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뮤직 Review 2018년 11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2018년 9월 9일 오후 4시 세종체임버홀
어린 아이가 가지는 첫 번째 꿈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바라보는 어른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아이는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먼저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이 어른됨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성장(成長)이라 불리는데, 이 과정에는 아이일 때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의 희로애락과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맺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겪어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성장통(痛)은 점차적으로 아이의 모습에 반영되어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나’만의 프리즘을 통해 고유한 빛깔로 반짝이게 된다.
피아니스트 권요안은 이러한 빛깔을 가진 연주자이다. 그는, 연주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차적 성장통을 오래 전에 겪었다. 테크닉의 완성을 위해 모든걸 쏟아 부었던 시간이 있었고 그에 걸 맞는 도전적인 곡들을 성공적으로 연주해내며 이미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연주를 기다렸던 일부 관객은 일차적 성장통의 결과가 아직도 무사히(?) 성공적으로 연장되고 있는지를 연주 내내 확인하고 싶어한다.
실제로 연주자가 겪어야 하는 통증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차례로 다가오지 않으며 조심스레 다가오지도 않는다. 오히려 동시다발적으로 생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일찍 나타나는 일차적 통증은 사라졌다고 느낀 이후에도 수시로 다시 나타나며, 때에 따라서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자가 겪고 있는 일차적 통증은 청중에게도 다른 통증에 비해 알아챔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더욱이 연주자가 겪고 있는 다른 성장통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없는 경우에는 작은 통증이라 할지라도 더 크고 두드러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8년 9월 9일 세종 체임버홀에서 열린 권요안의 피아노 리사이틀 ‘오랜 기다림’은 분명 일차적 통증보다 또 다른 성장의 모습이 두드러졌던 무대였다. 연주된 각각의 곡이 담아내고 있는 ‘기다림’의 미학은 연주자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빛깔 있는 연주를 위해서 마치 연주자 스스로가 오랫동안 감내해 왔음을 알리는 듯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권요안은 J. S. 바흐(1685-1750), 베토벤(1770-1827), 쇼팽(1810-1849)이라는 소위 피아노 리사이틀의 단골 작곡가들의 곡을 선택함과 동시에 드뷔시(1862-1918)의 피아노 트리오 사장조(G major)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과감함도 보여주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경우, 청중들은 다채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연주자는 자신의 피아노 연주에만 집중될 수 있는 관객들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거절하게 되는 또 다른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칫 자신감이 무모함으로 쉽게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의 선택과 결정은 늘 신중해야 하는데, 이번 권요안의 리사이틀에서는 부제와 함께 드러난 의도를 연주에서 엿볼 수 있었던 시도였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첫 번째 곡으로 플룻 음색으로 귀에 익숙한 바흐의 BWV1031 시칠리아노 선율이 빌헬름 켐프의 편곡 버전으로 잔잔하게 연주되었다. 뒤이어 연주된 베토벤의 ‘월광’(Moonlight) 소나타의 무드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주기에 첫 곡으로서 탁월한 선곡이었다.
월광 소나타의 1악장에서는 자신의 제자였던 줄리에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감추려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 상태로 전달되어 먹먹하고도 애잔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2악장의 잠시 밝은 분위기로 변화하는 듯했으나 이내 빠른 템포의 3악장에서 내면의 강렬한 에너지로 전환되어 표출되었다. 권요안은 c# minor 조성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이 작품을 음색과 조성만으로 컨트롤하면서도 내면적 갈등이 과하게 드러나지 않게 보다 절제하여 표현했다.
이는 홀의 피아노 상태와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연주 당시 피아노의 액션은 듣기에도 많이 헐거워진 상태였는데, 이로 인한 표현이나 터치의 과함이 곡의 전반적인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는 연주자의 빠른 판단이 있었던 듯하다. 결과적으로는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터치로 인해 폭발되지 않은 갈등이 오히려 내면부를 향해 더 강력하게 파고들어 먹먹하게 승화되는 느낌이었다.
드뷔시 초기 작품인 피아노 트리오 in G major에서는 젊은 드뷔시의 에너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유의 드뷔시의 색채보다는 가감 없이 뱉어내는 무수한 음들과 연주자들의 직설적인 표현들이 이전 곡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후반부에 연주된 쇼팽의 곡들은 선율에만 치중하지 않고 탄탄하게 받쳐진 베이스 음과 내성부를 채워나가며 해석 면에 있어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녹턴 in B Major op. 62, no.1과 뱃노래 in F# Major, op. 60은 해석에 비해 아름다운 쇼팽의 화성과 그 위에서 빛나는 유려한 선율들이 연주자의 다소 빠른 호흡으로 인해 청중에게 끝까지 전달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급하게 바래져 버린 부분들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이었던 발라드 no.1 in G minor, op. 23도 곡의 해석과 안정감이 돋보이는 연주였다. 흔히 쇼팽의 곡은 아름다운 선율에 눈이 부신 나머지 이에 그칠 수 있는데, 권요안은 선율이라는 일각(一角) 아래 놓인 화성이라는 거대한 빙산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바로 이것이 쇼팽의 묘미인 것을! 즉, 연주자는 반복되는 선율과 반복되지 않는 화성을 예리하게 읽어내어 그 화성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느끼며 각각의 울림이 가지는 의미와 늬앙스를 섬세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권요안의 연주에서 이를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특히 가볍고 날렵한 소리를 날카롭지 않고 보다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의 연주에서, ‘들리는 선율’이 아닌 ‘들어야 하는 의미’를 청중에게 끊임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음악적 깊이가 느껴졌다. 이는 큰 박수갈채 이후, 앵콜로 연주된 마주르카 op.67, no.4에서도 이어졌다.
연주자에게 성장의 과정은 길면 길수록 좋다. 이는 어른됨의 완료, 즉 연주에 있어 완벽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을 단순하게 시기적으로 늦춘다는 것이 아니다. 연주자 자신이 다양한 성장통을 보다 적극적으로 느끼며, 이를 자신의 연주에 끊임없이 녹여내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나가는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과정이, 연주자의 열정과 결합되어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의 연장선과 맞물려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연주자에게 테크닉의 완성도란 자신의 만족 기준이자 무시할 수 없는 평가의 범주임은 분명하겠지만, 이것이 연주전체와 연주자를 평가함에 있어서 유일한 기준은 될 수 없다. 오히려 연주자가 어른됨을 스스로 자처하고 성장통이 없어지는 것을 반가워하거나 이제 더 이상 느껴지는 성장통이 없다고 여기게 되는 그 순간, 음악 천둥벌거숭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장하고 있는 연주자에게는 함께 음악을 호흡하며 작곡자와 연주자를 자발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청중이 간절하다. 그래야만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함으로써 생겨나게 되는 아주 특별하고도 감사한 경험, 즉 진정한 음악적 소통이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허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요안은 이번 리사이틀에 프로그램 선택, 구성, 준비, 연주,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을 자신의 성장통과 함께 솔직하게 담아냈다. 무대 위에서의 연주도 자신의 음악적 성장의 한 부분임을 알고, 작은 떨림도 청중과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의 마인드가 무엇보다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권요안, 빛깔 있는 연주자로서 성장해나가는 그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며, 그의 따스함이 더욱 진하게 전해질 다음 연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 장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