들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비판하는 습관, 그리고 완벽주의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문제를 알면서도 억지로 피하고 있었다. 왜냐면 피하는 게 맞서는 것보다 편하니까. 하지만 오늘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지금껏 나를 막고 있던 건 나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내 생각’이었다.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의 성향 때문에 난 여태껏 이렇게 산 것이다. 오직 즐거움만, 환희만 찾는 내가 문제였다. 계속 이렇게 산다면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라는 깨달음과 함께, 나는 새로 다짐했다.
앞으로는 고통과 환희의 춤을 함께 추기로.
고통을 즐기고, 그 과정에서 환희를 느낄 수 있도록.
나의 열정을 막는 대상이 나 자신이 되지 않도록.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오직 나에게 달려있다. 내 마음속 한편에 있던 꿈들이 되살아나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을지.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미래를 써내려 나가는 주체가 나 자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