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후기

카리스마에 가려진 '인간의 존엄'을 찾아서

by muuppi
관객을 리드하지 못하는 투박한 호흡


영화는 관객을 그들의 세계관으로 초대하는

정교한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른 템포 조절, 감정선을 연장하는 배경 음악,

혹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같은 장면을 통해

관객이 자연스레 인물의 호흡을 따라오게 유도하는

연출의 묘미는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의 연출은

관객을 리드하는 힘이 다소 부족해 보였다.


장면 전환은 이야기의 무드와 상관없이 툭툭 끊겼고,

감정선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화면이 넘어가 버리는 등

연출적 리더십의 부재가 느껴졌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창틀의 선을 활용해

계급의 경계를 시각화하고 인물의 선을 넘는 행위를

중의적으로 표현했던 그 치밀함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의 연출은 몹시 아쉬운 대목이었다.


연출의 부족함을

이토록 체감하게 만든 영화는 처음이었다.




연출의 빈틈을 메우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서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끝까지 붙들게 만드는 힘은

배우들의 눈빛에서 나온다.


아이돌이나 꽃미남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져 있던

박지훈의 눈빛은 놀라웠다.


생에 대한 의지를 놓아버린

무미건조한 눈빛에서 시작해,

점점 생기가 돌고 끝내 좌절하는

그 모든 서사가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관람 전에는 관객으로 갔다가,

관람 후에는 백성이 되어 나온다"는 평처럼,

스크린 너머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소통하는 그의 눈빛은

긴 대사보다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단종의 곁을 지키는 엄홍도 역의 유해진 역시

새삼 대단한 연기자임을 증명했다.




개인적으로 청력이 좋지 않아

OTT의 자막에 익숙해진 터라,

극장 사운드 속에서 배우의

발음이 뭉개지는 것을 경계하곤 한다.


유해진 역시 감정이 복잡해지는 중반부 이후에는

대사를 알아듣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대사가 명확하지 않아도

감정선만큼은 너무나 잘 전달되었다.


찰나의 조사 하나로 의미가 바뀌는

한국어의 고맥락성 속에서,

그는 말이 아닌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전미도, 유지태 등 모든 배우가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 올린 서사는,

투박한 연출을 뚫고 기어이 관객의 눈물을 자아낸다.





'첨예한 현미경'과
'따뜻한 망원경'의 차이


이 영화의 불친절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꺼이 장항준의 편에 서고 싶어진 이유는

소재를 다루는 그의 '시선' 때문이다.


여기서 세계가 극찬한 봉준호의 <기생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생충>은 자본주의의 계급 구조를

현미경처럼 첨예하게 파헤친 걸작이다.


하지만 그 완벽한 연출과 날카로운 시선은

때때로 저소득층의 삶을 불쾌한 냄새와

선(線)으로 규정하며,

보이지 않는 계급의 경계를 더욱 곤고히

확인시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대단한 능력이지만,

동시에 관객의 마음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드는 차가운 천재성이었다.



반면 장항준은 현미경 대신 망원경을 택한다.


수양대군이라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가려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조연들,

그리고 비극적인 운명 앞에 홀로 서야 했던

어린 왕의 존엄을 따뜻하게 응시한다.


우리는 그동안 승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가

찬탈자의 희열을 '위엄'으로

포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장항준 감독은

화려한 승전보 뒤에 가려진 희생자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킨 이름 없는 이들의

가치를 다시 불러세운다.


우리는 효율과 승리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밀려난 자의 서사는 쉽게 지워버리는

가혹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소외된 자들을 향해

낮은 시선을 유지하는 감독의 태도는

무엇보다 귀하고 감사하다.



뾰족한 시선은 머리를 자극하지만,

따뜻한 응시는 결국 사람을 움직인다.





거장 직전의 감독이 선택한 '투박한 진심'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지만,

영화는 그 기록 너머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감독이 겪었을 고뇌

—각본을 쓰고, 배우를 섭외하고,

잊혀진 단종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까지의 과정—를 생각하면,

그를 왜 '거장 직전의 감독'이라

부르는지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이 영화의 연출적 부족함은

기술적 완벽함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온기라는

더 큰 가치를 선택한 과정에서 남겨진

인간적인 흔적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그 모순된 말은

결국 우리를 다시

역사의 뒷모습으로 돌아보게 할 것이다.


<기생충>이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했다면,

<왕과 사는 남자>는 우리에게

'회복해야 할 인간성'을 묻는다.


세련된 기교 대신 투박한 진심을 택한

장항준 감독의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광장의 시대가 저물고, 질문의 시대가 왔다