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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un 30. 2021

쓰는 것과 걷는 것의 공통점

엄마가 되고 글을 쓰게 되었다

   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걷는 걸 좋아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점심을 먹고 빌딩 사이를 돌거나, 공원을 찾아 남은 시간을 보냈다. 심을 먹는 일만큼 걷는 시간도 빠뜨리지 않았다.

 음식으로 허기는 채웠지만 머리는 터질 듯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남은 시간을 모두 걷는 것에 투자했다. 걷다 보면 머릿속은 다시 잠잠해지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도전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맑고 파란 하늘에 뜬 구름을 구경하는 날은 모니터를 하루 종일 보면 일하는 눈에도 미안하지 않았다. 때론 동료들과 걷기도 했지만 주로 혼자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잡힌 직장에서 유일하게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고하고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를 걷는 날은 고개가 좀 아프다. 땅 만 보고 걷는것도 마찬가지다

 걷는 건 엄마가 된 후에도 중요한 일과다. 오전엔 산책의 동무가 있다. 등굣길에 아이들과 걷고 나면 남편과 잠시 걷는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의자에 앉아 쓰기 시작한다. 잠시 가족이 없는 틈에 써놓지 않으면 쓸 시간이 없도 하지만, 출근하는 듯 그때부터 나의 진짜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집안일을 모른척하기 위해 거실과 주방에서 가장 먼 식탁 모서리에 앉는다. 오전 가족들은 아무도 날 찾지 않으니 쓰기 적당하다. 그때부터 집에 있지만 나는 잠수를 타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 고개를 돌리면 어지러운 거실이 보이고, 세탁기에 들어갈  빨랫감이 보여 잠깐 세탁기 앞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도 무시해야 한다. 한 시간 남짓 뭔가를 해놓지 않으면 그날은 쓰지 못하는 날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월요일은 유혹이 심하다. 주말 동안 집안일은 쌓이기 마련이라 조금이라도 손을 대고 싶어 진다.

 

  월요병을 떨 치치 못하면 늦은 오후 모든 걸 뒤로 한채 산책을 나선다. 핑계는 저녁식사를 위한 장보기지만 한 시간 정도 걷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걷기 시작하면 가볍게 집을 나온 기분을 누린다. 소풍 가는 어린 시절처럼 또 길을 나선다. 보기를 채우기 위한 욕심도 있지만 자기 전에 글을 쓰기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 은 손이 아닌 엉덩이로 쓴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적당히 몸이 뜨거워지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없었다.


 쓰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른 듯 같은 점이 있다. 

우선 첫발을 내딛기 힘들다. 그런데 천천히 발을 내딛듯 쓰다 보면 글이 써진다. 잠깐 걸었다고 멈추면 안 된다. 충분히 걸어야 걷기의 효능을 느낄 수 있다. 땀이 나고 만보가 가까워질수록 발은 알아서 걷는다.  만보를 걷는 시간만큼 글도 멈추지 않고 써야 자신의 얘기가 나다.


 걷기나 쓰기는 아무래도 혼자가 좋다. 물론 협업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말동무가 있으면 산책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매번 그 작업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집중해서 몰입하는 일엔 반드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 하는지 이유는 나만 안다. 쓰는 일도 오롯이 내 것이다. 걷는 이유도 마찬 가지다. 그래서 쓰는 일이 쉽지 않다. 매일 만보를 걸어야 하고 더 걷고 싶지만 무리하지 않기 위해 만 오천보 이상은 걷지 않는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목표를 달성한 날은 몸은 더 가뿐해졌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쓰고 걷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수양인 샘이다. 둘 다 나만 아는 고통과 즐거움이 있다.

 

 둘 다 크게 비용이 들지 않는다. 운동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걷는 일이나 빈 노트에 볼펜 한 자루로 쓰는 일은 거창할 게 없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을 쓰다 보니 어디서든 쓸 수 있다. 어디서든 걸을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걷기도 쓰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걷지 못하는 날도 많고, 갑작스레 일이 생기면 쓸 시간이 사라진다. 매일 거르지 않으려고 하지만 매일 할 수 없으니 가능한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엄마 노릇을 하거나, 걷거나, 쓰거나를 번갈아 하고 있다. 균형을 맞추는 건 매 순간 나의 몫이다. 그 외의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렇게 3가지 일을 서로 엮어놓았더니 희한한 일이 생겼다. 쓰는 일이 안되면 걷기를 하고 나면 도움이 되었다. 쓰기를 하면서도 걷기처럼 몸을 쓰기도 다. 허리와 엉덩이가 점점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  훨씬 편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내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듯하다.  

걷기는 쓰는데 도움이 되었고, 글쓰기는 행복한 엄마가 되게 했다. 요즘은 무엇이 먼저인지 잘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걷기를 포기할 수 없었고. 엄마가 되니까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둘다 지칠때가 있지만 계속해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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