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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별의 기적 Mar 12. 2022

습관처럼 공포가 밀려오다

감정의 기복이 더 심해졌다. 심하게 엉킨 실타래처럼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변덕을 보이는 일기예보 기후처럼 내 마음이 꼭 그와 같았다. 감정이 내면 깊숙이 파고들며 불안정한 정서를 만들고 있었다.      


다른 병은 수술을 하든 정기적인 치료를 받으며 관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황이라는 병은 예고가 없다. 약을 복용해도 어떤 날은 그 효과가 무력해지기도 한다. 난 급히 택시를 타고 병원을 찾는다. 진정제 주사를 맞고 스르륵 잠이 든다.


습관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공황에 일상은 엉망이 되고,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진 듯 혼란이 가득해 온다. 운전 중에도 예고가 없다. 잠들기 전에도 두렵기만 하다. 수업을 하며 식은땀이 흐르면 벌써 공포가 시작된다. 처절하게 내 몸 하나 붙잡고 이 순간을 잘 버텨내기를 바라며 비상약 하나를 삼킨다.      



난 메모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살아온 삶과 살아가는 삶에 대한 흔적들을 남기고 싶은 이유일 수도 있다.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지난 온 시간을 기록해 놓은 일기장과 유사한 글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공황의 증상들이 틈틈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의 메모를 옮겨본다.  

          




또다시 시작된 심장 통증.


공황발작이 다시 나타났다.


아프고,


불안하고,


이 순간 약이 절실히 필요하고,



나 지금 너무 바쁜 시기인데… 이렇게 아플 여유가 없잖아.


수면장애와 악몽의 연속된 시간들.



이른 새벽부터 내 심장이 조여 온다.


쿵쾅거린다.


온몸에 식은땀이 범벅이고 두려움에 난 어쩔 수 없이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울 수밖에 없다.




죽을 것 같다고..

심장이 아프다고..

미치겠다고..



남편은 내 등을 계속 문질러주며 안정을 도우려 한다.


내 몸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공포가 우울로 곤두박질친다.


지금 이 시간 남편을 만나러 가는 택시 안에서 내 심장은 또 요동을 친다.


불안하고, 공포스럽고, 심장이 조여 온다.







담당 주치의는 방학을 활용해 여행을 권해주셨다. 아들과 함께한 여행에서도 심장 통증과 함께 눈물이 나왔다. 그 순간은 엄마가 아니라 작은 꼬마가 되어 아들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의자로 옮겨 앉았다.

내가 환자라는 것이 더욱 분명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절망감에 휩싸이며 절규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듯이 아팠다.     


모든 일상은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더 이상 나는 건강한 일반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난 작업치료사이고, 심리적 건강에 관심이 있어 박사 역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황 그리고 공포로 이어지던 증상이 우울로 바뀌었다. 그렇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정도로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내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를 혐오했다. 시한부 인생이 아님에도 내가 얼마를 더 버티고 살 수 있을지를 매일같이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났다.    

 

‘내가 공황 때문에 죽어?’

‘스스로 내 목숨을 끊지 않은 한 절대 죽지 않을걸?’     

그 순간 드는 마음, ‘아! 억울하다.’였다.    

 

죽음만을 생각해왔던 시간에 대해 허탈한 마음이 후련한 감정과 함께 삶의 의지도 채워주었다. 스스로 죽을 수 없다면 제대로 잘살아봐야겠다는 또 다른 의지가 나를 자극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춘기를 겪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인양 내 머릿속도 많은 혼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적응 장애와 공황장애를 앓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병이 시작된 모든 원인이 해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사회에 대한 정의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억울함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들로 끊임없이 힘겨웠다. 모든 것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면 더욱 나 자신이 피폐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원인을 내 탓으로 가져오면 또다시 나의 존재감이 무너지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혀 상관없는 듯 하지만 인간의 발달과정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이 탄생 후 처음부터 걷거나 뛰기를 할 수는 없다.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많이 넘어지고,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걸음 또 한걸음을 알아간다. 그 과정 하나하나를 겪어내며 걸음마도 배우고, 뜀박질도 하게 된다. 옹알이를 통해 ‘맘마’, ‘엄마’, ‘파..파.. 아빠’를 배운다.

나는 신생아와 다를 게 없었다. 살기를 결심한 후 내가 이겨내야 할 세상은 마치 이제 갓 태어난 아기와 같았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신념, 관념 이런 것은 모조리 버려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병들게 한 가장 큰 요인이란 걸 깨달았다. 그 오랜 시간을 걸쳐 마흔여덟이란 나이에 새롭게 한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고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이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다.

그동안 나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고, 그 누구보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 공감도 좋은 사람이라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오만한 나의 생각이었다. 나는 소통도 어려웠고, 공감도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 우리는 살아가며 자신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는 것일까? 어쩌면 평생 모를 수도 있는 자아의 착각을 나는 공황장애를 통해 알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공황장애, 그 공포감이 나에게 건네준 작은 선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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